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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스토리] 57년 '부전상립'의 오뚜기 뚝심 경영… 年매출 '3조 클럽' 신화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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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8-12 05:00:35   폰트크기 변경      

국내 첫 즉석카레로 없던 시장 개척
루트세일·시식판매 등 유통혁신 주도


스프ㆍ마요네스ㆍ3분 카레로 대중화
품질 앞세워 글로벌 브랜드와 경쟁
진라면ㆍ참치ㆍ즉석밥 식탁영역 확장


안양1공장, 창업정신 ‘함태호홀’로
‘ 보다 좋은 품질’ 로 세계시장 공략



[대한경제=정대연 기자] 오뚜기의 오뚝이 정신은 넘어졌다 일어나는 게 아니다. 부전상립(不轉常立), 결코 구르지 않고 항상 서 있는 자세다. 창업자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이 사업을 시작하며 세운 경영 철학이자 회사가 갈 방향이었다.

선 자리에서 오뚜기는 한 뼘씩 넓혔다. 보다 좋은 품질로, 보다 높은 영양으로, 보다 앞선 식품으로. 그렇게 만든 제품이 57년간 모두의 식탁에 올랐다.

그가 처음 발을 디딘 자리는 지난 6월 ‘함태호홀’이 됐다. 오랜 공장의 골조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모두를 위한 먹을거리를 꿈꿨던 뜻을 공간으로 펼친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넘어지지 않고 서 있을 자리다. 오뚜기가 그랬듯이.



오뚜기가 사업 초창기인 1970년대 출시한 제품./사진: 오뚜기 제공


◆없던 시장 만들고 품질로 증명해 모두의 식탁에 오르다

오뚜기는 ‘보다 앞선 식품’을 추구하는 개척자였다. 1969년 5월 5일 풍림상사가 내놓은 즉석 카레부터 없던 제품이었다. 당시 카레는 고급요리이자 서양식의 대명사인 동시에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오뚜기는 카레분을 통째로 수입하는 대신 강황과 고추, 후추를 직접 섞어 한국식 카레를 만들었다. 향신료 배합비를 찾아 밀봉한 뒤 숙성시켰고 강황 함량을 높였다. 오뚜기 카레가 유난히 노란 이유다.

파는 방식도 선구적이었다. 영업사원이 거래처를 찾아가 진열까지 돕는 루트세일을 국내 처음 도입했다. 시식판매와 판매여사원 제도, 차량 광고도 국내 최초였다. 카레에 이어 스프와 케챂, 마요네스같이 낯선 제품을 한발 앞서 내놨다. 1979년 100억원이었던 매출이 1988년 1000억원을 넘었다.

이 무렵 안양1공장은 길이 70m, 폭 14m의 건물 한 채가 농경지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농경지 위 건물 한 채로 출발한 오뚜기는 1980년대 들어 다국적 식품기업과 정면으로 맞붙었다. 1981년 세계 최대 소스 기업인 미국 CPC 인터내셔널이 미원(현 대상)과 손잡고 ‘크노르 마요네즈’를 내놨고, 1980년대 중반에는 케첩 강자 하인즈가 서울식품과 함께 들어왔다. 오뚜기가 열어놓은 시장을 세계적 브랜드가 뒤늦게 노린 구도였다.

오뚜기는 품질 제도로 차이를 입증했다. 1983년 연구소를 열었고, 1987년에는 마요네스로 국내 처음 KS 마크를 받았다. 세계적 브랜드와 겨루는 자리에서 국가 표준 인증은 눈에 보이는 증거였다. CPC는 1996년 미원에 지분을 전량 넘기고 한국을 떠났고, 하인즈도 오뚜기 케챂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17년에는 하인즈가 40년간 독점하던 한국맥도날드 공급권을 오뚜기가 가져왔다.

인증은 계속 쌓였다. 1989년 중앙연구소를 개소했고 2002년 이 연구소가 국제공인시험기관(KOLAS) 인증을 획득했다. 2008년에는 오뚜기밥이 우주 식품 인증을 통과했다. 1994년 기업공개도 같은 선택이었다. 회사 사정을 시장에 통째로 공개하는 모험이었다. 공장 옆에 기념관과 공원을 만들어 모두에게 공개하는 지금의 함태호홀은 감출 것 없이 일하는 그의 방식을 닮은 셈이다.

