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지고 해가 뜬다
순천만의 S자 물길 |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연말이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카운트 다운, 송년회와 파티, 공연까지…. 시끌벅적하게 한해를 보내고 다른 한해를 맞이하지만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멈춰 서게 된다. 차분하고 고요한 가라앉음은 가는 해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아쉬움만 남는 건 아니다. 별다른 근거는 없더라도 새해에는 괜스레 희망을 품게 된다. 낙조와 일출처럼 후회와 희망이 순서를 바꾼다. 연말과 연초의 전망대는 그런 곳이다. 굽어보는 풍경에 노을에 물든 수면, 햇살에 반사되는 윤슬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가는 해의 아쉬움과 오는 해의 희망이 조용하게 흐르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여행지를 한국관광공사가 소개한다.
한국의 갯벌…순천만 습지
금빛으로 물드는 S자 물길
순천만습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갯벌’ 가운데 하나다. 갈대밭 5.4㎢(약 160만 평)와 갯벌 22.6㎢(약 690만 평)를 품었는데 여의도 면적의 10배에 이른다.
몇 년 전 여름에 이곳을 방문했는데 현지 가이드는 “겨울에도 꼭 오시라”고 권했다. 철새들 때문이다. 약 5만 마리가 순천만습지에서 겨울을 난다고 한다.
순천만습지의 대표 철새는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다. 해마다 10월쯤 찾아와 이듬해 3월 말경 떠난다. 검은목두루미,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검은머리갈매기, 민물도요, 혹부리오리 등 이곳을 찾는 계절 손님은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갯벌에는 짱뚱어를 비롯해 칠게, 방게, 농게, 도둑게 등이 사는데 순천만자연생태관에서 가상현실로도 만날 수 있다.
광활한 갈대숲에는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갈대숲 속으로 들어간다. 걷다 보면 나지막한 산을 만나는데 이름이 용산이다. 용이 순천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같다고 붙인 이름이다.
용산전망대 일몰 |
탐방로가 끝나는 곳에 용산전망대로 가는 다리를 만난다. 여기서 전망대까지 1.2㎞, 30분쯤 걸린다. 평일에도 많은 사람이 노을이 지기를 기다린다. 외국인도 많은데 프랑스 관광객이 특히 많다. 프랑스에서 한국의 생태 관광도시로 순천이 인기라고 한다.
용산전망대에서는 순천만습지의 장대한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순천만 S자 물길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전망대를 세웠다. 배가 가르는 물살이 금빛 노을에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런데 아쉽게도 현재 용산전망대에는 오를 수 없다. 지난달 안전문제로 전면 폐쇄됐기 때문이다. 대신 보조전망대에 갈 수 있는데 이곳에서도 순천만습지의 절경을 어느 정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용산전망대는 전면철거 후 다시 짓는다고 하니 더 멋진 전망을 기대해본다.
글ㆍ사진=진우석 여행작가
안산 시화호 달전망대
새해 희망을 수(水)놓는 곳
일몰의 달전망대 |
경기도 안산 시화방조제 가운데 우뚝 선 달전망대는 달이 수놓은 그림이다. 달을 모티프로 만든 공간으로, 달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풍경이 바뀐다.
주말에는 타워 바깥으로 탑승 대기 줄이 이어질 정도로 방문객이 많다. 중심 기둥은 노출 콘크리트로 매끈한 직사각형이고, 꼭대기 전망대는 도넛처럼 둥글납작해 360°를 조망하게 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아파트 25층 높이 전망대에 금세 도착한다. 문이 열리자 시화방조제와 조력발전소, 큰가리섬, 인천 송도, 멀리 서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원형으로 이어진 유리 데크를 따라 걷는 동안 공원과 휴게소, 대부도까지 고공에서 감상할 수 있다.
5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돌아볼 공간이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가락이 다른 곳을 가리키며 새로운 풍경과 마주한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시화호조력발전소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서해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리아스식해안이 발달해 조력발전의 최적지로 꼽힌다. 이 발전소는 2004년 공사를 시작해 7년 만에 완공했다.
‘달이 준 선물’이라 일컫는 조력 에너지는 고갈될 염려가 없다. 무엇보다 무공해 청정에너지다. 문화관광해설사는 “하루에 두 번 밀물 때 외해와 시화호의 수위 낙차를 이용해 발전한다. 연간 발전량이 50만 명이 1년간 사용하는 전기량과 맞먹는다”라고 설명한다.
