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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 만물상과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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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5-13 06:00:16   폰트크기 변경      
경상남도 합천 가야산

자연이 빚은 풍경과 인간이 새긴 가르침


가야산 만물상


한 달에 서너 번은 산에 간다. 전국의 많은 산을 올랐지만, 아직 못 가본 곳도 많다. 가야산도 그 중 하나다. 오래전부터 가보려고 했지만, 멀기도 하고 힘들다는 말도 많아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에 맘을 먹었다.

가야산이란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대가야국의 기원이 된 산이라는 설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가야산 정상부가 소머리 모양이어서 우두산이라고 불렸는데 이 지역이 불교 성지화되면서 범어에서 소를 뜻하는 ‘가야’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설에서 알 수 있듯이 가야산이라는 이름에는 가야국 신화, 지역명, 신앙, 불교성지라는 여러 의미가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일행도 없고 거리도 멀고 해서 이럴 때 유용한 ‘안내 산악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가이드 산악회’라고도 하는데, 산행 인원을 모아 전세버스와 가이드를 제공하는 산행 프로그램이다.

사당역에서 내리니 어마어마한 버스 군단을 마주했다. 안내 산악회는 이미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많은 버스 중 ‘가야산’이란 글자를 보고 올라탄다.

양재를 지나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는데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재밌다. 겨울을 견뎌낸 짙은 녹색의 나뭇잎과 이제 갓 기지개를 켠 연둣빛 이파리, 다양한 빛깔의 봄꽃들이 어우러져 있다. 오래된 것들이 새로 난 것들에게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고 새로 난 것들이 계절을 이어간다. 질서 있게 정리된 풍경은 아니지만 나름의 질서대로 충돌없이 공간을 나눈다. 나눠쓰는 것이, 공존하는 것이 자연의 질서라는 진리가 새삼스럽다.

인솔 대장님의 코스 설명이 시작된다. 가야산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백운동에서 출발해 만물상 코스를 지나 칠불봉, 상왕봉에 올라 해인사로 내려가는 코스란다. 코스가 힘들어 두어 번쯤 후회를 할 게 분명하지만 힘들어도 만물상 코스를 가라고 한다. 그만큼 볼 게 많고 감동적이니까.



△고생 끝에 펼져지는 장관, 만물상


백운동주차장 꽃잔디


주차장에 내리니 강렬한 핑크빛 꽃잔디가 인상적이다. 간단히 채비를 마치고 백운동탐방지원센터로 향한다. 지원센터 옆 ‘만불상탐방로’ 게이트를 통과하면 코스가 시작된다.

‘어. 이게 뭔가? 시작 맞아?’ 처음부터 급경사다. 돌계단으로 정비는 잘 되어 있지만 마음의 준비도 없이 훅 들어오는 느낌이다.

경사길은 잠시도 아니고 계속 이어진다. 시작부터 땀도 나고 숨도 찬다. 시야는 막혀 있고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조금은 답답한 길이다.

만물상은 대체 언제 나온다는 건지 불만이 쌓여갈 무렵 조금씩 시야가 열리면서 특이한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초행이라 확신할 순 없으나 만물상 풍경이 시작된다는 느낌이 온다.

봉우리를 넘어갈 때마다 조금씩 더 근사한 풍경이 펼쳐지는 느낌이다. 바위 봉우리가 커지고 모양도 더욱 다양해진다. 이게 만물상에 오르는 즐거움인가.

산객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배경을 잡아 사진을 찍는다. 배경이라도 담아보려 했는데 여럿이 번갈아 찍어 기회가 나지 않는다. 눈에 담아가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정면에 펼쳐진 만물상


좀 더 올라가니 좌우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운무까지 겹쳐 신성한 기분까지 들었다. 정면으로는 만물상이 경쟁하듯 나서고 좌우는 웅장한 봉우리와 능선이 감싼다.


가야산은 은근히 큰 산이다.


서장대쪽에서 돌아본 만물상


꽤 올라왔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본다. 아! 새로운 감탄이다. 만물의 바위를 품은 능선이 쉼 없이 늘어서 있다. 만물상의 절정에 서 있는 기분이다.

상아덤이란 표지가 보인다. 여인들이 결혼할 때 타는 가마와 비슷하다고 해 가마바위라고도 불린다. 만물상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서장대에 있다.


상아는 여신을, 덤은 바위를 뜻하는데 가야산의 여신인 정견모주가 이 가마를 타고 하늘 신 이비하를 만났다는 전설이 있다. 둘 사이에서 대가야의 이진아시왕과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상아덤


잠시 내리막이다. 그리고 서성제다. 가야산성의 서문이 있던 곳이라는데 편안하게 받아주는 느낌이다.

산객 여럿이 음식을 먹으면서 쉬고 있다. 만물상에 취하고 코스에 지친 산객들을 위한 공간인 것 같다.



△가야산 정상은 어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바로 칠불봉으로 향한다. 해인사를 여유 있게 돌아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보통 난이도라 표시돼 있지만,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편한 느낌은 아니다.

주변 능선과 기암괴석들을 구경하며 30분 정도 오르면 어느새 칠불봉이다. 출가한 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득도한 봉우리라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상왕봉 정상석. 우두봉이라고도 한다.


칠불봉의 서쪽 맞은 편으로 가야산의 정상인 상왕봉이 보인다.

그런데 가야산 정상에 대해서는 오래된 말다툼이 있다. 칠불봉은 경북 성주에 속하고, 상왕봉은 경남 합천에 있다. 경북 사람은 정상을 칠불봉이라 하고 경남 사람은 상왕봉이라고 한단다.

칠불봉과 상왕봉에 올랐을 때 바람이 정말 세차게 불었는데 두 지역민들이 다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야산의 공식 정상은 상왕봉이지만, 사실 칠불봉이 3M 정도 높다고 한다. 경북 사람들에게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을 것 같다.


상왕봉에서 바라본 칠불봉


△팔만대장경이 있는 곳, 해인사

상왕봉에서 내려오니 거짓말처럼 바람이 잦아든다. 이제 해인사로 향한다.

해인사로 가는 길은 볼 것이 없어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다. 크고 작은 돌이 박힌 길도 많아 속도도 잘 나지 않는다. 한 발, 한 발 한참을 내려간다.

토신골 탐방지원센터가 보인다. 산길의 끝이다.


장경판전 입구


지원센터를 지나 왼쪽으로 오르면 해인사에 들어설 수 있다. 큰 절이다. 법회도 진행 중이고 부처님오신날 준비로 분주하다. 팔만대장경이란 표지를 따라 경내 안쪽으로 걸어간다. 삼층석탑, 대적광전을 지나고 팔만대장경이란 현판을 보며 장경판전 쪽으로 오른다.

판전에 들어섰을 때는 건물의 크기나 모습이 소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판전 보다는 불심을 담아내는 것에 애썼던 모양이다.건축 전문가는 아니지만 딱 봐도 채광도 좋고 통풍도 좋게 설계한 모습이다. 뜻을 오래오래 기리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채광과 통풍을 고려한 장경판전.


일정을 마무리할 때다. 판전을 나와 산악회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불가에서 팔만사천이라는 숫자는 ‘매우 많다’ 내지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부처의 모든 법문을 ‘팔만사천법문’이라고도 한다. 그럼 팔만대장경은 부처의 모든 가르침을 모았다는 뜻일까.

자연이 빚은 만개의 풍경으로 들어가 인간이 새긴 팔만개의 가르침으로 나온 하루. 오래토록 망설였던 가야산은 그런 기억으로 남았다.


글ㆍ사진=박종현 산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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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부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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