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ㆍ효창공원ㆍ현충원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17개국에 215위
![]() |
|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도산공원. 회사에서 지척이지만 최근에야 가봤다. 동네 산책 장소, 웨딩 촬영 명소, 서울 추천 관광지 중 하나에도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공원 주변은 명품 매장과 맛집들로도 유명하다.
공원이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리고자 조성됐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곳에 도산과 부인 이혜련 여사가 함께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몇 년 전 한 예능프로에서 처음 알았다. 1973년 도산공원이 문을 열면서 망우리 묘지에서 도산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혜련 여사를 모셔 합장했다.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장소. 그런데 거기에 실제로 그가 잠들어 있다면 기억의 공기는 좀 더 무겁고 엄숙해진다.
사실 선생은 2년 앞서 세상을 떠난 제자이자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유상규 선생의 곁에 묻히기를 원했다. 도산이 망우리 묘지에 묻힌 이유다. 이후에는 도산을 따르던 많은 이들이 도산의 근처, 망우리 묘지에 묻혔다. 흥사단원으로 도산과 함께 옥고를 치렀던 허연 선생은 ‘도산의 발치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전한다.
선생이 영면하고 싶었던 곳은 제자의 옆이었고, 그를 따르던 많은 이들도 도산의 ‘발치’에 묻히고 싶어했는데 지금 그들은 멀리 떨어지게 됐다. 그나마 공원 기념관에 보관 중이었던 묘비는 2016년에 다시 망우리 옛 묘지로 자리를 옮겼다.
![]() |
| 도산공원에 있는 도산의 말씀. |
전해내려오는 사진 속 도산의 풍모는 항상 ‘댄디’하다. 며칠 전 찾은 도산공원에서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도산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사진마다 흐트러짐이 없다. 하나 예외가 옥고를 겪은 직후 머리를 산발한 모습이다. 일제가 그를 얼마나 핍박했는지 느껴지는 사진이지만, 선생의 눈빛은 여전하다. 도산은 반복되는 투옥으로 건강이 악화돼 광복 7년 전인 1938년 숨을 거뒀다.
공원에는 선생의 묘소와 함께 전신상도 있다. 50여년 전 공원 문을 열 때 세운 동상이 부식되고 안전에도 문제가 있어 당시 국가보훈처와 강남구청, 삼성전자가 새로 상을 세웠다. 여느 동상들과 달리 은빛인데 흐트러짐 없이 빛나는 선생의 모습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이제 변신을 앞두고 있다. 강남구는 올해 2월 도산공원 복합건물 설계 공모 최종 당선작을 발표했다. 기념관을 현대화하고 도서관과 공공주차장이 들어선다. 더 많은 이들이 찾고, 책을 읽고, 도산을 한 번 더 떠올린다면 선생도 좋아할 것 같다.
![]() |
| 도산공원 안창호 선생 전신상 |
△묘소ㆍ역사 따라가는 망우역사공원
망우리 묘지는 지금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불린다. 이곳에는 도산과 뜻을 함께했던 이들은 물론 한용운, 방정환, 박인환, 지석영, 이중섭 등 독립운동가와 문화ㆍ예술인 등 당대의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묘소를 따라 역사를 배우고 기리는 공원이다.
1920년대 서울에는 신당, 아현, 이태원 등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묘지가 부족해지자 일제는 1933년에 망우리공동묘지를 조성했다. 이후 각지에 흩어져 있던 묘지들이 이곳으로 이장됐다. 이런 과정에서 통곡할 일이 생겼는데 유관순 열사의 묘가 사라진 것이다.
![]() |
|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 / 사진 : 망우역사문화공원 홈페이지 |
1920년 감옥에서 순국한 열사는 이태원 공동묘지에 모셔졌다. 이후 망우리 공동묘지가 조성되면서 무연고자들을 한곳으로 이장해 합장했다. 그런데 유관순의 부모는 아우내 만세운동에서 이미 순국했고 오빠는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된 상태였다. 무연고자 신세가 된 유관순의 묘는 파묘됐다. 그리고 망우리 무연고자 합장묘에 함께 잠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잊혀진 건 아니었다. 훗날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가 세워졌고, 열사의 초혼묘도 만들었다.
![]() |
| 무후선열제단에 모셔진 위패들. |
국립서울현충원에서도 유관순 열사에게 향을 올릴 수 있다. ‘무후선열제단’에는 후손이 없거나 시신을 찾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유관순의 위패도 여기에 있다. 향을 올리고 고개를 숙인다.
제단에서 나오는데 약간은 서툰 한국말을 하는 가족이 임시정부요인묘역이 어딘지 묻는다. 무슨 사연일까. 함께 지도를 보며 밑이 충렬대이고, 여기가 무후선열제단이니 좀더 올라가면 된다고 설명해줬다. 아빠는 폭염에 지친 아이들에게 ‘렛츠 고’라고 독려하며 다시 길을 나선다.
현충원에 들어서서 현충문, 현충탑을 지나 더 오르면 독립유공자묘역이 나오고 이들을 기리는 충열대, 무후선열제단, 임시정부요인묘역, 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까지 오르게 된다.
현충원 정문에서부터 따지면 제일 많이 걸어야 하는 맨 뒷쪽이다. 하지만, 현충원 전체로 보면 제일 높은 곳이다. 독립유공자들이 잠들어있는 묘역에서 저멀리 한강과 서울 풍경을 내려다본다. 선열들도 이런 조국의 모습을 보고 계실까.
