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시승 후 “양산 불가” 소신…홀로서기
동료 셋과 경일대 지원금 5000만원으로 창업
첫 자율주행차 ‘비 오는 밤’ 달리자 러브콜
버스형 자율주행차 선점…13개 시도 운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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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현대차 아이오닉 자율주행차가 공개되고 있다. 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A2Z) 대표는 현대차 재직 시절 이 프로젝트를 담당했다./사진: 오토노머스에이투지 제공 |
[대한경제=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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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의 현대자동차 프레스 콘퍼런스 무대에 대형 스크린이 걸렸다. 화면 속 아이오닉 자율주행차가 라스베이거스 시내를 스스로 달린다. 운전석에 앉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현대차 부회장)은 운전대를 잡지 않은 채 서류를 보거나 휴대폰을 확인한다. 약 8㎞를 달린 차가 멈춰 서고, 내린 정 회장이 콘퍼런스 무대에 등장한다.
#. 2018년 2월 경부고속도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수소차 넥쏘 기반 자율주행차 조수석에 앉아 만남의광장~판교IC 약 10㎞ 구간을 달린다. 구간별 법규가 허용하는 최고 속도(시속 100~110㎞)의 자율주행. 평창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한국 자율주행 기술을 전 세계에 알린 장면이다.
두 자율주행차 모두 같은 팀 손에서 탄생했다. 훗날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이하 A2Z)를 세운 이들이다. 현대차 의왕 선행연구소에서 이 프로젝트들을 담당한 한지형 A2Z 대표는 오히려 이때 자율주행의 한계를 실감했다고 돌아봤다.
당시 자율주행은 도로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사람이 하나하나 코드로 짜 넣는 방식이었다. 문제 하나를 막으려 알고리즘 수십 개를 덧붙였고, 소프트웨어는 차량용 칩에 넣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다. 결국 트렁크에 대형 컴퓨터를 싣고 다녔다. 그럼에도 메모리가 쌓이면 차가 멈춰버려 주행 전 컴퓨터를 수시로 껐다 켜야 했다. 센서는 이중 삼중으로 덧붙였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보조 배터리도 잔뜩 싣고 다녔다. 시승은 몰라도 양산은 불가능한 구조였다.
평창 프로젝트는 한계를 더 선명하게 보여줬다. 대회를 앞둔 겨울, 시험 주행에 나서면 앞차가 튀긴 눈 녹은 물이 센서를 가렸다. 올림픽 준비로 곳곳에서 벌어지는 도로 공사에 길이 막히면 차는 대응하지 못했다. 시속 110㎞에서는 이런 돌발 변수에 손쓸 방법이 없었다. 한 대표는 “고속도로 자율주행이 도심보다 쉬울 것이란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훨씬 어렵다는 걸 그때 확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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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소차 넥쏘 기반 자율주행차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시승을 앞두고 진행된 평창올림픽 자율주행 프로젝트로, 한지형 대표 팀이 개발을 담당했다./사진: A2Z 제공 |
개발팀의 고민이 무색하게, 대통령 시승까지 성공한 회사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언론에서는 2020년 전후 자율주행 상용화 전망이 쏟아졌고, 마침 미국 GM이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를 앞세워 2020년 양산까지 선언했다. 경쟁에 불이 붙자 경영진은 개발팀에 양산 일정을 요구했다. 현대차는 협력사 물색에 나섰고, 실무 검증은 한 대표 팀의 몫이었다. 보쉬ㆍ콘티넨탈 등 글로벌 부품사부터 모셔널의 전신인 앱티브까지 만나본 한 대표의 결론은 명확했다. 준비된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는 “AI나 고성능칩이 활성화된 지금과 달리 기술적 한계가 명확했고, 기능안전 등 양산의 기본을 만족시키는 곳조차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검증을 마친 한 대표 팀은 독자 개발로 내실부터 다진 뒤 외부와 협력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외부와의 합작 노선을 택했다. 현대차가 훗날 앱티브와 세운 자율주행 합작사 모셔널이 그 결과물이다.
회사의 결정을 지켜본 한 대표는 묻어뒀던 생각을 꺼냈다. 창업이었다. CES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글로벌 경쟁사들을 가까이서 지켜봤을 때부터 품어온 생각이다. 그는 “우리 팀보다 나을 게 없는 회사들이 수백억, 수천억원씩 투자받으며 뛰고 있었다”고 했다. 우리 기술 철학대로 직접 해보자. 마음은 정해졌다.
