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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 딸과 함께 간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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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3-24 06:00:48   폰트크기 변경      
조선건축의 걸작…공심돈ㆍ화홍문ㆍ방화수류정

아버지 묘소 옮기고 정조가 지은 곳
북적이는 성곽길ㆍ행리단길ㆍK드라마길


수원화성 화홍문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아빠 나랑 같이 수원화성 갈래?”

딸이 늦잠을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서둘러야 한단다. 오전 11시까지 도착해야 한다고. ‘딸이 가자면 가야지.’ 일어나 씻고 채비를 했다.

수원은 가깝지 않다. 수원화성을 가려면 서울 마포에 있는 집에서 1시간여를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덕분에 오랜만에 딸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영상관련 수업에서 영화를 배우는데 기억에 남는 고전을 알려달란다. 다음주에 홍콩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딸은 ‘중경상림’을 전날 봤다고 했다.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대부’ 시리즈와 ‘인생은 아름다워’, ‘시네마 천국’ 같은 영화도 추천했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벌써 고전이 된 건가.

화성 근처 한 식당에 도착했다. 11시까지 와야 하는 이유는 식당 문을 열자마자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11시에 도착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가 다 찼다.


수원화성 근처 식당에서 먹은 카레와 우동


카레와 주머니 우동을 시켰다. 고양이 모양의 밥과 헬로키티 캐릭터로 장식된 요리가 나왔다. ‘이래서 오자고 했구나.’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어야 한다. 그런데 딸은 예전에 쓰던 아이폰을 꺼내 찍는다. 현재 가지고 있는 폰보다는 화소가 떨어질 텐데 이걸로 찍어야 감성 돋는 사진이 나온다고 한다. 식당을 둘러보니 젊은 여성들이 많은데 딸처럼 폰이 두개인 사람이 두명 더 보였다. 그들 역시 작은 아이폰으로 음식 사진을 찍는다.


다음 코스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타르트를 한두개 사서 성 위에서 먹자는 계획이다.

가게에서 나오니 성곽길을 마주하게 된다. 걷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성곽으로 올라 길을 따라 걸었다. 걸으며 화성을 내려다본다. 이곳에도 외국인이 많다. 서울은 물론 대한민국 곳곳이 글로벌 여행지가 된 지 오래다.


성곽길


△남다른 독특함과 아름다움


수원화성은 여느 성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조선의 신도시여서 그럴까. 화성은 조선 정조 때인 1794년 착공해 1796년 준공됐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조했다.

성문 형태를 보면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기능이 보인다. 망루인 ‘공심돈(空心墩)’ 등 방어를 위한 군사시설이 곳곳에 설치돼있다. 공심돈은 ‘속이 비어있는 돈대’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수원화성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다. 수원화성은 이런 건축물들이 어우러지면서 남다르고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조선 건축의 걸작으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북쪽의 장안문(長安門), 남쪽의 팔달문(八達門), 동쪽의 창룡문(蒼龍門), 서쪽의 화서문(華西門) 등 4대문과 이를 잇는 성곽은 5㎞가 넘는다. 보통은 남문이 정문인데 화성의 정문은 북문인 장안문이다. 왕이 한양에서 오면 북문으로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곽길을 다 돌지는 못했는데 한 바퀴 돌려면 꽤 시간이 걸릴듯하다. 오르막길도 제법 있다고 한다.


화서문과 공심돈


방어시설을 갖춘 이 시설에서는 조선이 아니라 한국전쟁에서 실제 전투가 벌어졌다. 장안문과 성곽이 파괴됐는데 후일 복원됐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건축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가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기록에 의해 과거 모습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데도 기여했다고 한다.

화성행궁은 넓지만 높지 않은 궁궐들이 여유롭게 배치돼있다. 정조가 수원화성에 오면 머물던 곳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로 가는 정조의 화성 능행차는 총 13번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를 그림으로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사람 1500여명과 말 500여필이 표현됐다. 그림에 포함되지 않은 행사 인원을 합하면 5600여명, 1400여필 규모라고 한다.


수원행궁 입구는 수령 350년의 느티나무 세그루가 지키고 있다.


정조는 아버지를 위해 능을 옮겨 정성 드려 찾아뵙고 성까지 지었다. 행궁 입구에 수령이 350년이라는 느티나무 세그루가 서있는데 아마도 이 나무들은 정조의 행차를 지켜봤을 것이다.

길 이름이 ‘정조로’로 명명된 곳도 있고 화서문 인근에는 정조대왕의 거대한 동상도 만나볼 수 있다. 능행차 재연행사도 열린다.


정조대왕 동상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화성 근처에는 수원천이 남북으로 흐르는데 북수문인 화홍문(華虹門)의 모습에 매료됐다. 수문이라고 하면 콘크리트 댐을 상상하기 마련인데 화홍문은 기와를 머리에 얹고 있다. 머리 밑으로 무지개 모양의 크기가 서로 다른 7개의 수문이 있다. 화홍문의 ‘홍’은 무지개란 뜻이다.

화홍문 옆 언덕에는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 있다. 수문과 정자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꽃을 찾고 버들과 노닌다는 뜻의 방화수류정은 경계와 군사 지휘소이면서 풍류를 즐기는 정자를 겸한다고 한다. 수원화성 건축물의 백미로도 꼽힌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아름다운 풍경과 야경을 자랑하는 화성은 다양한 드라마 속 배경으로 자주 등장했다. ‘선재 업고 튀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태원 클라쓰’, ‘그해 우리는’ 등의 드라마가 화성과 근처에서 촬영됐다. 한류 드라마의 원조 ‘대장금’도 화성행궁에서 찍었다고 한다. 드라마 배경을 둘러보는 K-드라마길도 있다.

행궁동 행리단길도 유명하다. 이태원의 경리단길에서 시작해 경주의 황리단길, 서울 망원동의 망리단길 등 전국 곳곳에 ‘△리단길’로 이름 붙여진 곳들과 같이 이곳에도 맛집과 편집숍, 작은 서점들이 많다. 사람도 많다. 사람들은 먹기도 하고, 보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거리를 걷는다. 느릿느릿 걷거나 졸고 있는 고양이도 많다. 각박하지 않은 여유로움을 보여주는 듯도 싶었다.


맛집들 가운데는 커피나 차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들이 많다. 브런치 카페라고 할 수 있는데 젊은 여성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한 서점에 들어갔는데 이곳에서는 포장해서 파는 책이 인상적이었다. 무슨 책인지 알 수 없다. 포장지 속 책은 이 서점에서 추천하니 믿고 사서 읽어보라는 의미 같다. 선물을 풀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이런저런 굿즈도 같이 파는데 구경하러 들어왔다가 책과 함께 사서 나가게 된다.

딸은 여행을 가면 서점에 들리곤 한다. 작지만 이색적인 작은 동네 서점에 들어가 구경하고 읽는다. 관광지에 오면 빨리빨리 둘러봐야 하는 우리 세대와는 다르다.


행리단길에는 작은 서점이 많다.


수원 화성은 야경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실제로 야간 행사도 많고 은은한 조명을 따라가는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밤까지 있을 자신은 없어 돌아가기로 했다. 봄이라지만 아직 쌀쌀했다. 딸과 데이트한다는 설레임에 얇은 봄옷을 입고 온 게 실수였다.

이제는 핫플레이스가 된 수원화성은 하루 만에 돌아보기에 아까운 곳이다. 볼 것도, 먹을 것도, 즐길 것도 많다. 다음에는 1박2일로 와서 천천히 다시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딸이 다시 아빠와 함께해줄지는 살짝 자신이 없다.


글ㆍ사진=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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