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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 버려진 공간의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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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9-23 13:17:47   폰트크기 변경      
소각장ㆍ폐교ㆍ병원이 문화ㆍ예술ㆍ박물관으로

‘지속 가능한 여행’…한국관광공사 추천


평창무이예술관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재활용, 리사이클링, 리모델링 그리고 재탄생. 고쳐 쓰는 건 미덕이다. 엄청난 량의 생산과 소비에는 쓰레기와 플라스틱, 탄소가 뒤따랐고 이제는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다시 써야 하는 건 공간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떠나고 환경이 바뀌면서 쓰임이 다했던 곳들이 문화와 예술, 역사로 다시 살아난다. 건축물의 재생은 지속 가능한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부천아트벙커B39] 쓰레기 소각장이 예술공간으로


부천아트벙커B39 유인송풍실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삼정동 소각장’은 2010년 문을 닫았다. 이곳이 ‘부천아트벙커B39’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연 것은 2018년이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지만, 기존 소각장 모습을 보존했다.

1층 ‘벙커’는 쓰레기 저장조였다. 높이만 39m에 달한다. 부천아트벙커B39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압도적인 크기의 이 공간에는 과거 부천시에서 나온 쓰레기가 가득 찼었다.

멀티미디어홀은 쓰레기 수거차량이 드나들던 반입실이었다. 트럭 몇 대가 오갈 정도의 큰 공간에서는 이제 다양한 전시가 열린다. 벙커와 멀티미디어홀을 벙커브릿지가 연결하는데 다리 위에서 벙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로비 통유리창 너머로는 콘크리트에 철제 구조물이 더해진 ‘에어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소각로가 있던 자리다. 상단 철제 구조물 한쪽 콘크리트벽을 철거해 햇볕이 들어오게 했다.

옆으로는 재벙커와 유인송풍실이 이어진다. 재벙커는 소각 후 발생한 재가 모이는 공간이다. 지금도 벽면 전체가 새까맣게 그을려 있다. 1층부터 4층까지 수직으로 설치된 유인송풍실은 매연을 정화해 외부로 내보냈다. 이색적인 모습에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 뮤직비디오 촬영 명소로 인기다.

2층 중앙제어실에는 컴퓨터 등 옛 장비가 남아 있다. 3층에는 배기가스 처리장, 물탱크와 펌프, 각종 파이프가 설치된 응축수 탱크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부천아트벙커B39는 지역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과거 산업유산이 실험적인 융복합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어진다. 환경오염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소각로였던 만큼, 친환경을 주제로 한 전시와 공연, 콘퍼런스도 개최되고 있다.

글ㆍ사진=김정흠 여행작가



[평창무이예술관] 산골학교가 예술관으로


무이초 풍금



1999년 폐교한 무이초등학교는 조각가 오상욱, 서양화가 정연서, 서예가 이천섭을 만나 2001년 평창무이예술관으로 변신했다. 학교 운동장은 조각공원으로, 교실은 전시실로 꾸몄다. 예술관에 머무는 내내 옛 시골학교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예술관 정문으로 변신한 교문을 지나면 바로 조각공원이다. 오상욱의 작품들로 채워진 조각공원은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학교 운동장 풍경처럼 자유로운 분위기다.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전시하고 원하는 방식대로 관람한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반질반질한 나무 복도가 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관리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 때마다 콩기름으로 바닥칠을 한 덕분이다. 복도를 걸을 때 들려오는 삐걱삐걱 소리가 정겹다.

복도 초입에는 무이초등학교에서 쓰던 커다란 칠판이 놓여 있다. 칠판에 이미 관람객들이 남겨 놓은 흔적이 빼곡하다. 매일매일 변하는 특별한 작품으로, ‘흔적’이라는 작품명도 있다.


메밀꽃 그림


복도를 따라 전시관 전체를 돌아보게 된다. 서양화, 서예, 조각 등 다양한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수십년간 메밀꽃을 화폭에 담아 온 정연서 화백의 작품도 만난다. 예술관이 있는 봉평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다. 메밀꽃 그림이 사방을 둘러싼 전시실에 서면 실제 메밀꽃밭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글ㆍ사진=김수진 여행작가



[충주 오대호아트팩토리] 상상력 놀이터

아름드리나무가 있는 오래된 교정에 예술이 덧입혀졌다. 쓸모없는 물건을 뜻하는 ‘정크(junk)’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 빈 교실과 복도, 운동장을 채운다.

