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변동분 공사비 반영 안되고
설계보상비 인상마저 흐지부지
10.5조 가덕신공항 부지조성 등
기술형입찰 유찰리스크에 휘청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올 상반기 공공 건설시장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유찰’이다.
갑진년 새해가 밝은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시급성이 요구되는 추정금액 1조4000억원 규모의 기술형 입찰 6건이 연이어 유찰된 것을 시작으로, 공공시장은 여전히 ‘유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조달청 등 정부와 발주기관은 대응방안 마련에 착수하며 다양한 입찰 행정 개선대책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정부가 사업비 책정부터 공사 발주까지 통상 2년 이상 소요돼 물가변동분이 공사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점을 유찰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도 정작 공사비 조정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 탓이다.
심지어 지난 4월 정부가 내놓은 ‘건설경기 활성화 대책’마저 공공시장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대책 중 그나마 유찰 최소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던 ‘설계 보상비 인상’마저, 기획재정부 검토 과정에서 보상비 총액은 현행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결정되며 건설업계에 짙은 실망감을 안겼다.
설계보상비 현실화 무산은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꼽히는 추정금액 10조5300억원 규모의 ‘가덕도 신공항 부지조성공사’ 유찰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5월 발주된 이 공사는 1차 무응찰 유찰에 이어, 재공고도 현대건설 컨소시엄 단독 응찰로 유찰됐다.
유찰의 원인은 여러가지지만 정치적 결정이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공사기간이 촉박하게 책정된 것이 가장 결정적이다.
촉박한 공기를 극복하려다 보니, 10조5300억원에 달하는 공사가 단일 공구에 턴키(설계ㆍ시공 일괄입찰) 방식으로 발주되며 리스크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커졌다. 건설사의 간접비 부담만 5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자칫 공사 중단이라도 발생하면 건설사가 책임져야 할 지체상금 부담이 한국 건설산업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까지 올라간 것이다.
여기에 입찰 1개사당 보상비 지급한도를 현재 총 공사비의 1.4%에서 2%로 올리는 설계보상비 현실화가 무산되다 보니,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전에 선뜻 나서는 건설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국토교통부가 책정한 이 공사의 설계비는 817억원이다. 엔지니어링 업계가 추정한 1781억원에 훨씬 못 미치는 가운데, 만약 수주전에서 탈락하기라도 하면 ‘쥐꼬리’ 수준의 보상비를 받아 손실을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중론이다.
A사 관계자는 “총사업비 5600억원 규모의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공사’ 수주전에서 각사가 지출한 설계비가 120억원 정도인데, 가덕도 사업은 새만금의 20배 규모다. 단순 수주전을 위해 감당하기에는 적지 않은 설계비를 버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편, 건축 기술형 입찰 시장에서는 공사비 부족으로 인한 유찰이 심화된 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민간참여 공공주택 건설사업(이하 민참사업)이 구원 투수로 나섰다.
LH는 지난 4월 제1차 공모를 시작으로, 올 상반기에만 총 1만7000가구, 4조4000억원에 이르는 민참사업을 쏟아냈다. 이달 평택고덕지구 3개 블록 통합형 공모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대우건설은 이미 대방동군부지 및 남양주 양정역세권과 화성동탄의 민참사업 2건을 수주하며 지분율 기준 4600억원의 수주고를 올린 바 있다. 민참사업 수주액만으로도 공공공사 수주 실적 10위권 내 건설사를 제친 셈이다.
건설업계는 하반기에도 민참사업이 건설사의 수주 곳간을 채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B사 관계자는 “주요 토목공사 발주가 상반기 중 마무리된 가운데, LH가 민간을 통한 주택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선 만큼 민참사업 수주가 각사 매출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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