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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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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2-23 06:00:18   폰트크기 변경      
아기 예수 오신 성탄절…축제와 기도

관광객들 찾는 글로벌 성지
모두에게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명동성당 전경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명동에는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북적거린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들이 쭉 늘어서 있는 거리에서 외국인과 내국인이 어깨를 부딪치며 걷는다. 그리고 이맘때쯤 명동 풍경에서 빠지지 않는 게 하나 더 있다. 구세군의 종소리와 캐롤이다. 거리를 가득 채우는 종소리와 캐롤은 크리스마스와 명동이 잘 어울리는 이유다. 그리고 그 풍경을 지긋하게 내려다보는 명동성당이 서 있다.

명동성당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곳은 한국 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다. 1780년 서울 명례방에 살던 통역관 김범우가 자신의 집에서 천주교 교회 예절 거행과 교리 강좌를 열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명동성당 터라고 한다. 1882년부터 제7대 교구장 블랑 주교가 성당 터로 매입하기 시작했으며 1892년 기공 이후 전국의 천주교인들이 헌신적으로 공사에 참여해 1898년 완성됐다. 고딕 양식의 뾰족 지붕 성당에 매일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아기 예수 탄생 모습. 아직은 말구유가 비어있다.  


성탄절을 앞둔 지금도 구경꾼들이 많다. 시끌벅적한 명동 거리를 지나 성당으로 오르면 아기 예수가 탄생해 말구유에 눕혀졌을 때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성당에서는 항상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기 예수의 탄생 장면을 연출한다.


“그런데 왜 아기 예수가 없어?” 비어 있는 말구유를 보고 누군가 묻는다. 아직 성탄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구유에 아기 예수를 모시는 성탄 구유 예식은 성당에 따라 성탄 전야나 성탄절에 진행한다.

성당 옆으로는 아기 예수를 찾아오는 동방박사들의 모습과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알현하는 모습도 재현해놨다.


별을 따라 예수님 탄생을 찾아 길을 떠나는 동방박사. 


성경책이나 묵주 반지와 같은 천주교 성물들을 파는 건물 벽에는 성탄을 축하하는 다양한 언어들이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이 많다. 다들 사진찍기에 바쁘다. 명동성당은 이제 명동 거리와 함께 서울의 유명 관광지가 됐나 보다.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명동 거리처럼 시끄럽지는 않다. 천주교를 많이 믿는 동남아 국가에서 온 걸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고, 그저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지만, 성당이라는 장소 때문인지는 목청을 높이지 않는다.


△매년 열리는 성탄축제

한켠에는 천주교서울대교구역사관도 있다. 1890년 주교관으로 세워진 이 건물은 현존하는 서양식 벽돌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라고 한다. 2018년 새로 단장해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스페인 산티에고처럼 로마교황청에서 인정한 순례길이 국내에도 있는데 명동성당이 그 길의 시작이다. 역사관에서 순례 스탬프를 찍는다. 이곳 역사관 도슨트의 안내와 설명에 대한 칭찬이 많다.

24일과 25일 명동성당 일대에서는 ‘2025 명동, 겨울을 밝히다’라는 성탄 축제도 열린다. 매년 열리는 행사인데 성탄 마켓, 음악 공연, 공개방송, 연극, 체험공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이 기간에 모은 기부금과 사제단 음식 판매 수익, 작가 판매 부스 수익 등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 전달돼 소외된 이웃들과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문화관 ‘꼬스트홀(Coaste Hall)’ 벽에 다양한 언어로 성탄 축하 메시지가 걸려있다.


묵주 반지를 하나 살까 해서 문화관, 꼬스트홀(Coaste Hall)에 있는 성물방에 들어갔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묵주 같은 걸 선물용으로 몇 개씩 산다. 몇천원짜리부터 백만원이 훌쩍 넘는 금ㆍ은 성물도 많다. 팔아서 얻은 수익을 좋은 곳에 쓰겠지만, 너무 비싼 제품을 성당에서 파는 건 글쎄….

명동성당 들어가는 초입 지하에는 식당, 카페, 서점, 갤러리들이 모인 공간도 있다. 종교와 상업 시설의 중간쯤이라고 할까. 넓은 공간의 분위기도 조용함과 북적임의 중간 정도다.