오대호 작가는 우리나라 정크아트 1세대로 꼽힌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40대 후반에 미국의 정크아트 작가인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을 만난 후 이 세계에 빠져들었다. 기계공학적인 기술을 녹이고, 상상력을 발휘해 독특한 작품을 만들었다.

2007년 폐교한 능암초등학교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교실과 복도는 전시장으로, 운동장에는 대형 작품과 아이들이 마음껏 탈 수 있는 아트바이크를 놓았다.


고철을 이용한 정크아트


철과 나무, 플라스틱 같은 평범한 재료에 독창성이 더해진 작품은 하나하나 뜯어볼수록 신기하다. 새와 물고기, 곤충, 고양이, 개 등의 동물은 물론 동화와 영화 속 캐릭터의 특징을 살린 작품은 동심을 불러일으킨다.

오대호아트팩토리에서는 직접 레버를 돌리면서 체험하는 작품들이 많아 전시 감상에 생기를 더한다. 주말에는 교실을 극장으로 꾸민 공간에서 마술공연이 열리는데 아이에게는 놀라움을, 어른에게는 추억을 선사한다.

아트바이크 타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운동장에 폐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를 활용해 만든 아트바이크는 누구든 즐길 수 있다.


오대호아트팩토리


글ㆍ사진=박산하 여행작가



[거창근대의료박물관] 역사와 치유가 어우러진 공간


거창 도심 속 현대식 건물 사이에 고색창연한 건물이 눈길을 끈다. 1954년 자생의원으로 문을 연 이곳은 거창 최초의 근대의료시설이었다. 2006년 폐원 후 2016년에 거창근대의료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박물관은 석조건물 특유의 단정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선이 유려한 현관 입구의 아치와 정문은 근대식 건축물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대지 962㎡, 건물 446㎡ 면적의 아담한 건물이다.

1954년에 본관 병원동과 입원동, 주택동이 하나의 지붕으로 지어졌고, 주택동은 따로 출입구와 마당을 두어 병원동과 분리했다. 1963년에 2층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입원동을 증축했다. 이렇게 이질적인 석조, 한옥, 양옥의 건축양식으로 덧붙여 지어졌지만,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이 신기하다.


 거창근대의료박물관


댓돌 위에 신발을 벗고 병원동에 올라서면 반질반질 윤이 나는 T자형 나무 바닥 마루가 좁고 길게 쭉 뻗어 있다. 복도 양쪽으로 진료실, 처치실, 약제실, 수술실, X-선실 등이 있는데, 의사의 치료 동선을 고려해 배치한 점이 인상적이다. 현재 병원동은 의료전시실이다. 옛 진료기록과 수술 장비, 약품,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단연 흥미로운 방은 수술실이다. 낯선 모양의 마취 장비와 수술대, 외과수술 기구들을 만날 수 있다. 육중한 덩치의 기계가 1960년대의 엑스레이 촬영장비라는 점과 X-선실에 필름 현상을 위한 암실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ㄷ’자 형태의 자그마한 마당을 품고 있는 한옥 입원동에는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옛 입원실로 재현된 방에 걸려 있는 링거병과 이불, 세간살이에서 당시 삶의 애환이 묻어난다. 툇마루 아래에 방마다 하나씩 달린 아궁이가 눈길을 끈다. 당시 환자 가족들은 좁은 마당에 각자 임시부엌을 만들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지어 환자의 식사를 해결했다고 한다.

의사가 생활했던 주택동은 별도의 출입구와 마당이 있는 한옥 기와집이다. 내부 한쪽 면이 본관 병원동의 복도 끝과 연결되어 있어 밤에 응급환자가 찾아와도 의사가 바로 나가서 처치할 수 있었다. 집이었지만 24시간 응급실 역할을 했던 셈이다.

글ㆍ사진=정윤주 여행작가

정리=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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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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