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홍샛별 기자] “폭등한 공사비를 반영받지 못한 채 착공하면 수천억원 적자고, 사업을 포기하자니 이미 ‘사전 간접비’로 지출한 비용만 수백억원입니다. 수십개 민자사업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국가 간선망과 도시 교통의 핵심축을 담당해 온 민간투자사업이 심각한 고사 위기에 직면했다. 최초 제안부터 실시협약 체결까지 수년이 걸리는 행정 절차 속에서, 급등한 자재비와 노무비를 사업비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적 공백’ 때문이다. 현행 불변가격 기준의 민자제도가 치명적인 사업 손실을 야기하면서 주요 인프라 사업이 연쇄 파행을 빚고 있다.
13일 민자업계에 따르면 민자사업의 파행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우선협상대상자 체결 전’ 단계에서의 고사다. 핵심 원인은 제안 시점과 협약 시점 사이의 극심한 시차다. 민자사업은 적격성 조사, 제3자 공고, 우선협상대상자 지정, 실시협약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중 고시된 사업들의 경우 협약까지 길게는 8년 이상 소요됐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체결 전 물가 폭등을 보정해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둘째는 ‘체결 후’ 착공조차 못 하는 기형적 표류다.
오산~용인 고속도로와 서창~김포 고속도로, 사상~해운대고속도로 등 주요 민자도로 사업들은 이미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음에도 수년째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나 주민 민원, 정부 법령 개정 등의 외부 변수로 착공이 지연되는 동안 발생한 수백억 원의 사전 간접비를 민간이 독박 쓰는 구조기 때문이다. 이미 지불한 기본설계비에 더해 실시설계까지 진행됐을 경우 비용은 2배로 늘어난다. 사업 제안 단계부터 착공 전까지 공사비의 5% 안팎이 이미 지출되는 것이 업계의 통상적인 현실이다.
민자업계 관계자는 “물가 보정이 실제 건설물가(CCI)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묶여 있어 착공하면 대규모 적자가 확정되는 구조”라며 “그렇다고 사업을 포기하기에는 금융비용과 초기사업비 출혈이 너무 크다. 수백억원을 손실 처리하느냐, 착공해서 수천억원 적자를 떠안느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 슬픈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회를 중심으로 ‘민간투자법 개정안’ 입법 논의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우선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안은 수익형 민자사업(BTO)의 물가 반영 한계를 다룬다. 현행 CPI 기준 대신 국가재정·계약법을 준용해, 계약 후 90일이 지나 품목·지수조정률이 3% 이상 증감하면 총사업비를 합법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사업 절차를 합리화하는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도 추진된다. 사업비 급증 시 타당성 재조사를 명문화하되, 국가균형발전이나 도시 기능 유지 등 공익상 필요성이 인정되면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타당성 재조사를 면제할 수 있도록 절차적 탄력성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민자업계에서는 입법 논의와 더불어 신규 사업의 ‘12개월 유효기간제(Base Reset)’ 도입 및 지연 사업장에 대한 ‘1:1 맞춤형 핀셋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민자업계 관계자는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은 미래 사업을 위한 것이고, 지금 서부선이나 도로 사업들처럼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사업들은 개정안만 쳐다보다가 다 죽는다”며 “사업마다 곪아 터진 부위가 다 다른 만큼, 재정당국과 주무관청이 사업장별로 맞춤형 핀셋 처방을 내리고 공무원에게 과감한 면책을 줘서 병목을 밀어내야 민자사업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샛별 기자 byul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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