어디가 호수이고 바다인가. 관광객 사이에서 질문이 오간다. 호수가 바다처럼 아득하다.
맑은 날이면 인천LNG생산기지, 대부도, 구봉도, 영흥도, 방아머리풍력ㆍ태양광발전소가 모두 가시권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카페이루나 창가에 앉아 음료와 간식을 즐기며 서해 풍경을 감상해도 좋다.
카페이루나 옆으로 바닥이 유리로 된 구간은 아래가 훤해 아뜩하다. 75m에 이르는 타워 높이를 실감하는 공간이다. 창밖을 보며 성큼성큼 걷다가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수자원공사 건물 옥상에 쓴 ‘K-WATER’가 눈에 띈다.
이곳은 해넘이 명소다. 시화나래조력공원, 달전망대 어디든 최고의 일몰을 선사한다. 밤이면 달전망대를 화려하게 수놓는 경관 조명도 멋지다.
글ㆍ사진=길지혜 여행작가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와 해랑전망대
동해에서 품는 희망과 평화
해랑전망대 일출 |
지나간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기대하기 좋은 곳으로 해가 떠오르는 고장인 동해만한 곳이 있을까. 지명처럼 바다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망상, 대진, 어달, 하평, 한섬, 추암까지 아름다운 해변이 이어진다.
묵호권 여러 관광지 가운데 바다와 이색적인 체험시설로 인기를 끄는 곳이 있다. 묵호등대와 월소택지 사이 도째비골에 조성된 스카이밸리와 해랑전망대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방언으로, 비 내리는 밤이면 묵호항 어시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푸른 불빛이 자주 출몰했다는 구전에 따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의 명물은 광활한 동해를 향해 곧고 길게 뻗은 높이 59m 스카이워크다. 일부 구간을 강화유리로 제작해 마치 허공을 걷는 듯 아찔한 기분이 드는 하늘 산책로다. 거칠 것 없는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뿐이다.
케이블 와이어를 따라 왕복 179m 공중을 달리는 스카이사이클, 길이 87m에 높이 약 27m 원통 슬라이드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자이언트슬라이드도 있다.
스카이밸리와 연계해 조성한 도째비골 해랑전망대는 길이 85m 해상 보도 교량이다. 해랑은 ‘태양과 바다와 내가 함께한다’는 뜻이다. 바다 위 파도를 발아래에서 만끽한다는 점, 소망을 기원하는 도깨비방망이를 형상화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와 해랑전망대는 ‘2023∼2024 한국 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동해시는 올해 제2회 한국문화관광대상도 받았다.
1970년대 묵호항을 중심으로 오징어와 명태잡이 등 어업이 흥할 때 밤바다에서 바라본 산비탈 판자촌 도째비골은 고층 빌딩 숲 같았고,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은 봄밤 벚꽃처럼 빛났다고 한다. 묵호항은 쇠퇴했지만,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와 해랑전망대 덕분에 묵호권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글ㆍ사진=장보영 여행작가
제천 청풍호반케이블카
청룡의 해는 청풍에서 미리 느끼자
청풍호반케이블카 |
청룡과 청풍. 2024년 청룡의 해를 앞둔 12월, 제천 청풍호(충주호)는 2023년을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운세 좋은 여행지일 것만 같다.
청풍호는 제천시 남쪽 청풍면 일대 남한강을 이른다. 청풍면의 지명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뜻하는 청풍명월에서 왔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아쉬움을 툭툭 털어내게 할 ‘전망’이 여기에 있다.
전경을 감상하기에는 비봉산이 제격이고, 비봉산에 오르기에는 청풍호반케이블카가 맞춤이다. 케이블카는 청풍면 물태리역과 비봉산역 사이 2.3㎞ 구간을 오간다. 10인승 케이블카 46대가 비봉산 정상까지 약 9분 만에 이동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빼어난 전망을 선사한다. 케이블카는 움직이는 전망대다. 물태리역 뒤로 봉긋 솟은 망월산에서 시작해 월악산과 소백산 능선이 장대하게 열린다. 그 사이로 골골이 굽이치며 흐르는 겨울 남한강은 너무나 고요해 호수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비봉산 정상은 해발 531m다. 봉황이 나는 모습을 닮아 그리 부른다. 매가 날아가는 것 같아 ‘매봉’이라고도 한다. 봉황이나 매의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셈이다.
