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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중호와 호텔들. |
사면초가(四面楚歌)란 말이 있다. 초한쟁패기(楚漢爭霸期), 항우본기에 등장하는 말로 한의 군대에 포위돼 궁지에 몰린 초패왕 항우의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방에 초의 노래가 들린다”라는 뜻으로 이미 초의 병사들이 투항해 한에 가담했음을 의미한다.
원래는 곤란한 상황을 뜻하지만, 항우의 고향으로 초(楚)의 중심인 후베이성을 다녀온 여행기에선 사방에서 초나라의 봄 향기가 물씬 난다는 긍정적 표현으로 쓰기로 했다. 이달 초 중원에 일찌감치 도래한 봄의 노래를 듣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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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나라 손권이 지었다는 황학루 |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물러간 양쯔강(揚子江) 강변에는 어느새 꽃바람이 불고 있다. 중국 후베이성(湖北省)은 삼국지 영웅들이 사자후를 토하던 땅(형주)이자 초나라의 웅혼한 기상이 깃든 곳이다.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무당산을 품은 강호(江湖)의 중심 무대이기도 하다.
창장(長江)과 한수이(漢水)가 교차하고 둥팅호(洞庭湖)를 품은 땅으로 물길과 육로가 발달해 천하의 중심으로 통했다. 주유도 제갈량도 어느 곳보다 형주 땅을 중시했을 만큼 중국 역사에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지금도 그렇다. 성도인 우한(武漢)은 ‘아홉 성으로 통하는 갈림길’라는 뜻의 구성통구(九省通衢)가 별칭이다. 고속도로와 철도도 사통팔달의 도시 우한을 지난다. 요즘은 땅과 물길만큼이나 하늘길 역시 잘 뚫렸다. 우리나라에선 대한항공과 중국남방항공, 티웨이항공이 인천 직항으로 연결된다.
장엄한 역사와 자연이 녹아있는 후베이성 여행은 ‘중국의 배꼽’ 우한에서 시작한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피신한 강하군 일대인 우한시. 과거에도 찬란한 역사를 꽃피운 곳이지만 현대에 들어서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인구나 GDP로나 중국 7대 도시에 당당히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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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학루에는 시인묵객의 시가 남겨져있다. 사진은 최호의 시 |
이곳에서 가장 내세우는 곳은 바로 뱀산(蛇山)에 위치한 황학루(黃鶴樓)다. 강남(강남스타일의 그 강남이 아니다) 3대 명루 중 으뜸으로 꼽는 이곳은 원래 서기 223년 오(吳)의 손권이 군사적 목적으로 세운 망루였다. 그만큼 전망이 좋다.
이후 후대에 이백과 최호 같은 문인들이 황학루에 올라 풍류를 읊으며 문학의 색채가 덧입혀져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옛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고, 이곳에는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구나”. 최호가 남긴 시가 벽면에 부조로 새겨져 있다.
산중턱에 우뚝 선 황학루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창장(長江)과 우한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셔틀 전기차를 타고 이동하니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
우한은 무척 큰 도시다. 인구가 약 1400만 명으로 서울보다 많다. 1926년 국민당에 의해 우창(武昌), 한양(漢陽), 한구(漢口) 등 3개 도시를 통합, 지금의 우한시가 됐다. 산업과 교통, 교육 중심도시다. 프랑스와 우리나라 등 유럽과 아시아 기업들의 투자가 집중된 곳으로 우뚝 솟은 마천루에 무인 택시가 다니는 등 첨단산업 도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도심을 돌아다녀 보면 젊은이들이 꽤 많다. 23개 종합대학을 포함 50여 개의 대학을 품은 중국 최대 교육 도시라 학기 중에는 약 170만 명의 대학생이 우한에 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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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이산 방송타워 |
남산타워를 닮은 우한방송타워가 높이 솟은 강 건너 구이산(龜山)에서도 도심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에선 삼국 역사를 테마로 한 공연 ‘삼국군방연’을 보면서 고사(古事)에 맞춘 지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극장식당’인 지음전(知音殿)이 있다. 공연과 식사를 겸하는 장소치고 스케일이 크다. 마치 극 중에서 열린 연회에 초대된 것처럼 손님들은 노래와 춤, 기예(奇藝)가 혼재된 쇼를 감상하며 만찬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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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식당 지음전 |
우한을 떠나 북쪽 셴닝(咸寧)에는 도교의 성지인 구궁산(九宮山)이 있다. 명 말기 농민군을 이끈 이자성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구궁산을 중심으로 사방에 해발 1500m가 넘는 준봉들이 즐비하다. 산정에는 인공호 운중호(雲中湖)가 있는데 이를 호텔들이 에워싸고 있다. 얼핏 우리네 설악산 리조트 타운처럼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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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교의 성지로 꼽히는 구궁산에는 도교사원 서하궁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
고원에 위치했지만 도교사원 서하궁을 비롯해 여러 볼거리와 식당 등 편의시설이 모여 있어 불편함이 없다. 화로성시(火爐城市)라는 별칭을 가질 만큼 무더운 후베이성에서 가장 시원하고 쾌적한 피서지로 유명한 곳이라 여름에는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초봄이나 가을에는 밟아도 될 만큼 두터운 운해의 몽환적인 장관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바로 뒤편 동고포에 올라 대륙의 고원으로 솟아나는 일출과 운해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
계곡이 깊고 폭포와 소(沼)가 이어지는 경치가 좋아 트레킹을 즐기기에도 딱이다. 산정에 있는 케이블카를 이용해 석룡협 계곡으로 내려가 3시간가량 트레킹을 즐긴 후 다시 올라오는 코스가 인기다. 신록이 맺힌 봄 트레킹 내내 눈을 시리게 하는 기암괴석과 귓속을 파고드는 물소리가 동반한다.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운중호를 따라 도는 산책 코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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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룡협 트래킹 코스 역시 구궁산 여행의 큰 매력이다. |
후베이성의 대도시 중에는 산사(三峽)댐이 위치한 이창(宜昌)이 있다. 우한과 구궁산으로부터 약 2∼3시간 거리인데 근처에 세계 유일의 무 테마파크인 뤄보공사(㑩卜公社)가 있다.