오뚜기는 새 시장을 개척하고 품질로 인증받아 인류의 식생활을 향상하길 원했다. 목표는 추상적이지만 오뚜기가 한 일은 구체적이었다.

고급 서양식이던 카레를 집밥으로 대중화한 것부터다. 오뚜기는 식량이 부족해 영양가 있는 식단을 차리기 어렵던 시절 풍성한 식탁을 제공한 데서 기업이념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1981년에는 국내 최초로 레토르트 3분카레를 내놨다. 끓는 물에 3분이면 되는 조리는 요리할 시간도, 기술도 없는 사람의 식탁까지 풍성하게 채웠다.

1987년에는 부도난 청보식품을 인수해 라면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양과 농심이 양분하던 시장에 남이 실패한 설비를 들고 들어간 셈이다. 이듬해 나온 진라면은 2015년 국내 누적 매출 1조원을 넘겼다. 참치와 즉석밥으로도 품목을 넓혔다. 집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급식과 구내급식, 군 급식까지 오뚜기 제품이 들어간다. 식탁이 있는 자리 어디든 오뚜기가 있고, 오뚜기가 있으면 식탁이 넓어지는 원리다.


함태호홀 5층에 마련된 '인간 함태호' 공간.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의 생애, 유품 등을 통해 가치관과 오뚜기의 출발점을 살펴볼 수 있다./사진: 오뚜기 제공


◆만들던 자리에서 머무는 자리로… 오뚜기 정신 닮은 함태호홀

오뚜기가 모두의 식탁에 오르는 54년간 홀로 서 있던 안양1공장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오뚜기는 연매출 3조원이 넘는 종합식품기업이 됐다. 안양뿐 아니라 대풍, 삼남, 포승에서 공장을 운영한다. 1973년 준공한 안양2공장 옆에는 1970억원을 투자한 도시형 신공장이 2027년 준공을 목표로 올라가고 있다.

모두를 위한 제품을 만들던 안양1공장은 이제 누구나 찾아와 머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됐다. 함 명예회장이 세운 철학 위에 오늘의 오뚜기가 서 있듯, 오랜 공장의 기존 구조를 최대한 살렸다. 1975년 증축 때 세운 2층 라운지 기둥 11개와 함께 옛 건물의 보와 슬래브, 대로변 외벽까지 보존했다. 50년 된 철근콘크리트가 미래를 견디도록 균열을 메우고 기둥과 보를 철판으로 보강했다. 새로 올린 층은 옛 구조체에 하중을 얹지 않는다. 건물 바깥에 별도 기초를 세워 독립시켰다.

설계를 맡은 신형철 신스랩건축사사무소 소장은 “한국에서는 보통 기존의 것을 모두 비우는 ‘타불라 라사’ 상태에서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며 “함태호홀 프로젝트에 매우 자연스럽게 ‘공공(公共) 공간(空間) 공장(工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안양공장은 지금도 운영 중이고, 함태호홀 공사 중에도 생산을 멈추지 않았다.

함태호홀은 도시형 신공장이 준공되면 2단계 공사에 들어간다. 3층과 4층을 나선형 중정으로 잇고 공중 정원과 사내 어린이집, 부지 중앙 정원을 들인 뒤 전관을 정식 공개한다. 나선을 따라 오르는 동선은 미래를 향하는 상승감을 겨냥했다.

기념관 내부 구성도 창업자의 철학을 닮았다. 면적 8700㎡ 건물에서 창업자의 직접적인 흔적은 5층 한 곳, 기업인 이전의 생애와 유품을 놓은 자리 정도다. 나머지는 제품과 원재료, 식문화가 채운다. 같은 층의 ‘숫자의 숲’은 감이 아닌 숫자로 판단했다는 그의 경영 방식을 그대로 전시 언어로 옮겼다. 흥안대로를 향한 삼각 지붕도 옛 공장 지붕을 옮긴 게 아니라 공장 톱날지붕과 농업용 온실 형태를 가져왔다. ‘오뚜기 케챂’의 토마토가 자라는 자리를 연상시킨다.

카레 한 품목으로 출발한 오뚜기는 이제 국경 너머로 향한다.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을 주인공 역시 ‘보다 좋은 품질, 보다 높은 영양, 보다 앞선 식품’에서 나올 것이다. 근간은 그대로 두고 더 넓게 열린 함태호홀처럼, 결코 넘어지지 않는 오뚜기 정신으로.

정대연 기자 k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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