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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막 만들어서 막 먹기 좋은 여름날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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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5-26 06:00:16   폰트크기 변경      
냉면과 막국수의 맛잇는 이야기

막국수와 냉면은 뿌리가 같은 음식이다. 사진은 고기리 물막국수.


햇볕이 제법 따가운 정도가 아니라 우주에서 쏘는 레이저 빔 수준이다. 아직 그나마 습하진 않지만 오뉴월 불볕이 시작되니 시원한 국수가 인기다.

들이켜는 순간 속이 뻥 뚫리며 체온을 서늘하게 내리는 냉면과 막국수는 사실 굳이 제철을 따지자면 초겨울부터다. 햇메밀을 수확하고 무에 맛이 드는 때에 막국수와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무더운 날씨에 이 시원한 국수에 눈길 한번 주지 않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리 음식문화는 외국인에게 ‘충격과 공포’를 준다. 상 위에 용암처럼 절절 끓는 탕과 찌개가 오르는 극단적인 열식(熱食)문화에 차가운 냉국이나 냉면으로 한 끼를 때우는 궁극의 냉식(冷食)문화가 공존한다. 서늘한 냉식의 대표적인 메뉴가 냉면과 막국수다.


필동면옥 냉면.


냉면과 막국수, 이름은 서로 달라도 그 뿌리는 매한가지다.

냉면은 원래 평안도 지방에서 그저 국수라 불렀던 음식이다. 평양과 진주 등 위세 당당한 고을의 기방(妓房)에서도 팔았다지만 산골 서민들도 먹던 일상식이다. 분틀(제면기)을 두고 뜨거운 메밀 반죽을 눌러 뽑아낸 국숫발을 겨울날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던 것이다.

감자 전분으로 면을 뽑아내던 함흥냉면 역시 그렇다. 농마(녹말)국수라 불렀다. 이를 한자어로 바꾼 것이 냉면(冷麵)이다. 강원도에서도 그저 국수라 불렀다.

현대의 우리는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평양냉면, 함흥냉면, 막국수라 각각 부르고 있다.

냉면이야 옛날부터 사랑받아 온 메뉴다. 김소저가 1929년 잡지 별건곤(別乾坤)에 적은 ‘사시명물 평양냉면’을 보면, “평양 사람이 타향에 가 있을 때 문득문득 평양을 그립게 하는 한 힘이 있으니, 이것은 겨울의 냉면 맛이다. (중략) 꽁꽁 언 김치죽을 뚫고 살얼음이 뜬 김장 김칫국에다 한 저 두 저 풀어 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평양냉면의 이 맛을 못 본이요! 상상이 어떻소!”라고 적었다.

그보다 앞선 1849년 편찬된 동국세시기에도 ‘냉면은 겨울 계절 음식으로 평양이 으뜸’이라며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다’고 되어 있다.


미가연 비빔막국수


냉면과 비슷한 근원을 가진 막국수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실은 강원도를 비롯해 강원권에 접한 경기도 일부에서 먹던 메밀국수를 총칭한다. 냉면처럼 집에서 분틀로 뽑아 만들던 음식이니 조리법이야 가가호호 각양각색이다. 원래는 물막국수, 비빔막국수 구별도 없다.

동치미 국물이나 육수에 자작하게 말아 김치를 얹거나 오이, 가지 등 여름 채소를 올려 들기름에 쓱쓱 비벼 먹는 게 일반적이다. 물막국수란 여기다 시원한 우물물을 부어 후루룩 마신 것이다.


한국어문교육연구회가 2017년 펴낸 ‘음식명에 붙는 접두사 막에 대하여’(이병기 저)에 따르면 막국수 이름은 ‘막(just. 금방 만들어 먹는)’ 국수에서 나왔다. 설렁설렁 만들었다는 ‘막’이 아니다. 비근한 예로 쌈을 싸먹는 데 쓰는 막장도 그렇다. 오래 숙성시켜 간장을 빼고 만드는 된장과 달리 메줏덩이를 바로 갈아 이레에서 열흘 정도 익혀 만드는 ‘속성’이라 막장이라 불렀다.


막걸리도 같은 원리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고기리 비빔막국수.


