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ECU로 시험시간 절감…“실물과 차이 못 느껴”
생성형 AI는 요구사항 분석 자동화…번역작업 단촉
![]() |
| 서지원 HL만도 실장이 ‘가상 ECU 기반 검증 전략’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사진: 강주현 기자 |
[대한경제=강주현 기자] HL만도가 가상화 기술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동차 부품 개발 속도를 대폭 높이는 ‘디지털 실험실’을 구축하고 있다. 실제 부품을 만들지 않고도 컴퓨터로 성능을 검증하고, AI가 1000장 분량의 설계 문서를 8시간 만에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HL만도는 12일 한국자동차공학회 추계학술대회가 열린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가상화와 AI를 활용한 개발 혁신 사례를 공개했다. HL만도 서지원 실장과 정지현 상무가 각각 ‘가상 ECU 기반 검증 전략’과 ‘생성형 AI를 통한 엔지니어링 디지털 전환’을 주제로 발표했다.
서지원 실장은 “기존에는 하드웨어를 만든 뒤 소프트웨어를 검증했지만, 이제는 가상 ECU로 한 단계 빠르게 검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CU는 자동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전자제어장치다. HL만도는 컴퓨터상에서 가상 ECU로 브레이크 시스템 기능을 시험한 결과, 기존 하드웨어 시험인 ‘힐스(HILS)’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검증할 수 있었다.
컴퓨터 기반이라 시험 속도를 높일 수 있고, 물리적 거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 실장은 “한국에 시험 장비를 두고 인도 엔지니어가 원격으로 시험했는데, 실제 하드웨어를 다루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며 “실물과 가상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강조했다.
다만 모터 제어와 같이 하드웨어에 직접 의존하는 부분은 아직 가상 시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HL만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하드웨어 동작을 소프트웨어로 모방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정지현 상무는 HL만도가 구축 중인 생성형 AI 기반 엔지니어링 디지털 전환 시스템(AI DT)을 소개했다. 자동차 개발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요구사항 분석 작업 효율을 극대화하는 도구다.
예를 들어 유럽 자동차 회사로부터 받은 요구사항 문서는 보통 1000장이 넘는다. 이를 분류하고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안전 요구사항으로 나누는 작업에 기존에는 외주를 주고 15일에서 30일이 걸렸다. HL만도의 AI는 이 작업을 8시간 만에 끝낸다.
정 상무는 “실무 개발자들의 피드백을 받아보니 기존 업무의 50%에서 80%까지 개선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AI가 80%까지 자동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20%는 전문 엔지니어가 최종 검토하는 방식이다. 그는 “AI가 엔지니어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반복적인 작업을 덜어주는 보조 도구”라고 설명했다.
중국어 문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기존 1주일에서 10분으로 단축됐다. HL만도는 오픈소스 AI 모델인 ‘라마(Llama) 3.1’과 중국 알리바바의 ‘큐웬(QWen)’을 자사 데이터로 학습시켜 자체 AI 모델을 만들었다. 고객 데이터 보안을 위해 챗GPT(ChatGPT) 같은 외부 AI 대신 내부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 |
| 정지현 HL만도 상무가 ‘생성형 AI를 통한 엔지니어링 디지털 전환’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사진: 강주현 기자 |
만도가 이런 투자를 서두르는 이유는 자동차 산업의 변화 속도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시대가 되면서 자동차 소프트웨어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 시장은 개발 기간을 매우 짧게 요구한다. 정 상무는 “중국 고객들과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는데 개발 기간이 매우 짧다”며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가 AI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유럽 안전 평가 기관인 유로엔캡은 내년부터 가상 시험 기반의 평가 절차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같은 기능을 실제 차량으로 시험하면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도 부품 회사에 가상 ECU 모델을 요구하는 추세다.
만도는 가상 ECU, 센서 가상화, 차량 환경 가상화를 통합한 ‘만도 버추얼리제이션 시스템(MVS)’을 구축 중이다. AI 시스템도 한국을 넘어 미국, 인도, 중국 법인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 상무는 “선제적으로 기술을 적용하면 개발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강주현 기자 kangju07@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