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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30년] 성동, 서울 변방에서 ‘한국판 브루클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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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5-26 08:05:21   폰트크기 변경      
정원ㆍ스마트쉼터ㆍ성공버스…“도시재생 아이콘 ”

‘붉은벽돌 보전조례’ 제도적 장치로 

재건축 대신 재생…과거 품은 공간 

기업을 두 배 늘고 관광객 300만명 육박 



[대한경제=박호수 기자] 올해는 1995년 민선 지방자치가 출범한 지 30년을 맞이한 해다. <대한경제>는 지방자치 30주년을 기념해 ‘내 삶을 바꾼 풀뿌리 민주주의’를 조망한다. 우리 일상의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지자체의 정책과 행정, 철학과 실천은 주민 삶의질 개선과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성과의 첫 사례로 서울 성동구를 선택했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서울의 얼굴을 가장 극적으로 바꾼 곳. 유일한 3선 구청장이라는 안정성과, 전국 최고 수준의 정책 실험실로 불리는 행정력이 돋보이는 지자체다.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 정원오 구청장의 10년 성과 


성수동 붉은벽돌 건축물. / 사진 : 성동구 제공 


과거 성동은 늘 서울의 ‘변두리’였다. 지금 성수동은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며, 젊은 기업과 창의적 문화가 숨 쉬는 서울의 심장부가 됐다. 붉은 벽돌 골목을 따라 글로벌 브랜드가 입주하고,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마을 어르신과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한 프레임에 담긴다. 한 도시가 이토록 빠르게 그리고 조화롭게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변화에는 중심이 있다. 성동구의 중심에는 정원오 구청장이 있다. 2014년 민선6기 초선으로 구청장을 맡은 그는 “사람이 모이고 기업이 찾아오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흔한 슬로건 같지만, 지난 10년의 성과를 돌아보면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그는 재개발 대신 재생을 선택했다. 2017년 제정된 ‘붉은벽돌 보존조례’는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품고 남기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성수동은 그렇게 과거를 품은 미래가 됐다. 공유 오피스와 문화공간, 글로벌 기업이 입주하면서 기업 수는 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이곳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96만명을 돌파했다.

성수는 이제 명동이나 강남과의 비교군에 오르는 동네가 아니다. 오히려 ‘도시는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서울의 대표사례로 자리 잡았다.

슬리퍼 신고, ‘5분 정원도시’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마을정원사들과 함께 한강시그니처정원을 걷는 모습. / 사진 : 성동구 제공 


공간만 바꾼 게 아니다. 도시의 본질은 결국 ‘사는 사람의 하루’에 있다. 그래서 정 구청장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부터 바꿨다. “정원까지 슬리퍼 신고 갈 수 있는 동네”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5분 정원도시’를 추진했고, 38개의 테마형 정원이 마을 골목마다 조성됐다.

마장동 먹자골목 자리에 들어선 자작나무 숲은 ‘도시재생의 아이콘’이 되었고, 중랑천과 한강 사이의 끊어졌던 길은 이제 녹색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113명의 마을정원사는 단지 ‘조경’이 아니라, 공동체를 다시 심는 존재가 됐다. 이러한 정원도시 전략은 ‘성동형 일상생활권’ 구축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또 다른 축은 교통이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탄생한 ‘성공버스’는 행정의 정밀함을 보여준다. 마을버스가 닿지 않던 금호동, 응봉동, 행당동에 공공 셔틀을 배치해 지하철역과 보건소, 문화시설을 거미줄처럼 연결했다. 이 조용한 혁신은 주민 만족도 87%, 재이용 의향 94%라는 압도적 수치로 증명됐다. 서울시조차 성동을 모델 삼아 확대를 검토 중이다.

쉼터ㆍ흡연부스ㆍ횡단보도까지… 생활밀착형 디지털 행정


성동형 스마트 쉼터. / 사진 : 성동구 제공 


‘포용’과 ‘기술’이 만난 정책들도 주목할 만하다. 단순히 스마트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 한 명의 불편함을 읽어내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성동의 디지털 행정은 ‘생활정치’의 정수를 보여준다.