황제에게 진상했다는 셴닝 무가 바로 이곳의 명물이다. 중국어로 ‘무’를 뜻하는 뤄보를 우리식으로 읽자면 ‘나복’인데 나박김치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채소인 무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체험하고 무로 만든 향토 음식을 즐기며 묵고 쉬는 곳이다. 이외에도 유채밭과 동물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자연 속에서 힐링을 만끽할 수 있다.
인근에는 온천 테마파크인 셴닝 이탕 온천 헬스밸리가 있어 여행 중 피로를 풀 수 있다. 요즘은 중국에서도 고급 온천 파크가 유행이라 잘 꾸며진 실내 온천탕과 야외 노천탕을 두루 갖췄다. 뜨거운 물에 몸을 ‘데쳐’ 가며 일정 중 망중한을 즐기면 된다.
휴게 공간에는 한국식 찜질방이 있으며 당구대, 마작 테이블 등 각종 놀이 시설도 있어 하루 종일 놀고 쉬고 먹으며 피로를 풀 수 있다. 음료와 과일을 무료로 무제한 제공하는 바도 운영하니 식도락가에겐 천국이 따로 없다. 호텔식으로 차리는 다양한 해산물 뷔페 등 식사 메뉴도 훌륭하다.
거대한 삼각형으로 연결된 후베이성 여행 코스, 흐르는 역사에 함께 몸을 맡기고 풍경에 멈추게 되는 곳이다. 우한에서 피로와 오해를 푸는 일정 중, 한국인에게 익숙한 초의 땅에서 봄을 알리는 초가(楚歌)를 듣고 왔다. 아직까지는 비자도 필요 없으니 중원의 여러 지역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제 다시 방문할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여유를 축적하고 있다.
글ㆍ사진=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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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식의 자부심이 견고한 중국 여행에서 먹을 걱정은 없다. 장강의 민물고기와 채소를 활용해 이른바 중원의 맛을 보여준다. |
[여행정보]
△가는 길 = 후베이성의 관문인 우한 톈허 국제공항(WUH)에서 출입국하면 된다. 비행시간은 약 3시간
△여행상품 = 지역이 넓어 자유독립여행(FIT)으로는 다니기 어렵다. 중국 특수지역 전문 여행사 뚱딴지 여행이 5일짜리 상품을 판매 중이다. 온천워터파크 체험을 포함해 구궁산, 뤄보(무)공사, 석룡협 트레킹, 마사지, 우한 도시 투어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웰니스’ 여행 상품이다. 대한항공 직항편과 전 일정 숙식을 포함하며 투어 차량과 가이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당연히 옵션과 쇼핑 강요는 없다.
△먹거리 = 우한에 왔다면 아침 식사로 ‘러간몐(熱乾麵)’을 빼놓을 수 없다. 고소한 마장(麻醬)에 마늘과 파, 고추기름 등 여러 양념을 버무린 굵직한 국수 한 그릇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무공사에선 유명한 셴닝 무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체험하는 일정이 있다. 씹을수록 달달한 무가 다양한 식재료와 함께 요리로 제공된다.
천호지성(千湖之省)라는 별칭처럼 호수가 많은 곳이라 민물고기 요리가 시그니처 메뉴로 꼽힌다. 장강 유역에서 잡은 무창어(武昌魚)를 생강과 대파, 죽순 등과 함께 쪄낸 간장 찜 요리(淸蒸)로 맛볼 수 있다. 신선한 우창어로 조리해 살점이 녹아내릴 듯 부드럽고 파기름에 살짝 익혀낸 껍질은 바삭하고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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