케이블카 승하차장을 지나 3층 밖으로 나오자 전망 데크가 시원하다. 계단을 따라 4층 비봉하늘전망대로 이어지고, 5층 야외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북쪽은 대덕산과 바짝 붙어 흐르는 남한강이 시원스럽다. 물길은 멀리 제천 시내 풍경과 겹친다. 남쪽으로는 가까이 백운면 도곡리 악어섬이 눈을 즐겁게 한다. 강과 땅이 악어 모양으로 들쑥날쑥하다. 멀리 월악산이 어른댄다. 동쪽으로는 청풍대교에서 옥순대교 지나 소백산까지 펼쳐진다. 옥순대교 쪽은 산세와 어우러진 남한강 풍경이 단연 압권이다. ‘내륙의 바다’라는 표현을 체감한다.
겨울나무는 푸른 잎을 떨궜지만, 덕분에 물빛이 한층 쨍하게 다가온다. 해질녘에는 서쪽으로 걸음을 옮겨 한 해 마지막 달의 일몰을 감상하자.
청풍호반케이블카 비봉산역은 보고 즐길 거리가 많다. 특별한 기억을 저장하는 모멘트 캡슐, 인생 사진을 완성할 초승달과 하트 포토존이 여행을 풍요롭게 한다. 약초숲길은 왕복 35분 남짓한 산책로다.
글ㆍ사진=박상준 여행작가
울진 등기산 스카이워크
바다 위를 걸어 하늘 속으로
등기산스카이워크 |
푸른 바다와 푸른 숲, 푸른 하늘까지 울진의 매력은 온통 푸른색이다. 그러나 다 같은 푸른색은 아니다. 같은 바다라도 날마다 푸른빛의 깊이가 다르다. 울진이 품은 다채로운 푸른색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곳이 등기산 스카이워크다.
길이 135m로, 2018년 문을 열었을 당시에는 국내 최장 스카이워크로 화제를 모았다. 스카이워크가 여기저기 생기면서 지금은 타이틀을 잃었다.
높이 20m의 스카이워크는 멀리서부터 존재감을 드러낸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가 일부 구간이 바다를 향해 돌출한 여타 스카이워크들과는 달리 시작부터 바다를 향해 쭉 뻗은 구조라 스릴은 배가 된다.
입구 목재 바닥을 지나면 길이 57m 강화유리 구간이 시작된다. 투명한 바닥으로 넘실거리는 파도가 그대로 비쳐 이 길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지, 하늘 위로 오르는지 헷갈릴 정도다. 스카이워크 너비도 2m 정도라 바닷바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바람이 9m/s 이상으로 빨라지면 입장을 제한하는 이유다.
중간쯤 이르면 후포 갓바위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육지에 팔공산 갓바위가 있다면 바다에는 후포 갓바위가 있다.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준다’라는 설명이다. 눈부신 윤슬에 둘러싸인 갓바위를 내려다보니 저 아름다운 바위처럼, 그저 나답게 살게 해달라는 바람이 일렁인다.
출구는 구름다리로 이어진다. 출렁이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예부터 낮에는 깃발을 꽂아 위치를 알리고 밤에는 봉화로 뱃길을 안내했다고 이름 붙은 등기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 64m의 등기산은 나지막하지만, 뱃길을 지나는 이들에게 더없이 중요하다. 1968년 이곳 등기산에서 첫 불을 밝힌 후포등대는 불빛이 35㎞에 이른다고 한다. 울릉도와 제일 가까운 등대다.
이곳에서 만나는 등대는 후포등대뿐만 아니다. 후포등기산(등대)공원에는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등대 모형을 볼 수 있다. 1611년에 세워진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코르두앙, 세계 최초의 등대로 알려진 이집트 파로스, 중세 고딕 교회가 떠오르는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독일의 브레머하펜, 악명 높은 암초에서 뱃길을 밝히는 별로 다시 태어난 스코틀랜드의 벨록을 한자리에서 만난다.
글ㆍ사진=권다현 여행작가
정리=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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