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2개 사건 중 73% ‘수사 중’
1심 판결 무죄율, 타 사건의 3배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형사책임을 묻기 위한 수사와 재판이 하염없이 길어지면서 기업들의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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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한경제 DB |
국회입법조사처의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부터 지난 7월까지 중대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수사 대상 사건 1252건 가운데 73%에 달하는 917건이 여전히 ‘수사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산업안전보건법ㆍ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는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인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는 경찰이 각각 수사한다. 기소 여부는 검찰이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구체적으로 2022~2023년 노동청 수사 단계에서 6개월을 초과해 처리된 사건 비율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50.0%)이 다른 형법ㆍ특별법 범죄(10.3~14.6%)나 노동 관련 범죄(9.0~35.5%)보다 현저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도 6개월 안에 처리된 사건 비율은 30%에 그친 반면, 6개월을 초과해 처리된 비율은 56.8%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수사기관의 과중한 업무와 전문성 부족으로 수사기간이 길어지면서 기업들의 발목이 묶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처리 기간이 길어질수록 법의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속한 수사ㆍ기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판 단계도 문제다. 어렵게 재판에 넘겨져도 ‘엄벌’이라는 취지와는 거리가 먼 판결이 많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1심 판결의 무죄율은 10.7%로, 일반 형사사건 무죄율(3.1%)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수사기관의 수사 지연과 처리 기간 장기화 사유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의 범죄 구성요건이 불명확하거나 모호하다는 점 등을 짚었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ㆍ여당이 추진 중인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1년 뒤 검찰청이 폐지되면 수사 지연 문제나 ‘엉터리 수사’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성남고용노동지청장을 지낸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은 내사 단계에서부터 노동청 특사경이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는데, 지금도 특사경의 수사 전문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앞으로 검사의 수사지휘권까지 사라지면 엉터리 수사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당이 발의한 검찰개혁 법안에는 국가수사위원회가 특사경을 ‘통제’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지금처럼 검사의 수사지휘 기능을 제대로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특별사법경찰관은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차장검사 출신인 김영규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도 “중대재해 수사 과정에서 기본권 보장과 적법절차 구현, 국가 수사권ㆍ형벌권 행사의 통일성ㆍ일관성 등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법률 전문가인 검사의 특사경 수사지휘∙감독 기능은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검사의 보완수사권도 없애는 분위기 속에 특사경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검찰청 폐지까지 1년 남은 상황에서 부작용을 최대한 분석해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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