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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 여전히 푸르른 곳…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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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5-27 06:00:17   폰트크기 변경      

관람객들로 북적이는 청와대.


청와대 춘추관을 마지막으로 갔던 건 20년가량 전이다. 2003년 초 출범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출입했을 때다. 출입기자로 청와대에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오갔는데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이 대부분이었다. 오찬행사가 열렸던 영빈관 정도가 이외의 남은 기억이다.

20년 만에 기자가 아니라 관람객으로 찾은 춘추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경호원이 출입증을 꺼내주던 조용하고 다소 엄숙했던 공기는 사라졌다.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에 유치원생들, 외국인이나 지자체 단체 관람객들이 어우러져 더욱 북적였다.

관람객이 요새 부쩍 늘었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 이후 대통령실이 다시 청와대로 들어오면 개방이 중단될 것이라는 생각에 ‘막판’ 관람이 몰리는 탓이라고 한다.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매진되는 정도는 아니다. 다만, 해설사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예약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


대통령 헬기장.


바코드를 찍고 들어가면 ‘대한민국 청와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귀를 만나는데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린다.


관내 시설 소개와 사진들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북악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넓은 잔디밭을 만난다. ‘청와대 국민 품으로’라는 큰 조형물이 놓여 있는데, 과거 대통령 헬기장이었다고 한다.


왼쪽으로 꺾어지면 녹지원이다. 어린이날이면 대통령 내외와 어린이들이 함께하는 행사가 뉴스에 나오곤 했는데 그 배경이 바로 녹지원이다. 널따란 잔디밭인데 압도적으로 시선을 끄는 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반송’. 둥근 소반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송. 오른쪽은 상춘재



“우와!”, “저 나무 봐”, “저런 소나무도 있어?” 다들 감탄사와 함께 한마디씩 내뱉는다. 나 역시 이렇게 웅장한 소나무는 처음이다.

그 풍모에 반해버렸을까. 청와대의 역사와 시설, 대통령들과 엮인 소재를 검색하고 왔는데 머릿속에는 이미 다른 글들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푸르름, 나무다.

청와대는 기와만 푸른 게 아니다. 수령이 170년이 넘었다는 반송처럼 곳곳에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에 심은 노거수(老巨樹)들이 남아있다. 녹지원 반송과 회화나무, 상춘재 말채나무, 버들마당 용버들, 구 본관터의 주목까지. 이런 나무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청와대라는 공간과 대통령의 정원사들(?) 덕분에 고목은 애지중지 후한 대접을 받았으리라.


상춘재


청와대에서 나무를 찾는 여정은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윤보선 대통령과 청와대를 사용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들은 이곳에 나무를 심었다. 적어도 1주, 많게는 7주까지 심었다. 총 34주여서 가는 곳마다 쉽게 만날 수 있다.


일례로 상춘재 앞마당에는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심은 백송,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동백나무가 마주하고 있다. 상춘재 바로 옆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심은 은행나무가 서있다.


청와대 백악교 옆 연못과 정자


조금 더 걸으면 졸졸 흐르는 냇물과 연못, 정자가 있는데 참 예쁘다. 관람객들이 정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대통령들도 저랬을까.


본관은 안 갈 수 없다. 제일 북적이는 곳이다. 계단에는 관광객 동선이 얽히거나 넘어지는 사고를 막고자 사진촬영 금지다. 계단 위 벽에 걸린 웅장한 금수강산도 때문에 여기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2층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멈추지 말고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기를 유도한다.


청와대 본관 계단에 결린 금수강산도


벽에 걸린 그림과 작품들도 눈에 들어온다.


국무회의가 열리던 세종실 입구 양쪽에는 학과 호랑이를 수놓은 자수 액자가 걸려 있다. 문관과 무관 관복 가슴에 새겨진 자수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이외에도 이곳저곳 그림과 자수, 공예품, 병풍에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다. 대통령이 심었거나 오래된 나무들에도 친절하게 안내문이 설치돼있다.


이제는 공원이자 관람하는 장소다.


벽에 걸린 작품에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다.


본관 인왕실에는 푸른 빛의 큼지막한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다.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화백과 작품명만 작게 표시돼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 화백에게 부탁해서 그린 그림을 걸었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그림을 찾아 다시 걸었다고 한다.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


세종실 입구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영부인 집무실 가는 복도에는 역대 영부인 사진이 걸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 그림과 김건희 여사 사진은 아직 없다. 초상화는 그렸을까.

본관에서 나와 왼쪽으로 걷다 보면 산책길 입구를 만난다. 계단을 올라 대통령 관저까지 30분 정도 걸리는 코스다. 가는 길에 불상과 암자가 있어 지루하지 않고 감상하며 쉬어 갈 수 있다. 오운암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 글씨를 새긴 것이라고 한다.


오운암


이 길에서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청와대 동산에서 바라봤다고 했는데 그곳이 여기 아니었나 싶다.


내려오면 대통령 관저다. ‘어질고 오래 살라’는 의미의 인수문을 지나면 아름다운 기와와 처마를 만난다. 푸른 기와를 얹은 본관과 관저는 물론 상춘재와 침류각까지, 청와대는 전통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 처마


관저 내부는 공개하지 않고 침실, 거실, 만찬장이라고 외부에 푯말만 붙여놨다. 사량채라고 할 수 있는 청안당도 운치있다. 한번 살아볼만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침류각


지금 청와대는 멋드러진 나무와 조경, 목조건축이 잘 꾸며진 공원 같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다시 본래의 기능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다가 대통령실이 이전하면 다시 비워지겠지. 그때의 청와대는 또 어떤 모습일까.

정권은 바뀌고 세월은 간다. 700년이 넘었다는 청와대 터줏대감 주목은 그 세월을 말없이 지켜보며 함께했다. 이제는 줄기 대부분이 죽었지만, 한 부분 껍질이 살아 마지막 안간힘을 짜내며 푸르름을 지키고 있다. 청와대는 여전히 푸르다. 달이 바뀌면 더욱 짙어질 것이다. 그 짙은 푸르름은 계절 따라 찾아오는 당연한 빛이 아니라 안간힘을 다해 지켜낸 결과가 아닐까. 


7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주목


글ㆍ사진=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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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부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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