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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하늘숲길 |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서울에는 산이 많다. 대도시에 살지만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서면 멀리 가지 않아도 산에 오를 수 있다. 동네 작은 산부터 이름에 ‘악(岳)’자가 들어 있는 험준한 큰 산까지, 취향과 체력에 따라 다양한 산을 고를 수도 있다. 어느 산이든 등산객이 넘쳐난다.
그런데 서울을 대표하는 산은 어디일까.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상징적으로는 남산이 아닐까 싶다. 남산타워(N서울타워)가 우뚝 솟은 남산의 모습은 서울의 대표 이미지다. 심지어 애국가에 동해ㆍ백두산과 함께 등장하는 곳이 남산이다. 그렇게 사랑받는 남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지난달 개통한 ‘남산 하늘숲길’ 덕분이다.
△해치버스 타고 가는 남산타워
남산 하늘숲길을 걷고자 스마트폰에서 검색에 나섰다. 남산 체력단련장부터 남산도서관까지 이어지는 1.45㎞ 구간이라고 하는데 용산구 후암동에 있다는 체력단련장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생긴지 얼마 안 된 곳이라 그런지 하늘숲길 자체도 지도에서 검색이 쉽지 않다.
남산도서관으로 갈까 하다가도 괜스레 시작점은 체력단련장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찾다 보니 누군가 다산콜센터에서 받아 올려놓은 답변을 발견했다. 화면을 캡처하고 집을 나섰다.
‘충무로역 2번 출구→01A, 01B 순환버스 탑승→남산서울타워 하차→버스 내려가는 길로 400m’. 뭐 어려울 것은 없다. 첫번째 미션인 충무로역 2번 출구에 도착했다. 마침 01A 버스가 도착해있다. 서울의 명물이 된 ‘해치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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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치버스 |
단풍놀이 겸 가벼운 등반을 즐기려는 일행들이 정거장마다 차에 오른다. 아줌마 또는 할머니들의 수다가 버스 안을 채운다. 시끄럽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들뜬 마음의 소녀들처럼 ‘깔깔깔’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해치버스의 핑크색과 잘 어울린다.
제법 경사도 있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남산서울타워 정거장이다. 여기서는 남산타워 쪽이 아니라 버스가 내려가는 왼쪽 길로 가라고 했다. ‘남산 하늘숲길’ 개통을 알리는 표시들이 많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왼쪽 길만 명심하면 된다. 450m 정도 내리막길을 가다 보면 남산 하늘숲길 입구를 만난다. 이제 시작이다.
△조망ㆍ매력 포인트 가득
사람들이 많다. 테이블과 벤치마다 오순도순 앉아서 대화하는 이들이다. 아마 반대편에서 올라와 일정을 마친 이들이거나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올라와 쉬는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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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쉼터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
하늘숲길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카메라 모양의 표시를 만났다. 사진 찍기 좋은 명당이라는 의미다. 옆을 보니 어떻게 앵글에 담아야 예쁜지 ‘모범답안’ 사진까지 붙여놨다.
하늘숲길 곳곳에는 약간은 과도해 보일 수 있는 이런 친절함이 이어진다. 하기야 한국 사람들은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먹거나 사진을 찍는 게 먼저이니까….
이곳은 나뭇잎 사이로 어우러지는 남산타워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다.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찍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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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하늘숲길 |
서울시가 당초 배포한 홍보자료에는 다양한 조망포인트와 매력포인트가 담겼다. 몰랐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읽고 왔으니 또 다른 미션이 주어졌다. 이들 포인트를 찾아 살펴보는 것이다.
방금 지난 곳은 소나무쉼터였구나. 이어 탐험가의 정원, 바위쉼터 등이 이어진다. 당초 설명에 비하면 그저그런 곳도 있지만, 중간중간에 지루하지 않게 넣어둔 스토리와 세심함이 걷는 길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쉼터에는 어김없이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앉아 집에서 써온 간식을 먹거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새소리도 함께한다. 다음에는 냉커피라도 싸와야지.
△노을처럼 물든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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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전망대 |
곧이어 노을전망대다. 전망대 펜스가 투명해 발끝 아래부터 하늘까지 전망이 탁 트인다.
