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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예측, 예방도 어려운 중처법… 오직 ‘경영진 엄벌’에 칼끝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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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0-01 07:22:54   폰트크기 변경      
[건설안전시스템 이대론 안된다 ②법령] ‘페이퍼워크’ 내몰리는 건설사

경영진 안전보건 확보 의무 강화
사망자, 법 시행전보다 되레 증가
기업들 형사처벌ㆍ제재 회피 골몰
입법 취지 못 살리고 꼼수만 늘려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2022년 1월27일, ‘산업재해 예방’을 목표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지 약 3년 반이 지났다. 이 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영진 처벌’이 핵심이다.

법 시행 이후 산업 현장의 안전 수준이 높아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일부 있지만, 산재 사고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다. 법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진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재해자 수는 법 시행 후인 2022년 13만348명에서 2023년 13만6796명, 지난해 14만2771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법 시행 직전인 2021년(12만2713명)보다도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사고재해자와 질병재해자도 모두 증가 추세다.

총 사망자수도 법 시행 전 연평균 2076명에서 법 시행 후 연평균 2112명으로 오히려 소폭 늘었다. 특히 업무상 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뜻하는 사고 사망자 수도 2021년 828명에서 법 시행 첫해인 2022년 874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이후 2023년 812명으로 감소했지만, 지난해 827명으로 다시 법 시행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법 시행에 따라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가 강화됐는데도 산재 억제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산업안전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라 경영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는데도 산재 사고가 줄지 않는 이유로 ‘주객전도’된 산재 예방 시스템을 지목했다.


안전 투자 등 산업 현장의 실질적인 환경 개선보다는, 준법경영 의지가 있는 기업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과잉 규제나 실효성 없는 규제만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전 고용노동부 성남고용노동지청장)는 “예측도, 이행도 어려운 법 규정을 기업들에게 들이밀면서 ‘안 지키면 엄벌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보니 기업들은 형식적으로라도 처벌을 피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예산과 인원을 쏟아붓더라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비판했다.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과 관련해 ‘사업장의 특성ㆍ규모 등을 고려한 적정한 이행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형사처벌이나 행정제재를 피하기 위한 ‘페이퍼워크(서류작업)’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견건설사 법무팀장인 A변호사도 “지금의 산재 예방 시스템은 사고가 나지 않기만을 바라며 운에 맡기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이 지금처럼 ‘경영진 엄벌’이라는 위하력(범죄 억제력)에 방점을 둔 상태에서는 입법취지가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사후 처벌을 통한 규제 강화보다는 싱가포르 등 산업안전 모범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해 ‘사전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기본적으로 예방 시스템에 집중하고, 처벌은 ‘최후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중대재해대응그룹 부문장인 김영규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이 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기능적인 연계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법 제4조 1항 4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위험성평가’ 등을 제대로 이행하도록 경영책임자가 총괄 관리 조치에 집중해야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경영체계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체제가 유기적으로 연계돼 현장 작동성을 높이고 실질적인 중대재해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1항 4호는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중 하나로 ‘안전ㆍ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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