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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 숲따라 오르고 물따라 내려오는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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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0-30 10:22:40   폰트크기 변경      
아름다운 계곡으로 유명한 유명산

‘유명농계’…가평8경

변화무쌍한 모습…물보라ㆍ물소리에 압도


유명산 전경. 너머로 용문산도 보인다. / 사진 : 산림청 제공


가을에 들어섰는데도 한동안 비가 내렸다. 며칠 이어진 비에 ‘가을 장마’라는 말도 나온다. 등산객들은 보통 비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 정도 비가 내린 후라면 기대를 갖게 하는 산행이 있다. 바로 계곡길 산행이다.

우리나라 여름엔 항상 비가 많아 이번 여름에도 비온 후 몇 번 계곡을 찾아보긴 했지만 제대로 된 물을 만나지 못해 아쉬움을 품고 있던 터였는데 며칠 이어진 비에 한 번 더 찾아가 보기로 했다.

계곡으로 유명한 유명산이다. 그래서 유래한 산 이름은 아니지만, 유명산 계곡은 ‘유명농계(有名弄溪)’라 하여 가평8경 중 하나로 알려졌다.


휴양림 시설이고 야영장도 있어서인지 주차장이 정말 크다. 주차장 끝쪽에 연결된 산길을 향해 가는데 물소리가 먼저 반긴다. 물이 많긴 많은 모양이다. 오늘은 ‘물때’를 제대로 찾은 듯하다.


유명산2교 밑 계곡물


유명산2교 아래로 흐르는 물의 기세가 아주 대단하다. 좌측 계곡길 쪽으로는 몇 개의 단으로 조성된 사방댐이 보인다. 산림 재해와 계곡 침식을 막기 위한 인공 시설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물이 많고 물살이 강한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방댐


들머리는 오른쪽 숲길 쪽이다. 계곡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여기는 휴양림을 보유한 산 아니던가. 숲길도 충분히 즐길 게 많을 것 같아 숲길로 올라 계곡길로 내려오며 유명산의 하이라이트를 즐기자는 계획이다.

숲 속의 집으로 가는 차도를 잠시 걷다 왼쪽 길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는 산길이다. 급한 경사는 아니지만 바위들도 있고 약간은 거친 느낌의 시작이다.

이번에 비가 많이 내리기도 했지만, 올여름 가평 쪽에 집중 호우가 있었던 탓인지 길도 조금 상한 듯하다. 빗물에 상처 입은 흔적들이 보인다.

길은 조금 아쉽지만 산 전체를 덮고 있는 나무들은 역시나 참 멋스럽다. 길쭉길쭉 뻗은 나무의 선들이 시원하다. 역시 국립 휴양림이다.

쭉쭉 뻗어 자란 저 나무들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궁금증은 머지않아 풀린다. 아주 커다란 솔방울 같은 것들이 떨어져 있어서 뭔가 하던 차에 함께한 길벗의 “잣송이다”라는 말에 “아하…!”

그렇다. 가평은 잣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나 또한 막걸리를 통해 수 없이 접하기도 했으니까. 알고 나면 달라진다고 이젠 콧속으로 잣향이 파고 들어오는 듯하다.

그렇게 올라가는데 위쪽에서 툭하고 뭔가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선 돌멩이 같은 것 몇 개가 굴러와 일단 피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달라 내려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막 떨어진 잣송이


돌멩이가 아니다. 막 가지에서 떨어진 잣송이다. 여기저기 떨어져 말라버린 잣송이들과는 다르게 약간 푸른 빛을 띈 잣송이다. 내 주먹보다 훨씬 크고 탄탄한 모습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겉은 송진 같은 진액으로 덮여 있고 묵직하니 무게감도 있다. 그나저나 저게 내 머리 위로 떨어졌으면 어쩔 뻔? 하긴 잣송이에 맞아 죽은 사람 이야길 들은 적이 없긴 하다.

등산객을 위한 벤치들이 보인다. 잠시 앉아 시원하게 뻗은 잣나무와 널려 있는 잣송이들을 보며 잠시 시간을 멈춰본다.

