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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 APEC 기다리는 천년고도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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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9-23 06:00:53   폰트크기 변경      
역사와 젊음이 어우러지는 황리단길

처음 가본 불국사ㆍ석굴암ㆍ첨성대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


“경주를 아직도 못 가봤다고?”


경주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하면 항상 이런 반문이 뒤따른다. 그다음은 “수학여행 때 안 가봤어?”다. 우리 나이 때는 경주가 수학여행 단골코스였다.


우리 학교도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선배들이 밤에 자꾸 ‘탈출’해 사고를 치니 장소를 옮겼다고 전해들었다. 그래서 내 수학여행지는 도망갈 곳이 없는 설악산 골짜기였다.


‘경주 김가’인데도 경주를 못 가봤다는 말에 지난여름 가족여행지가 경주로 정해졌다.


경주역 앞 ‘2025 APEC’을 알리는 선간판


경주역에 내리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알리는 선간판이 손님을 맞이한다. ‘맞아. APEC이 다가왔구나.’ 숙소로 가는 택시기사님과의 대화에서도 APEC이 화제다. “APEC 준비하느라 리조트를 리모델링하고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오겠죠. 김정은도 올까요?”, ‘보문관광단지(APEC 주무대)를 보셔야 해요”.


신라의 천년 고도, 그리고 다시 천년이 지난 후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너머 나라들이 이 도시에 모인다. 지금 경주는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황리단길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푸르른 능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경주에 와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핫플레이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이 뜬 이후로 전국 곳곳에 새로 뜨는 곳에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망원동은 ‘망리단길’, 이런 식이다. 황리단길은 황남동에 있다. 황남의 한자가 ‘皇南’이니, 황리단길은 임금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능과 궁, 고찰을 상상할 수 있겠으나 이곳은 젊음의 거리다. 신라의 왕들이 잠들어있는 곳 옆이 파릇한 젊은이들의 활기로 가득 찬다. 역사와 젊음이 공존한다.

예상보다 좁은 길에 다양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그런데 빵집이 참 많다. 경주빵이나 십원빵은 들어봤는데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이름의 빵을 파는 가게들이 황리단길 곳곳에 들어서있다.


얼굴빵 사진 찍는 법


우리는 얼굴빵을 골랐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부처님 얼굴 모양의 빵인데 사진 찍는 사람이 이 빵을 들고, 멀리서 포즈를 취한 사람의 앵글 속 얼굴을 가려 찍는다.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이 얼굴빵으로 겹쳐진다. 맛도 맛이지만, 이런 사진찍기 놀이에 사람들이 이 빵을 산다.



핫플레이스 황리단길

딸이 이끄는 대로 다음은 책방에 갔다. 경주 황리단길에서 서점이라고?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이라 책방 이름은 ‘어서어서’다.


어서어서 책방 내부 모습


다른 데서 살 수 없는 책을 파는 곳은 아니다. 그런데 작은 책방에 사람이 많다. 분주한 여행 도중에 잠깐 서서 조용히 책을 읽는다.


책을 사면 ‘읽는 약’이라고 써진 ‘약봉투’에 책을 담아준다. 봉투에는 산 사람이나 받을 사람 이름을 써주고, ‘1일 ○회 ○일분’, ‘취침 전 ○분씩 읽기’라고 쓴다. 다양한 스탬프를 명함만 한 종이에 찍어 나만의 책갈피를 만들 수도 있다.


어서어서 책방에서 책을 사면 약봉지 같은 봉투에 책을 넣어준다.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이곳을 시끌벅적한 황리단길에서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만들었다. 상술로 보일 수도 있지만, 서점 안에 붙여놓은 글이나 안내를 보면 주인장이 책을, 읽기를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끄덕이게 된다.


정원 같은 대릉원


다음은 황리단길 초입에 있는 ‘대릉원’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능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잘 꾸며놓은 정원의 배경 같다.

12만6500㎥ 면적의 이곳에는 미추왕릉과, 쌍봉 모양으로 경주에서 가장 큰 황남대총, 천마도가 발굴된 천마총 등 23기의 고분이 있다. 고분 내부를 볼 수 있는 천마총은 입장료를 받는다.


경주 고분 중에는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는 곳들이 많다. 다들 신라의 왕들일 테니 경주 김가인 나에게는 할아버지들이다. 벌초는 못하더라도 절이라도 올려야 하는데…. ㅋㅋ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불국사


내게 경주라고 하면 당장 떠오르는 곳은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다. 국사 시간이나 우표, 동전까지 다양한 곳에서 접한 곳들이다.


여행이라는 게 그곳에 처음 온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기 마련이어서 세 곳을 가야 한다는 내 의견이 관철됐다.

불국정토를 현세에 구현했다는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자하문, 대웅전이 남북으로 이어진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은데 지금 모습은 본래 사찰의 8분의 1로 줄어든 규모라고 한다.


