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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규제 ‘살라미 전술’…경영환경 어떻게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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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8-25 16:24:15   폰트크기 변경      

3차례 연속 입법 폭풍으로 규제 강도 단계적 상승
기업경영 후폭풍 우려…이사회 무력화ㆍ파업의 일상화

그래픽 : 대한경제
[대한경제=김희용 기자] ‘살라미 전술’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기업 규제 입법 공세로 재계가 ‘경영 불가’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강화된 상법 개정안으로 이사회 구성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노란봉투법의 노조 손해배상 면책으로 파업이 일상화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차 상법 개정안은 삼성·SK·현대차 등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 약 200개사에 적용된다. 1차 개정에서 도입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는 이사가 회사뿐만 아니라 개별 주주의 이익까지 고려하도록 했다.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 룰’은 경영권 방어를 난해해지게 만들었다. 대주주가 경영진 견제 장치인 감사위원 선임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차 개정에서 추가된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더욱 강력한 규제다. 기존에는 경영진이 우호적인 이사 후보를 추천하면 대주주 지지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선임될 수 있었지만, 집중투표제 시행 이후부터는 소액주주들이 뭉쳐 반대 후보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도 이사회 운영을 복잡하게 만든다. 기존 이사와 별도로 선출되는 감사위원이 늘어나면서 이사회 내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특히, 기관투자자나 행동주의 펀드가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경영진과 대립각을 세우는 이사를 선임할 경우, 이사회 내 갈등이 상시화될 위험성이 커진다.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이를 악용해 경영권을 공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2019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은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고배당을 요구하며 현대차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한 바 있다.

결국 이사회는 주주 소송을 우려해 위축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모든 안건에 대해 법률 검토를 강화해야 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밖에 없어진다.

한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과거에는 이사회에서 경영진의 판단을 존중하는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모든 안건에 대해 주주 이익 침해 여부를 일일이 검토해야만 한다”며 “의사결정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의 파급력은 노사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전망이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개념을 원청업체까지 확대해 하청 노조가 원청과 직접 교섭ㆍ쟁의행위를 벌일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한 원청업체가 수십, 수백 개의 하청 노조와 동시에 교섭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노동쟁의 개념도 임금ㆍ근로조건뿐만 아니라 경영상 결정까지 포함하도록 확대됐다. 기업의 구조조정, 사업 재편, 투자 결정 등도 쟁의 대상이 될 수 있어 경영진의 의사결정권이 크게 제약받을 전망이다.

자동차ㆍ건설ㆍ조선업계의 경우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산업군은 수백∼수천 개의 협력업체와 함께 목적물을 생산해내는 특성이 있는데 협력업체 노조들이 무분별한 파업에 나설 경우 전체 공정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완성차 기업인 현대차ㆍ기아의 경우, 1ㆍ2ㆍ3차 협력사를 합치면 50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박 건조는 정해진 일정에 맞춰 각 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는데, 협력업체 하나라도 파업하면 전체 스케줄이 틀어진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면 납기 지연으로 인한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특히,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파업 억제 효과가 사라졌다는 평가다.

기존에는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노조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조합원 개인 생계에 현저한 지장을 주는 경우 △쟁의행위와 손해 간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는 경우 등 예외 조항이 대폭 확대됐다.

한 중견기업 노무담당자는 “과거에는 불법 파업 시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이 억제 효과로 작용했는데, 이제는 그런 제재 수단이 사라져 파업이 더 빈발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런 변화는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글로벌 경영환경이 급변하며 빠른 의사결정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규제로 인한 경직성이 증가하면 시장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특히, 혁신을 위한 투자나 신속한 의사 결정이 어려워지고, 과감성이 필요한 사업 전환도 지연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앞으로 장기적 관점의 R&D 투자나 신사업 진출 같은 경영상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단기 성과에만 매몰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김희용 기자 h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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