물론 결심이 바로 창업으로 이어졌던 건 아니다. 동료들과 “한 번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가도, 각자 생업으로 돌아가면 이야기는 흐지부지됐다. 다들 처자식이 있는 30대 후반의 가장들. 수억원씩 드는 초기 비용을 감당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그 사이 공동창업자인 유병용 부사장은 경북 경산의 경일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창업의 문은 뜻밖에도 그곳에서 열렸다. 산학 교수로 오면 교내 지원금을 받아 창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경일대에 있었던 것. 유 부사장의 제안에 한 대표는 망설이지 않았다. 총장에게는 동료 두 명의 교수 채용을 제안하며, 지역에서 인재를 뽑고 경제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다. 학교가 받아들이면서, 2018년 네 명의 엔지니어는 현대차를 나와 경산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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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2Z 경일대 본사 내부. 우측에 보이는 하얀색 차량이 최초 개발한 초소형전기차 D2 기반 자율주행차다./사진: A2Z 제공 |
첫해 창업지원금은 5000만원. 대통령 시승차를 만들던 팀의 새 출발치고는 단출했다. 그럼에도 한 대표는 “학교의 초기 지원이 없었으면 창업할 엄두를 못 냈을 것”이라고 했다. 대표는 넷 중 막내인 그가 맡았다. 현대차에서 CESㆍ평창 같은 프로젝트를 총괄한 PM(프로젝트 매니저)이 그였고, 맡은 프로젝트마다 성과를 내며 선배 엔지니어들의 신뢰를 쌓은 덕이었다. 그 사수들은 지금 부사장으로 그와 함께한다.
A2Z는 중국산 2인승 초소형 전기차를 개조해 첫 자율주행차를 만들었다. 지원금으로 마련한 두 대에 손수 센서를 달아 임시운행허가를 받았고, 경일대 주변을 도는 셔틀로 굴렸다. 볼품은 없어도 실력은 달랐다. 당시 정부 과제로 자율주행을 연구하던 대학팀들의 차는 비가 오면, 밤이 되면 멈춰 섰다. 그러나 A2Z의 차는 비 오는 밤에도 달렸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발길이 이어졌고, 이를 계기로 정부의 대규모 자율주행 R&D(연구개발) 사업에 차량 담당으로 합류했다. 스타트업들이 으레 거치는 팁스(TIPSㆍ민간투자 연계형 창업지원 프로그램) 같은 소규모 지원사업은 건너뛰었다. 한 대표는 “그런 사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며 웃었다.
투자 유치도 서두르지 않았다. 창업 후 3년간 외부 투자를 받지 않은 것. 한 대표는 “초기 투자자들은 적은 돈을 넣고 간섭을 많이 한다”며 “그 말에 휘둘리면 우리 기술 철학을 지킬 수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 기간 A2Z는 학교 지원금과 정부 R&D 과제비로 개발비를 충당했다.
버스로 눈을 돌린 것도 이 무렵이다. 2020년 울산에서 첫 버스형 자율주행차를 만들어 신도시와 현대차 공장을 잇는 노선에 투입했다. 당시 자율주행 업계의 시선은 온통 승용차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한 대표의 생각은 현대차 시절부터 달랐다. 모든 도로와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승용차보다, 정해진 노선을 저속으로 도는 버스가 기술적으로 먼저 열릴 시장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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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2Z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 서울시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사진: A2Z 제공 |
계산은 맞아떨어졌다. 지자체로서는 시민 누구나 타는 버스만큼 예산 쓴 보람이 눈에 보이는 사업이 없었고, 시의회를 설득하기에도 좋았다. 소문이 돌며 도입 지자체가 하나둘 늘었고, 지금의 전국 13개 시도 운행망으로 이어졌다.
성장 가도의 A2Z는 더 큰 승부수를 던졌다. 남의 차를 개조하는 수준을 넘어, 운전석 자체가 없는 무인 자율주행 전용 차량을 밑바닥부터 직접 설계하기로 한 것. 훗날 ‘로이(ROii)’로 태어나는 프로젝트다.
(3편에서 계속)
■ 오토노머스 크로니클 (Autonomous Chronicle)
자율주행은 지금 어디까지 왔나. 기술 패권 경쟁과 규제, 그리고 산업 지형의 변화를 좇고 그 이면을 들춘다. 화려한 발표 뒤에 가려진 현장의 속사정과 성공ㆍ시행착오의 순간들을 들여다본다.
강주현 기자 kangju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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