다보탑


다보탑을 만났다. 직접 본 다보탑은 생각보다 컸고 생각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런데 맞은 편 석가탑이 없었다면 이리 아름다울까. 전혀 다른 두 모습이지만, 서로 어우러지며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었다.

단체 관광객을 안내하는 해설사의 설명을 엿듣게(?) 됐는데 다보탑 돌사자상이 본래 4개였다고 한다. 이제는 하나만 남아있다. 일본에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해설사는 영국에도 하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전한다. 돌사자를 찾으려는 움직임은 계속 되고 있다.

일제가 다보탑을 해체했는데 그 안에 무엇이 있었으며 무엇을 가져갔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옆의 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리경 등 소중한 유물들이 발견됐으니 다보탑도 그에 못지않은 우리 유산을 담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무얼 훔쳐갔는지도 알려주지 않으니 훼손이나 도굴 수준을 넘어서 지워버렸다고 해야 할까.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기도 했다. 일본과의 악연이 깊다. 지긋한 나이의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스쳐갔는데 해설사가 이런 사연들도 전해줄까 궁금했다.



부처의 나라로 오르는 돌계단


백운교, 청운교(왼쪽)와 천왕문으로 오르는 돌계단


불국사에서는 사찰과 불상, 석탑과 처마까지 불교 미술의 정수라는 말이 무엇인지 비로소 체험하게 된다. 하나 더. 불국사 곳곳의 계단들도 눈여겨볼 포인트다. 특히, 청운교와 백운교 계단이 압권이다. 예전에는 밑에 연못이 있어 ‘다리’였지만 지금은 물이 없어 다리라고 불리지만 모습은 계단이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저 멋있다. 부처의 나라로 올라가는 돌계단. 아픔도 있지만, 아름답게 놓여진 굳건한 돌계단을 바라보게 된다.


불국사 대웅전 내부


대웅전에는 절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절을 올리는 모양새를 보면 진짜 불교신자인지 관광객이 그냥 한번 올리는 것인지 보인다.


아들이 고3이라 절을 한번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접었다. 대신 불국사에서 나오는 길 기념품 파는 곳에서 자녀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물고기 반지를 하나 샀다.


토함산석굴암 일주문


불국사에서 택시를 타고 석굴암으로 향한다. 주차장에서 내려 올라가면 바로 토함산석굴암이라고 쓰여진 일주문을 만난다. 여기서 600m 정도 걸으면 석굴암이 나온다.


가는 길에 나무가 우거져 따가운 햇볕을 막아준다. 걷기에 무척 좋은 길이다.


석굴암 가는 길


석굴암은 크지 않다. 안에 들어서면 본존불과 그 옆 여러 보살상, 나한상 등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보존을 위해 유리벽으로 막아 놓아 감상하는 눈길과 마음에도 칸막이가 쳐진다. 사진 촬영도 안된다. 공간도 넓지 않아 오래 머물기도 민폐다.


옛날 수학여행 때 왔으면 유리벽 없이 만날 수 있었을까. 일본강점기 때 시멘트로 시행한 엉터리 복원이 계속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또 열이 받는다.


석굴암 외부


이제 남은 한곳은 첨성대다. 공원 한가운데 있는데 장소가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도 든다.


밤에 갔는데 빨강과 파랑 등 다양한 색의 조명이 바뀌며 첨성대가 연출되고 있었다. 다소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낮에 오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감상하기는 어렵다.


붉은색 조명을 입은 첨성대


멀리 능들이 펼쳐져 있는데 경주만의 야경이다. 곳곳에 다소곳한 능선으로 누워있는 능들은 무덤이라기보다는 언덕처럼 자연스럽다. 마음도 그 곡선처럼 느긋해진다.


완만한 곡선의 능들이 연출하는 경주만의 아경



2박3일의 일정은 경주를 돌아보기에 짧다. 내년 봄이나 APEC이 끝난 후 언젠가 느긋한 일정으로 다시 오기로 한다. APEC 준비에 새로 꾸민 리조트도 좋겠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시간까지 남는 시간이 있어 들른 스타벅스에는 느긋하게 이 도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경주에서는 스타벅스도 기와지붕을 하고 있다. 경주에는 한옥이 많다. 한옥이 아니더라도 모두 기와를 얹고 있다. 술집도, 경찰서도, 편의점은 물론 맥도날드도 기와지붕이다. 우리가 근대화를 재촉받지 않았다면 이 도시 말고 다른 도시에도 이런 모습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한류 열풍에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이 크게 늘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만나는 일은 이미 흔하다. 경주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APEC이 열리고 나면 더 유명해질 것이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후 이 도시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최근 ‘K-Culture’ 열풍은 어설픈 흉내내기가 아니라 우리 그대로의 모습에 세계인들이 주목한다는 걸 알려준다. 과거의 역사와 젊음의 역동을 함께 품은 경주. 과거와 현재의 우리 모습이 공존하는 곳, 가장 우리다운 도시다. 


경주에서는 술집, 경찰서,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도 기와지붕을 쓰고 있다.


글ㆍ사진= 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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