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아래 흐르는 하천
하천 위에 지은 도로
걷고 달리는 사람들
서대문의 러너들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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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제천에서 달리는 사람들. |
중요한 건 끝까지 멈추지 않는 마음이다. 홍제천변을 달릴 때 나는 자주 생각한다. ‘내일도 이 길 위에서 나를 만날 수 있기를.’ 그 마음이 오늘을 살게 하고, 글을 쓰게 하고, 다시 달리게 한다. - 소설 ‘연희동 러너’ 중에서
홍제천은 북한산에서 발원해 서울 종로구와 서대문구를 지나 마포구에서 불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흐른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그저 냄새 나는 동네 개천이었는데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사업 이후 천변에 길이 생기고 운동기구들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의 휴식처로 변모했다.
경의선숲길 끝 사천교에서 시작해 홍제천을 거슬러 서대문구청 쪽으로 걸었다. 걷다 보니 나처럼 산책하는 사람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고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주민도 여럿이다. 뛰는 사람도 많다. 최근 러닝 열풍이 불면서 이길에서 뛰는 사람들이 더욱 늘었다. 홍제천이 러너들의 명소가 됐다고 한다. 겨울에도 말리지 못한다. 혼자 뛰는 사람, 둘이 뛰는 사람, 여럿이 모여 뛰는 풍경이 이어진다.
서울은 참 뛰기 좋은 도시다. 경의선숲길과 같은 긴 선형공원이나 서울 곳곳에 조성된 하천변 산책로와 한강변에서는 방해받지 않고 편하게 뛸 수 있다. 헬스클럽 러닝머신 위까지 합하면 지금 뛰고 있는 사람이 몇일까?
나도 달리고 싶다. 하지만, 시큰한 무릎과 추운 날씨, 이런저런 이유로 다음으로 미룬다. 언젠가는 심장이 쿵쿵 뛰는 달리기에 도전하기로 하지만 미루고 미루다 보면 결국 기회가 없을 것이다.
△홍제천과 내부순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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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에 아파트가 반사된 홍제천에 청둥오리 한쌍이 여유롭다. |
홍제천 위로는 내부순환로가 함께 달린다. 밑에서 보면 홍제천의 천장 같은 도로 하부와 도로를 받치는 교각들이 하천과 함께 이어진다. 콘크리트와 하천, 개발과 자연이라는 두 이미지가 대비되면서도 어우러지는 묘한 풍경이다.
하천에 먹이가 많은지 오리, 백로, 원앙과 같은 새들이 많다. 가끔은 무슨 새인지 모르는 처음 보는 새들도 만난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에 백로라니.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다리 밑에는 커다란 잉어들이 가득이다. 사람들이 먹이를 던져주니 다리마다 잉어떼가 모여 있다. 먹이를 주는 행위는 금지사항이지만, 이미 학습된 잉어들은 먹이를 달라며 다리 위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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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는 교각에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
과거에는 교각에 커다란 그림들을 걸었다. 르노아르나 모네, 이중섭 등 미술책에서 봤던 명작들을 걸으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이 길의 명물이었는데 저작권 문제로 내렸다고 한다.
지금은 그림 대신 담쟁이 같은 식물이 몇몇 교각을 감싸고 있다. 나름 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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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없지만 식물들이 교각을 감싸고 있다. |
이 길에서는 무언가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서대문구는 최근 야간 경관 개선공사를 통해 내부순환도로 아래 홍제천 밤풍경에 색을 입히고 있다. 걷다가 또다른 공사를 시작하려는 곳을 만났는데 음악분수 조성사업이라고 한다.
조명이 들어오면 밤에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은은한 불빛이지만 이곳에 사는 동식물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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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제천 야경 |
△홍제천의 명물 홍제폭포
한참을 걷다 보면 홍제천의 명물인 홍제폭포를 만난다. 지난 10월 기준으로 누적 방문객이 330만명을 넘어섰고, 이미 글로벌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가보면 항상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안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도 많다. 아마 등산을 마치고 이리로 내려온 듯하다. 가족 단위 방문객도 많다. 모두들 폭포와 함께 사진찍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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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제폭포를 비추는 거울 벽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 |
이런 인기 때문인지 다시 찾은 이곳은 과거보다 조금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다. 책방도 새로 들어섰고 폭포 맞은 편 1층 벽이 폭포를 비추는 거울로 포장됐다. 2층에는 몸을 폭 담을 수 있는 소파(?)도 마련됐다.
최근에는 복합문화센터도 문을 열었다. 1층에 미디어전시관ㆍ굿즈숍ㆍ관광안내공간이, 2층에는 카페ㆍ다목적공간ㆍ외부 테라스가 자리했다. 미디어전시관에는 가로 25m, 세로 2.4m 크기의 LED 스크린이 설치돼 홍제폭포의 사계절 풍경을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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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제천 물멍 명소 |
카페의 폭포 맞은편 2층 테라스는 ‘물멍’을 하거나 사진 찍기에 명당이다. 그래서 좀처럼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
폭포는 인공폭포다. 높이 25m, 폭 60m로 2011년에 조성됐다고 한다. 인공폭포라고 하니 약간 감흥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런 인공폭포를 만든다고 하면 반대도 많았을 텐데 10여년이 지난 지금의 결과는 대흥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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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제폭포 |
△홍제천 위에 세운 유진상가
길은 더 이어진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곳이 유진상가다.
유진상가는 1970년에 홍제천을 복개하고 그 위에 주상복합으로 지어졌다. 상가와 고급 맨션으로 지어져 ‘원조 타워팰리스’로 불리기도 했다. 세운상가, 낙원상가와 더불어 70년대 도시개발을 대표하는 곳이다.
90년대 들어 내부순환로가 건설됐는데 이 과정에서 유진상가 B동의 절반인 4ㆍ5층이 뜯겨나갔고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지금 유진상가 바로 옆으로 내부순환도로가 지나가는데 건물을 어떻게 잘랐다는 건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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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멘숀 |
유진상가 1층에는 마트가 영업하고 있다. 사람도 많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유진멘숀’이 있는데 사람이 살고 있는지 빈 곳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조금 스산하다.
이제 이곳은 49층의 문화ㆍ복지ㆍ업무시설을 겸비한 주상복합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번번이 좌초됐던 사업을 서대문구가 나서 성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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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제유연 |
이곳에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 지하로 흐르는 홍제천 물 위로 기둥이 세워져있는 공간이 있는데 ‘홍제유연’이라고도 불리는 지하예술공간이다. 기둥에 경관조명을 설치해 홍제천에 반사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고 예술과 공연 공간으로도 활용됐는데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 공간은 전쟁이 났을 때 탱크 진지로 사용되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북한군이 구파발 쪽으로 진격해 들어오면 유진상가를 방어진지로 쓰겠다는 구상이었다고 한다. 탱크는 들어오지 않고 예술작품이 그 자리를 채웠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진상가가 재개발되면 이곳을 흐르는 홍제천은 복원된다고 한다. 개발과 전쟁, 예술과 복원. 서울시는 최근 내부순환로 등을 지하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렇게 된다면 홍제천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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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순환도로 밑 홍제천 |
흐르는 하천을 오염시킨 것도 복원한 것도 인간이다. 하천 위에 교각이 세워지고 그 위 도로는 오가는 차들로 가득하다. 도로 밑 하천에는 백로와 원앙이 여유롭다. 사람들은 걷고 뛴다. 콘크리트와 하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 홍제천. 우리는 그렇게 함께 살고 있다.
글ㆍ사진=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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