대표 사례가 ‘스마트쉼터’다. ‘정류장에 그늘 하나 만들어달라’는 문자를 받은 정원오 구청장은, 냉난방과 공기질 조절이 가능한 미래형 쉼터를 만들었다. 지금은 서울 전역 55곳에 설치됐다. 주간 이용객 8만명, 누적 이용 1000만명을 돌파한 이 쉼터는 영국 ‘그린애플 어워즈’은상에 이어 ‘그린월드 어워즈’에서도 은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성동의 스마트흡연부스, LED 바닥 신호등, 스마트횡단보도 등은 안전과 환경을 동시에 담아내는 혁신 사례로 해외 자치단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2024 크리에이이티브x성수. / 사진 : 성동구 제공 


또 다른 행정의 핵심은 ‘사람’이다. 정 구청장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모든 주민에게 공개한 전국 첫 구청장이다. 매일 20∼30건의 문자가 그에게 도착하는데 그중 상당수가 정책의 출발점이 된다. 주민과 구청이 문자로 행정을 함께 만든다. 이 단순하고도 진심 어린 연결은 성동구에 88.9%라는 압도적 신뢰도를 안겨줬다.

이 도시의 다음은 어디일까. 성수 전략정비구역 재개발, 삼표레미콘 부지 복합문화지구 조성, 컬처허브 건립, 2040 성동 도시발전 기본계획 수립까지. 성동은 지금도 ‘지방정부 2.0’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중이다. 도시의 변화는 거대한 개발이 아니라 사람의 하루를 바꾸는 행정에서도 시작된다. 성동은 그 사실을 가장 분명히 보여준다. 작은 변화들은 서울을 바꾸고, 한국의 도시 미래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


박호수 기자 lake806@

“도시를 다시 짜다, 15분 일상, 성동의 하루”
‘슬세권ㆍ출근권ㆍ돌봄권’이 현실로



성동버스. / 사진 : 성동구 제공 


2023년 성동구민 10명 중 9명은 ‘성동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답했다. 합계출산율은 서울 자치구 1위(0.711명), 행복지수와 포용지수도 나란히 정상을 기록했다. 높은 수치가 단지 ‘브랜드’에서 나올 수는 없다. 성동구가 목표로 삼은 것은 단 하나, 하루를 바꾸는 도시였다.

‘15분 도시, 30분 출퇴근’. 성동구는 도시계획의 단위를 사람의 동선으로 바꿨다. 핵심전략은 일상생활권. 집과 가까운 거리에서 여가ㆍ돌봄ㆍ문화ㆍ의료 서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를 재설계했다.

특히 마을버스가 비켜간 금호동ㆍ응봉동ㆍ행당동에 공공셔틀인 ‘성공버스’를 투입하자, 의료ㆍ문화ㆍ복지시설로의 접근성이 놀라울 정도로 개선됐다. 구는 교통약자까지 고려해 서울시 비지원 민간 마을버스 업체에까지 보조금을 지급했고, 기사에게는 필수노동 수당 30만원을 지원했다. 그 결과 구인난에 시달리던 마을버스 기사 수는 1년 만에 109명에서 128명으로 늘었다. 운행차량이 11대 늘고 배차 간격은 확연히 줄었다.

성동구는 재택근무자들을 고려한 150석 규모의 ‘재택근무지원센터’를 성수동에 준비 중이다. 회의실, 스튜디오, 육아지원 공간까지 갖춘 복합업무시설로, 수도권 평균 통근시간(하루 82분)을 줄이기 위한 해법이다. 출퇴근 시간의 낭비를 줄이고,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는 도시. 이것이 ‘출근도 근린생활’이 되는 성동형 도시계획의 철학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성동구 대현산 장미원에서 어린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사진 : 성동구 제공 


고령화 대응도 선제적이다. 성동구의 65세 이상 인구는 18.7%,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성동은 ‘집에서 늙을 수 있는 도시’를 도시계획에 명시하고, ‘통합돌봄체계’를 행정으로 이식했다. 2024년 3월에는 부구청장 직속의 통합돌봄담당관실을 신설해 11개 부서, 27개 기관이 협업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했다. 주민센터와 민간기관에 통합돌봄 안내창구도 함께 배치됐다.

핵심은 서비스가 아니라 ‘접근성’이다. 올해까지 1084가구에 낙상 방지형 주거개선이 적용됐고, 병원 방문이 어려운 노인을 위해 의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재택의료센터도 운영된다. 이 시스템은 기존 장기요양보험 수급 여부와 무관하게 접근이 가능하다. 여기에 스마트헬스케어센터가 더해졌다. 현재 2개 권역에서 운영 중이며, 올해 말까지 2곳이 추가된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동마다 1곳씩 설치가 목표다.

이 모든 변화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는 사람을 기준으로 도시를 설계했다.’ 성동이 설계한 하루는, 이제 서울시 전체가 주목하는 도시행정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박호수 기자 lake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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