산을 다니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적당한 곳에 위치한 이런 벤치들에서는 지친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하는 배려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잣나무 숲도 끝나고 나무들 사이로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주변에 더 높은 봉우리가 없는 걸로 봐서 정상인 것 같다. 우뚝 솟은 모습은 아니어서 시원한 뷰가 있을지 모르겠다.


유명산 정상 표지석


정상이다. 확 트인 정상은 아니지만 동쪽 방향에 마련된 작은 전망대에선 용문산 정상에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멋진 능선을 볼 수 있다. 천미터가 넘는 봉우리다 보니 웅장한 맛도 있고 장군봉 쪽은 구름에 살짝 가려져 약간 신묘한 느낌도 있다. 남쪽으로는 남한강이 보일듯 말듯하다.


정상에서 본 용문산


작은 바위에 앉아 있던 등산객 한 분이 자신은 다 쉬었다며 자리를 내어준다. 마땅한 자리가 없어 어쩌나 하고 있었는데 그 마음이 참 곱다. 피곤하고 지친 건 모두 같을 텐데.

“자, 이제 계곡으로∼.” 계곡으로 향하는 길은 처음엔 편안하게 놓여 있다. 경사도 완만하고 부드러운 흙길로 되어 있어서 부담이 없다. 약간 거친 길과 편안한 길이 반복되다 경사가 급해지고 슬슬 너덜해지는데 계곡이 머지않은 것 같다.

여기저기 이끼가 자란 돌과 바위들이 보이고 크고 작은 물길을 통해 산속의 물이 한쪽으로 분주히 모여든다. 지도상에 표시된 합수지점으로 향하는 듯한데 무언가에 홀려 일제히 빨려가는 모습이다. 물소리가 점점 커진다. 보이진 않아도 굉장한 계곡이란 생각이 든다.


드디어 계곡길이다. “와….” 어제 그제 내린 비 덕분인가 물이 정말 많다. 폭포수처럼 아래로 끊임없이 쏟아져 내려온다. 물보라와 물소리에 완전히 압도되는 광경이다.

좀 전 너덜길에서의 무료할 정도의 조용함을 생각해 보면 같은 산인가 싶을 정도다.


유명산 계곡


10분 정도 내려갔을까. 어비산 쪽에서 내려오는 것 같은데 그 물과 합쳐지며 넓은 물길을 만든다. 마치 강처럼 평온하고 점잖은 모습으로 변해 순하게 흐른다. 또 머지않아 물길을 좁혀 사납고 거칠게 울어댔다가 또다시 넉넉하고 편안한 목소리를 낸다.

계곡은 이렇게 몇 차례 표정과 낯빛을 바꿔가며 때로는 세차게 마음을 깨우고 때로는 잔잔하게 마음을 재운다.

하지만 물 좋고 바람도 좋은 정자는 없는 법. 한 가지 불편한 게 있는데 바로 걷는 길의 상태다. 물이 많을 때는 걷는 길까지 물이 차오르는 것 같은데 그 말은 산길 또한 계곡의 일부라는 것이다. 계곡 바닥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 계속 돌과 바위를 밟고 넘어가야 한다.


계곡 옆 너덜길


계속 걷다 보니 발바닥도 아프고 속도도 좀처럼 나지 않는다. 물세가 약해지는 하류 쪽에선 살짝 지루한 느낌도 없진 않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제 다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 이제는 계곡을 왼쪽에 두고 걷게 되는 모양이다.

다리를 건너다 계곡 상류 방향으로 서본다. 계곡물과 바위로부터 숲, 푸른 하늘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입체감 있게 놓여 있다.


유명산 계곡의 철제교와 단풍 숲 / 사진 : 가평군 제공


이제 너덜길도 끝나고 평평하게 흙으로 포장된 길이다. 앞쪽으로 산길에 들며 봤던 사방댐이 보인다. 가슴 뛰는 계곡길도 끝이고 오늘의 산행도 끝이다.

변화무쌍한 모습의 계곡, 멋진 계곡을 즐기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불편한 산길. 늘 좋은 것만도 아니고 항상 나쁜 것만도 아닌, 우리가 사는 삶과 닮은 듯한 산행이었다.


글ㆍ사진=박종현 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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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부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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