이곳에도 포토 가이드라인이 붙어 있다. 예를 들어 손가락 하트 위에 남산타워를 얹어 찍는 사진과 같은 ‘제안(?)’이다. 그대로 연출하거나 좌우로 펼쳐진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다들 사진을 찍는 데 열심이다.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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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전망대에서 사진찍는 법 |
이후 느타니무전망대 벤치에서 잠깐 쉬는데 누군가 노을을 꼭 보라고 다른 이에게 권한다. 노을전망대에서 보는 노을이 너무 예뻐 며칠 동안 계속 오고 있다고. 지금도 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듯했다.
검색을 해보니 해지는 시간은 5시40분이다. ‘어쩌지? 지금 1시인데….’ 이래저래 주변에서 시간을 보낼 궁리를 해보지만 여의치 않다.
벌써부터 이렇게 인기이니 앞으로 해질녘이 되면 사람들이 얼마나 몰릴까. 데크 전망대 위에 인파가 너무 많이 몰리면 위험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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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하늘숲길 |
노을은 보지 못했지만, 가는 길 내내 단풍이 압권이다. “예쁘다”, “예쁘다” 소리가 이어진다. 다들 스마트폰을 들고 찍으며 걷는다. 메타쉐콰이어, 은행나무, 단풍나무의 노란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다. 서울 하늘에 어린 노을도 이런 색일까.
커다란 벚나무 옆에 마련된 벚나무 전망대 벤치에도 어김없이 빈자리는 없다. 조용히 속삭이며 쉬고 있는 모습이다. 벚꽃이 핀 봄에는 아마도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이곳에 줄을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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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향전망대 |
△자연과 함께하려는 노력
길을 가다 보니 길옆 나무 곳곳에 끈이 묶여 있는 게 보인다. 과거 길을 잃지 않게 표시를 해둔 것일까.
표시는 맞다. 하지만 길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길을 내기 위한 것이다. 서울시 직원들이 최적의 동선을 찾고자 숲 속을 다니면서 표시를 해 둔 것이다. 그때는 길도 없었다. 오늘 즐거운 산행은 누군가의 수고 덕분이다.
길은 알려진 것처럼 참 편안하다. 등산화를 신고 온 것이 무색할 정도다. 지나는 사람마다 ‘좋다’, ‘편하다’라고 말한다. 이런 반응은 당초 이 길을 만든 목적이다. 유모차를 끌고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보행약자까지 배려한 길이 남산 하늘숲길이다.
그래서 등산보다는 산책에 가깝다. 이미 많은 산에 데크가 깔렸다. 누구나 쉽게 산을 찾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런 길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이곳을 방문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하늘숲길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을 접한 후 “이런 공간을 더 많이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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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서울숲길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 / 사진 : 서울시 제공 |
다만, 등산을 좋아하는 지인들 중에는 흙길이 없어지는 것에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흙을 밟는 것과 데크를 밟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산길을 그대로 놔두자는 의견과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의견의 중간쯤이라고 할까. 양극단보다는 중간 어디쯤의 중용이 답이 될 때가 많다.
인간이 직접 산에 발을 디디지 않으니 오히려 자연 훼손이 덜 발생하는 효과도 있다. 데크길을 만들면서도 자연 훼손을 최소화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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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타나무전망대 |
실제로 데크길 가운데로 커다란 나무가 솟아있는 모습을 자주 만난다. 나무를 베지 않고 그 위로 데크를 설치한 것이다. 그도 안되면 돌아가는 길로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다른 샛길들은 폐쇄하고 남산에서 채취한 종자로 만든 어린 소나무를 심어 생태계를 복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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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도서관 쪽에서 올라가는 남산 하늘숲길 입구 |
걷고, 나무 향을 마시고. 풍경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종착점이다. 남산도서관은 참 오랜만이다. 이래저래 걸린 시간은 1시간 정도. 내리막길이라 걸음이 더 빨랐을 것이다.
경사가 완만하지만 그래도 오르막길이 좋다면 남산도서관 쪽에서 출발하는 것을 권한다. 나 역시 ‘여기서 시작할 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른다. 가보지 않은 길이다. 다음에 다시 오면 될 일이다.
‘다음에 언제 올까’, ‘가을은 이제 끝자락이다’, ‘내 삶에 가을이 몇 번이나 더 허락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가 뒤돌아보니 남산이 날 내려다보고 있다. 노랗게 물든 단풍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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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이 물든 남산 |
글ㆍ사진=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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