![]() |
| 현충원 임정요인묘소에 바라본 서울. |
임시정부요인묘역은 1993년 상해만국공묘에 안치돼있던 임정 요인 5위 영현을 국내로 모셔오면서 조성했다. 임정 2대 대통령 박은식, 외무총장 신규식 등 총 18위의 임정 요인이 안장돼있다.
한 청년이 지청천 장군의 묘비를 정성스럽게 닦고 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 둘은 ‘이분은 누구인지, 무얼 했던 분인지’ 서로 설명하면서 묘역을 돌아보고 있었다.
맨 꼭대기에 있는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 시신도 없고 이름도 없다. 탑은 독립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모습을 상징했다고 한다. 탑에는 독립군가의 한 구절이 적혀있다. ‘그리던 조상나라 다시 살리라. 그리던 자유꽃이 다시 피리라.’ 군가라고 하기에는 애처롭다.
![]() |
| 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 |
△효창공원, 삼의사와 백범 그리고 안중근
유관순 열사와 같이 유해가 없는 묘소는 또 있다. 효창공원에 있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다.
효창공원에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이른바 ‘삼의사(三義士)’ 묘가 있다. 광복 직후 백범 김구 선생이 일본에 있던 박열 등과 함께 독립운동가 유해 환국을 진행한다. 아무렇게나 암매장됐던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이들 3인의 유해가 수습돼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왔다. 죽어서 돌아오는 처연한 길이 아니라 만세 부르며 울며 반기는 5만명이 몰린 개선의 길이었다.
![]() |
| 안중근 의사의 가묘와 삼의사 묘소. |
삼의사 비석 옆에 비석이 하나 더 있다. 거기에는 ‘의사 안중근의 묘’라고 적혀 있다. 언젠가 안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모시겠다고 김구 선생이 만든 가묘다.
“내가 죽거든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달라.”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말했지만 아직 실현되지 못한 채 그가 돌아가신 1910년 이후 115년이 흘렀다. 고국에 돌아올 수 있을지, 가묘가 진짜 묘가 될 수 있을지는 해가 갈수록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 정부도 안 의사의 유해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는 없다.
그런데 과연 일본에 이에 대한 기록이 없을까. 안중근의 가묘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한일간의 간극을 상징한다.
![]() |
| 백범김구기념관 추모공간 창밖으로 보이는 김구 선생 묘역 |
효창공원에는 이외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세 분을 모신 묘역이 있다. 임정 주석 이동녕, 군무부장 조성환, 비서장 차리석 선생이다. 이들과 김구, 삼의사까지 효창공원에 잠들어 계신 7인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 ‘의열사(義烈祠)’다.
효창공원에 독립운동가들을 모신 김구 선생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백범은 광복을 보았으니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가 아닌 동족의 총탄에 숨을 거뒀으니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들
최재형 선생의 유해도 아직 찾지 못했다. 연해주에 온 안중근이 “집집마다 최재형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라고 했을 정도로 연해주 동포를 살피고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연해주 독립운동 대부는 1920년 연해주 참변에서 일제에 의해 제일 먼저 처형됐다. 시신은 찾지 못했다.
해방 후 현충원에 가묘를 세웠는데 가짜 유족을 세웠다가 진짜 유족이 나타나자 묘가 멸실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정부는 2023년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와 함께 현충원에 그를 다시 안장했다. 다만 선생의 유해는 순국 추정 장소인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 기념관 뒤 연덕에서 채취한 흙으로 대신했다.
![]() |
| 홍범도장군로 표지. |
타국에 모셔졌다가 고국에 송환된 독립운동가로는 홍범도 장군이 대표적이다.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그를 모신 항공기가 고국 영공에 개선장군처럼 진입할 때 ‘이제야 독립운동가들에게 제대로 대접을 하는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졌고 대전 현충원역에서 현충원까지 이어지는 길은 홍범도장군길로 이름 붙여졌다.
그러나 이런 환대도 잠시. 육군사관학교 흉상 설치를 두고 홍범도의 전력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영웅은 한순간에 격하됐다.
당초 카자흐스탄 고려인들 일부는 ‘정신적인 지주’격인 홍 장군의 유해 송환을 반대했다고 하는데 그들을 볼 면목이 없어졌다. 홍장군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홍범도는 물론 김구, 윤봉길, 안중근까지 조롱하고 폄하하는 자들과 글들이 많다. 독립된 대한민국에서도 이럴진대 나라가 외세에 흔들릴 때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 |
| 13일 현충원에 열린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식 [연합] |
광복 80주년을 앞둔 지난 13일 현충원에서는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식이 열렸다. 서울과 대전 현충원에 문양목ㆍ임창모ㆍ김재은ㆍ김덕윤ㆍ김기주ㆍ한응규 지사 유해 6위가 안장됐다.
정부는 국외에 잠들어있는 독립유공자들을 모셔오고 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의 모델인 황기환, 정두옥 지사와 전혜린이 번역한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의경(필명 이미륵) 지사 유해도 돌아왔다. 국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묘소는 17개국, 총 370기로 파악되고 있다. 이 중 155위가 봉환됐다. 여전히 215기, 215분의 독립유공자는 광복된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 |
|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글ㆍ사진=김정석 기자 jskim@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