그런데 이런 상업시설의 유입을 못마땅해하는 목소리도 있다. 명동성당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성당은 물론 주변 재개발도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기도하는 사람들


성당입구에서 만난 성모상


명동성당에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당 입구에서부터 성모 마리아 상을 만난다. 그냥 앉아서 쉬는 사람들과 기도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

너무 오픈된 곳이라 꺼려진다면 성당 뒤편에도 마리아 상과 기도하는 장소가 있다. 좀 더 차분하다. 사진만 찍는 사람, 잠깐 목례하는 사람,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사람, 누군가는 한참을 무릎 꿇고 기도한다. 그의 간절한 소망이 이뤄지기를….


성모동산


2000원을 내고 촛불에 불을 붙여 올리는 촛불봉헌도 가능하다. “아저씨 천원짜리 있으면 바꿔주실 수 있어요?” 요새 천원짜리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성당 어딘가로 가면 천원짜리 바꿔주는 곳이 있다고 누군가 가르쳐 준다.


촛불봉헌


대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성수를 찍어 성호경을 긋는다. 냉담자라 염치가 없지만,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주시고….’

미사가 없는 시간에도 이곳에는 항상 사람들이 앉아 있다. 달라진 모습이라면 성당 안에도 외국인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천장이 높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공기와 내음, 은은하면서 엄숙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제단. 사람들은 그 앞에서 묵묵히 앉아 있거나 기도를 올린다. 아이와 같이 온 엄마는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대성당 내부


성당 옆에는 지하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지하성당은 넓지 않다. 어둡다. 가끔 스마트폰 소리가 울리지만, 장소의 깊은 침묵을 깨우지는 못한다. 이런 무거운 침묵은 이곳 아니고는 경험하기 어렵다.

이곳에도 말없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분히 가라앉다가도 무언가 복받쳐 오른다. 고개가 숙여지고 안경에 눈물이 떨어지면 서러움은 치유가 된다.

수술을 앞둔 친구 부부를 위해 기도했다. 냉담자의 기도라도 성탄절이니 들어주시겠지.



△김대건과 김수환

지하성당에는 다섯 분의 성인과 네 분의 순교자 유해가 모셔져 있다. 그래서 공기가 더욱 무거웠을까.


지하성당에서 나오면 천주교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의 흉상을 만난다. 한국 최초의 사제 순교자라고 쓰여 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흉상


그는 15살의 나이로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1845년 중국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얼마 되지 않아 체포된 후 1846년 25살의 나이로 순교했다.

그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 경기도 안성 미리내 성지다. ‘대건’이라는 이름은 천주교 학교나 시설들에서 접하게 된다. 2년 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갓을 쓴 김대건 신부 조각상이 세워졌는데 최근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극 중 갓을 쓴 캐릭터인 ‘사자보이즈’ 아니냐는 외국인들의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명동성당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한 분이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다. 추기경은 1922년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 역시 1868년 순교했다.


서른 살에 신부가 된 이후 추기경은 빈민, 노동자와 같은 핍박받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와 민주화에도 함께했다. 1987년 6ㆍ10 민주항쟁 때 피신한 학생들을 잡으러 경찰들이 명동성당에 들어오려고 할 때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우리를 다 넘어뜨리고 난 후에야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라고 말하며 학생들을 지켰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성지로도 불리고 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시비


성당 초입에서는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세운 ‘명동성당’이라는 시비를 만날 수 있다. 정호승 시인은 ‘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 ‘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 ‘명동성당이 된 그 사나이’ ‘종을 잃은 종소리가 영원히 울려 퍼지는 곳’이라고 썼다.

성당과 주변을 좀더 둘러보다가 해가 졌다. 성당에 불이 켜졌다.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조명이 낮과는 또 다르다. 좀 더 성탄절 분위기 같다고 할까.


종교가 그렇듯이 성탄의 의미도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누구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고 찬양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저 하루 쉬는 공휴일이다. 어떤 이에게는 선물을 주고받고 파티를 하는 날이다. 


아주 어둡고 고요한 밤, 밤새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얀데 성가대 아이들이 집앞에 와 노래를 부르면 주무시지 않고 기다렸던 어머니가 무언가 들고 나가 나눠주던 새벽. 나에게 성탄은 그런 이미지다. 세상이 시끄럽고 종교가 시끄럽지만, 예수가 낮은 곳으로 임한 이유를 잠깐이라도 되새겨 볼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더욱 행복한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를 기원한다.

글ㆍ사진=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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