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 막으려 만든 ‘하동송림’
이제는 백사장과 숲 어우러진 비경
한국관광공사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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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송림에는 각양각색의 소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진다. |
소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존재다.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계절 내내 푸른 자태, 단단한 철갑을 두른 듯한 줄기의 껍질, 올곧게 솟아난 형태, 궂은 날씨를 견디는 모습이 강인한 생명력과 올곧은 기개를 상징한다.
전국 어디에서나 소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큰 숲은 주로 강원도 산간에 있지만, 남도에도 울창한 소나무 숲들이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섬진강 유역도 그 중 하나다. 국가유산 천연기념물인 ‘하동송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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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송림과 섬진강 모래사장 |
하동송림은 조선 영조 21년(1745년)에 하동도호부사였던 전천상이 만든 인공 숲이다. 하동 주민들이 섬진강에서 날아오는 모랫바람에 고초를 겪자 전천상은 강변에 소나무 숲을 조성하라는 명을 내렸다. 강과 마을 사이에 숲을 만들어 모래와 바람을 막은 것이다. 주민들은 감복했고, 전천상의 업적을 기리게 됐다.
소나무 숲은 주민들의 불편을 해결해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섬진강과 모래사장,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도 선물했다. 덕분에 하동은 ‘백사청송(白沙靑松)’의 고장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때의 모습은 일부만 남아 있다. 지금은 900여 그루의 소나무만 자리를 잡고 있다. 하동군과 주민들은 하동송림을 유지하고자 꾸준히 후계목을 심었다. 하동송림에는 초창기에 심었던 나무와 후계목, 군민이 기증한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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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송림의 소나무들은 10m를 훌쩍 넘는 높이를 자랑한다. |
송림공원의 시작은 전천상의 공로를 기리는 기적비(사적을 적은 비)다. 그의 출신부터 하동도호부사 부임 후 업적에 관해 상세히 쓰여 있다.
관리번호 1번목인 ‘맞이나무’가 기념비 뒤에서 오가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듯이 줄기를 겸손하게 숙이고 있다. 건너편으로는 관리번호 2번목 ‘원앙나무’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바로 옆에서 씨앗을 틔운 뒤 자라나며 하나가 된 연리목이다. 사람의 인체를 빼닮았다는 관리번호 45번목 ‘고운매나무’, 나뭇가지를 펼친 형태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못난이나무’가 된 관리번호 552번 등은 입구에서 사진으로 먼저 만날 수 있다. 보물찾기하듯이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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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송림 입구에 있는 맞이나무 |
숲 한가운데로 오솔길이, 가장자리로는 자전거도로를 겸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어느 길이든 천천히 거닐어보자. 아니면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소나무 숲을 즐기면 된다. 소나무마다 서로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나뭇가지 사이로 부서져 들어오는 햇볕이 더해지면, 마치 한 폭의 동양화와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소나무는 잎에서 천연 제초제라 불리는 갈로탄닌을 생성한다. 갈로탄닌은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타감작용을 일으키는데, 그래서인지 숲에서 다른 식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동송림공원에 솔잎이 켜켜이 쌓인 것도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두툼하게 쌓인 솔잎은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푹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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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 가득한 숲길을 거닐어 보자. |
하동송림공원의 서쪽 끝으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바다와 가까워지며 느리게 흐르는 강은 곳곳에 드넓은 모래사장을 만들었다. 소나무숲을 만들게 했던 모래사장은 이제 사람들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사시사철 초록빛을 유지하는 하동송림공원과 함께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섬진강 모래사장은 맨발걷기 명소로도 손꼽힌다.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벗고 바지를 살짝 걷은 뒤 강가를 따라 걸어 보자. 부드러운 모래와 시원한 강물이 발끝으로부터 온몸으로 활기를 불어넣는다. 탁 트인 하늘은 하동송림공원의 빼곡한 숲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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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송림과 옛 경전철교, 섬진강 |
하동송림공원과 섬진강 그리고 소백산맥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한눈에 담는 방법이 있다. 하동송림공원의 남쪽 끄트머리에서 있는 ‘알프스 하모니 철교’에 올라가는 것이다. 옛 경전선 철도가 지났던 곳으로 선로의 흔적이 남아있다. 철교 위에는 전망시설도 있다. 2016년 경전선이 이설되며 폐선된 경전철교를 보행교로 리모델링했다.
알프스 하모니 철교부터 옛 하동역까지 약 2.3㎞를 따라 산책로와 공원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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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참판댁 |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악양면 평사리에는 소설 속 최참판댁이 조성되어 있다. ‘토지’를 드라마화하면서 세트장으로 지었는데, 주요 인물이 살았던 집들이 충실히 구현되어 있다. 최참판댁 안에는 박경리문학관도 있다.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 소백산맥의 능선을 파노라마로 펼쳐 놓은 조망명소가 최참판댁 근처에 하나 더 있다. 섬진강 수면을 기준으로 150m 높이에 설치된 스타웨이하동은 삼각형 형태의 스카이워크와 카페를 갖춘 전망대다. 시야를 방해하는 나무와 구조물이 없어 악양평야와 주변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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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웨이하동. 섬진강과 악양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
하동군의 초록빛 겨울은 산골짜기마다 자리한 차밭에서도 만날 수 있다. 화개면 깊숙한 곳에 하동야생차문화센터가 있다. 하동 녹차의 역사, 차 명인 이야기를 다루는 박물관과 체험장, 판매장, 치유관 등으로 구성됐다.
글ㆍ사진=김정흠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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