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생산 즉시 소비가 기본성질인데…ESS, 대규모 에너지 충방전
전문가 “향후 발생할 기술적 위험 예측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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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김기봉 기자. |
[대한경제=신보훈 기자]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배터리 화재로 인해 장주기 ESS(에너지저장시스템) 구축 사업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백업 전원인 ESS가 열폭주하면 전력계통에 악영향을 주고 최악의 경우 대규모 정전까지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의 발화점으로 지목되는 무정전전원장치(UPS)와 ESS는 같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면서도 그 규모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UPS는 갑작스러운 정전에도 데이터 송수신에 대응하기 위한 설비다. 이번에 화재가 난 배터리의 구체적인 수치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에너지 용량은 수백㎾h∼수㎿h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상업용 ESS는 대규모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 시 공급하는 설비로, 에너지 용량이 수십㎿h∼수백㎿h에 달한다.
배터리는 셀을 기본 단위로 여러 개의 셀이 모여 모듈(Module)과 팩(Pack)을 구성하고, 여러 개의 팩이 모여 랙(Rack)이 된다. ESS는 가장 큰 랙을 기본 단위로 한다. 용량 면에서 UPS와 ESS는 차원이 다른 설비인 셈이다.
특히 전력계통에 연계된 ESS는 화재 시 단순한 설비 전소로 끝나지 않는다. 가령 ESS에서 전력을 송출하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전력계통 불안정성을 높이고, 해당 지역에 정전을 일으킬 위험성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배터리의 화재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017∼2019년 재생에너지 발전이 급증하면서 백업설비인 ESS도 확충됐는데, 이 기간 ESS 화재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이후 안전 관련 규정을 강화했음에도 사고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도 강원 태백 ESS에서 화재가 발생해 배터리 셀 90개가 소실됐다.
화재 원인도 대부분 불명확하다. ESS 화재는 배터리 과충전 상태이거나 주변 온도가 높았던 환경에서 발생했으나, 학술적으로 정확한 발화원인이 규명되진 않았다. 일단 사고가 나면 배터리를 포함해 일대가 소실되는 경우가 많아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기도 어렵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규모 ESS는 더 빠르게 늘어날 예정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 재생에너지 설비는 2023년 대비 4배 이상 늘어나고, 배터리 ESS도 10GW 규모로 확충돼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10GW는 표준원전 10기에 해당한다. 결국 화재 위험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규모 ESS를 확충해야 하는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전기는 생산 즉시 소비하는 것이 기본인데, ESS는 휴대폰ㆍ전기차와 비교할 수 없는 대용량 에너지를 저장한다. 앞으로 운영 과정에서 어떤 기술적 위험성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화재는 그 대표적인 사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스페인ㆍ칠레 등 대정전 사례는 재생에너지에 편중된 전력시스템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며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ESS만 늘리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는 전력 시스템의 큰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보훈 기자 b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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