척박한 땅과 기후에도 잘 자라는 강원도 메밀은 구황작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대부분 겨울철을 나기 위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막국수는 그런 음식이다. 화전민이 많이 살던 춘천과 홍천을 비롯해 정선, 평창, 태백 등 강원도 내륙에서 오랫동안 영업해 온 막국수집을 만날 수 있다.

그러던 냉면과 막국수가 현대인들의 인기 메뉴로 요즘 ‘상한가’를 치고 있다. 특유의 투박한 맛과 향, 그리고 웰빙 트렌드에 기인한 까닭이다. 아무래도 메밀은 밀에 비해 건강한 음식이다. 우선 단백질 함량이 높다. 필수 아미노산인 리신과 트립토판도 풍부하다. 특히 루틴(rutin) 성분은 혈관을 강화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기능이 있다. 여러 질병을 유발한다고 눈총받는 글루텐(gluten)도 거의 없어 소화 부담이 적고, 당 지수(GI)도 낮다. 그래서 웰빙 식단이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건강한 가루’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니 많이 먹어도 상관없다. 구황식품이니 원래 양도 엄청났다. 별 반찬 없이 막국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달래야 했으니 그렇다. 예전에 평창군 어느 막국수집에 가서 60대 중년 토박이 손님에게 물어보니 “짐은 우덜(지금은 우리들) 어렸을 때 반 배끼(밖에) 안줘요”한다.



고기리 들기름막국수.


꿩이나 닭 육수를 쓰면 더 좋았겠지만 없으면 양념간장 맛으로도 푸짐하게나마 먹으면 됐다. 취향에 따라 설탕을 넣기도 한다. 강원도 전통 방식으로 운영하는 집에 가면 테이블마다 설탕 종지가 올려져 있고 이따금 강원도 토박이 손님이 와서 설탕을 하얗게 뒤덮을 정도로 부어 먹기도 한다.


가장 간단하게는 들기름과 간장, 김가루 정도만으로도 비벼 먹을 수 있는데 요즘 ‘들기름 막국수’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허기를 채우던 가장 소박한 맛이 고급스러운 미각으로 변신했다. 요즘 국수 메뉴 중 가장 비싸다는 냉면은 물론이고 막국수집도 그 앞에서 만원짜리 한 장은 우습게 사라진다. 앞서 이른 것처럼 건강에도 좋거니와 과하지 않고 풋풋한 맛이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덕이다. 게다가 무더위를 단번에 식혀주는 청량함이 사발 안을 채우고 있으니 그 누가 이를 외면할 수 있을까.


글ㆍ사진=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필동면옥 제육.


[냉면ㆍ막국수 맛집]

◇필동면옥 =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름난 평양냉면집이다. 두터운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데 ‘쩡’한 청량감을 주는 육수가 뛰어나다고 입을 모은다. 맑은 육수에 얇은 면을 말았는데도 맛의 중량감은 압도적이다. 또 하나의 인기 메뉴는 바로 제육. 돼지고기 삼겹살을 삶아 어슷어슷 썰어 차가운 상태로 내는데 존득한 비계 맛이 일품이다. 선주후면이란 말이 무색(?)하게 냉면 국물에 제육을 곁들이면 소주잔이 연신 빈다. 서울 중구 서애로 26.

◇고기리막국수 = 사계절 늘 기나긴 줄을 드리우며 문전성시를 이루는 집. 맑은 육수에 진한 맛을 담았다. 깔끔한 육수와 고함량 메밀의 구수한 면발이 인기 요인. 폭신하고 촉촉한 수육에 더해 청량감을 만끽할 수 있는 딱 적당한 온도의 막국수 한 그릇을 위해 먼 길과 긴 대기시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들기름과 간장에 비벼먹는 들기름 막국수도 별미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 이종무로 157.

◇미가연막국수 = 메밀밭으로 유명한 평창 봉평에 있다. 따로 제분기와 제면기를 두고 그날그날 말아내는 100% 순면 막국수가 입맛을 당긴다. ‘강원도 식’은 비빔 막국수를 먹다가 육수를 부어, 발우공양하듯 싹 비우면 된다. 항산화물질인 루틴 함량이 더 많은 ‘쓴메밀’을 사용한 이대팔, 육회를 올려내는 메뉴도 있다. 모든 메뉴에 메밀싹을 수북이 얹어준다. 강원 평창 봉평면 기풍로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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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부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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