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브랜드스토리] 익숙한 달항아리에 담은 낯선 맛, 50년 뒤 ‘한국 도착 인증샷’ 주인공 되다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26-08-19 05:40:17   폰트크기 변경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대한경제=문수아 기자]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정답은‘뚱바라떼’인증 사진 찍기다.

공항 편의점에서 얼음컵과 파우치 커피,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를 구입, 얼음컵에 커피를 붓고 그 위에 우유를 천천히 흘려 넣는다. 한국 땅을 처음 밟아봤더라도 상관없다. 이미 본국에서 SNS로 숱하게 보고 연습한 레시피라 능숙하다. 진한 갈색 커피 사이로 연한 개나리색 우유가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찰나를 놓칠새라 스마트폰 카메라 촬영 버튼을 쉬지 않고 누른다. 이것이 오늘날 비공식적 ‘한국 도착 인증’ 공식이다.

한국인에게 더없이 익숙한 바나나맛우유가 이토록 낯설게 소비되는 광경은 이 브랜드의 타고난 운명과 닮았다. 바나나맛우유는 처음부터 낯선 것에 익숙한 것을 이식해 태어났다.

빙그레 바나나맛우유는 1974년 6월 출시됐다. 처음부터 이중 저항을 넘어야 했다. 정부가 낙농 육성책으로 우유 소비를 장려하고 있었지만, 흰우유는 여전히 낯선 음료였다. 게다가 바나나는 이름 조차 낯선 수입 과일이었다. 빙그레는 맛이 아닌 용기에서 답을 찾았다. 유리병보다 안전하고 폴리팩이나 종이 포장보다 고급스러우면서 낯선 과일에 대한 거부감까지 지울 수 있는 형태. 달항아리로 불리는 백자대원호를 골랐다. 낯선 맛을 가장 익숙한 그릇에 담은 묘수였다.

빙그레는 완벽한 형태를 지키며 시장을 키웠다. 설비 확충과 공정 자동화, 인쇄 방식 변경 등을 거치며 달항아리 모양의 바나나맛우유를 시장에 새겨넣는 시간이었다. 국내산 원유를 85% 이상 사용하고 해썹(HACCP) 인증까지 받아 품질도 압도했다. 하루 평균 100만개가 팔리며 가공유 시장 1위를 내주지 않았다.

◆냉장의 벽 넘은 멸균팩… “바꿀 것과 지킬 것” 원칙 세워

한국인의 뇌리에 박힌 바나나맛우유가 국경을 넘자 다시 ‘낯섦 극복전’이 펼쳐졌다. 해외 가공유 시장은 딸기맛, 초코맛이 대부분이라 바나나맛이라는 범주 자체가 생소했다. 물리적 장벽도 컸다. 우유는 소비기한이 짧은데다 전 유통 과정에서 냉장 상태를 유지해야되는 조건 탓에 장거리 해상운송과 통관이 필요한 원거리 시장은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 빙그레는 2009년 상온에서 장기간 유통할 수 있는 수출용 멸균팩을 개발, 낯섦을 극복해냈다. 달항아리 형태 용기 자체에 집착하지 않고 사각팩 전면에 크게 인쇄하는 방식으로 브랜드의 상징을 남기는 합리적 선택이 신의 한 수 였다.

세계 각국에 진출할 때마다 낯선 환경을 극복해야 했다. 빙그레는 원칙을 분명하게 세웠다. 빙그레 관계자는“현지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데 필요한 요소는 현지화하되, 핵심 브랜드 자산은 유지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며 “맛과 할랄 인증, 표시 언어와 식품 규격은 현지 기준에 맞추고, 오리지널 제품과 빙그레 브랜드, 단지 이미지, 한국을 대표하는 가공유라는 서사는 어느 시장에서도 지킨다”고 말했다.

원칙을 기준으로 각국의 공략법은 다르게 펼쳤다. 각국 소비자가 가장 낯설어하는 부분을 극복하는 데 방점을 뒀다. 북미에서는 생소한 브랜드의 한계를 빙그레를 인지한 아시아계와 K-푸드 소비자 중심으로 공략, 샘플링 제공 방식으로 주류 소비자와 접점을 넓히며 극복했다. 동남아에서는 현지 수요가 많은 타로맛과 밤맛 수출 전용 제품을 내놓고 할랄 인증을 확대해 종교ㆍ문화적 장벽을 낮췄다.

이도온화와 만든 달항아리 식기세트. /사진: 빙그레 제공

◆익숙함이 추억이 되기 전에… 단지를 다시 낯설게

바나나맛우유에 세계인이 반할 동안 국내에서는 새로운 저항이 생기고 있었다. 모두의 추억이 담긴 제품은 더이상 트렌드를 이끌 수 없다는 가장 까다로운 저항이었다. 빙그레는 익숙해진 단지 형태 바나나맛우유를 다시 낯설게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16년 현대백화점과 연 체험공간 옐로우카페와 ‘뚱바 키링’이 출발점이었다. 2019년 ‘단지가 궁금해’ 한정판은 용기는 그대로 둔 채 맛만 갈아 끼워 오디맛 하나로 누적 900만개, 매출 50억원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세계관 ‘빙그레 왕국’과 전용 유튜브 채널 ‘안녕단지’가 소통 창구를 넓혔고, 올해 5월 도자기 브랜드 이도온화와 만든 달항아리 식기세트는 와디즈 오픈 알림 신청이 20일 만에 2만3000건을 넘었다.

제품 자체를 흔들지 않는다는 원칙은 파생 제품에도 적용됐다. 무가당과 라이트는 오리지널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각 제품의 출시 목적에 맞는 맛을 따로 설계했다. 오리지널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당 섭취를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와 만나는 방식이다. 빙그레 관계자는 “제품은 바뀌지 않지만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며 “현시대의 트렌드를 가장 바나나맛우유답게 적용하는 것이 마케팅 전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반세기에 걸처 낯섦을 극복해 온 바나나맛우유는 누적 95억개 이상 팔렸다. 빙그레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메가 브랜드다. 바나나맛우유 용기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다. 유산으로 기록되는 순간 과거의 물건으로 굳는다는 긴장은 여전하다. 빙그레 관계자는 “한국적인 정서와 상징성을 과거의 유산으로 남기기보다 살아있는 자산으로 소비자에게 기억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수아 기자 moon@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프로필 이미지
산업부
문수아 기자
moon@dnews.co.kr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