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팔고 먹고 구경하는 날…가장 활기찬 삶의 모습
3ㆍ8일로 끝나는 날에 5일마다 열려
해산물 먹거리와 생필품ㆍ농기구까지
대 이어 내려온 국밥집 ‘인기’ㆍ주막도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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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가까워서 그런지 북평민속시장에는 해산물이 많다. |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있다. 지인을 만나러 갔는데 그날이 마침 장이 서는 날이었다. 장에 가고 집에 없는 그를 만나지 못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뜻한다. 그만큼 옛날의 장날은 너도나도 가는 잔치 같은 날이었다. 물건을 사고팔고, 구경하는 것은 물론이고 맛있는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아직도 시끌벅적한 장날은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오일장이 열리는 곳으로는 △경기도 성남의 모란민속5일장 △강원도 동해의 북평민속시장 △경상남도 창녕의 창녕전통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민들이 장을 보러 많이 오지만, 관광객들도 북적인다. 오일장마다 알려진 대표메뉴 맛집에는 긴 줄이 늘어선다. 이 가운데 북평민속시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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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에 들어서면 좌판들이 시작된다. |
북평민속시장 5일장은 3과 8로 끝나는 날에 열린다.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 이렇게 5일마다 한 달에 여섯 번 장이 선다. 내가 간 날은 8일이었는데 마침 토요일이어서 사람이 더 많은 듯 보였다. 이 역시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장날은 장날인가 보다. 주차할 곳이 없어서 시장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운 후 걸어 들어갔다. 걷다 보니 슬슬 좌판들이 나타난다. 사극 속 장터처럼 천막을 친 그런 모습은 아니고, 좁다란 골목길 사이사이로 이어진 좌판들에서 물건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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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처럼 물을 담아 놓고 살아있는 생선을 판다. |
강원도라서 그런지 해산물이 많다. 말린 생선이 대부분이지만, 어항처럼 물을 채워놓고 살아있는 물고기를 팔기도 한다. 봄이 벌써 왔는지 나물을 파는 곳이 많고, 반찬과 먹거리가 풍년이다.
생필품은 물론 식칼과 삽, 낫 같은 농기구도 판다. 누가 사나 싶다가도 여전히 지역민들이 장에 많이 오나 보다 싶다. 하기야 동해에 사는 친구의 아버지도 이것저것 많이 키우신다니 지역민들에게는 필수품일 수도 있겠다.
길거리에서 파는 옷가지도 눈길을 끈다. 시골 스타일이라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맘에 드는 예쁜 옷들과 눈이 마주친다. 어쩌면 내 취향이 촌스러울지도 모르겠으나 맘에 맞는 옷을 싼 가격에 ‘득템’했으니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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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칼과 삽, 낫도 판다. |
시장에 대한 기억이라면 북적거림과 흥정이다. 어릴 적 기억 속 어머니는 지독히도 깎았다. 흥정이 실패하면 다른 집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 덕분에 갔던 집을 몇 번씩 다시 가곤 했다. 뭘 많이 사는 것도 아닌데 긴 시간을 시장에서 보내는 게 지루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시장에 가실 때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갔을까?
북평민속시장에서는 흥정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질문도 많지 않지만, 대답은 단답형이다. 가격은 정해져 있고 안 사면 그만이고 안 팔면 그만이다. 그래도 맛보기나 서비스 인심은 풍족하다. 물건을 사면 듬뿍 더 담아준다. 장터다운 분위기를 띄우는 호객 소리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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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민속시장에는 먹거리가 이어진다. |
냉이와 버섯을 조금 샀다. 향에 끌렸다. 서울 마트에서는 이렇게 진한 향이 나지 않는데 왜일까. 산지라 수확한지 얼마 안돼서 그런가 싶다. 가자미식해도 눈에 들어왔는데 그냥 비닐봉지에 담아준다기에 포기했다. 기차를 타고 돌아가야 하는데 들고 타기에는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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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맛집인 국밥집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
북평민속시장은 국밥집들로도 유명하다. 뜨끈한 국밥은 겨울철 장터와 잘 어울린다. 국밥집 6곳이 나란히 장사를 하고 있는데 소머리국밥이다. 시장 가까이에 소를 사고파는 쇠전과 도축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소머리국밥 맛집이 들어선 이유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식당마다 요리법이 다르다. 국물 색깔도 뽀얗거나 빨갛거나 차이가 있고, 들어가는 양념과 반찬도 다르다. 식당마다 늘어선 줄의 길이에도 차이가 있다. 대를 이어 운영하는 식당들이 많고, 여전히 네다섯 시간씩 끓여내는 전통방법으로 국밥을 만든다고 한다. 커다란 가마솥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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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민속시장의 인기 메뉴 국밥. 식당마다 맛과 요리법. 색깔도 다르다. 사진 : 오원호 여행작가 |
줄을 서기 싫거나 북적거리는 식당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북평민속시장 문화광장 양옆에 있는 주막도 좋다. 국밥도 훌륭한 술안주이지만, 술꾼들이 ‘주막’이라고 써 붙인 곳을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다. 사극을 보면 주막에 앉아 국밥과 탁주 한 사발을 시키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왜 국밥집이라고 하지 않고 주막이라고 했는지도 궁금하다.
주막 한곳에 들어갔는데 메뉴가 다양해 고르기가 쉽지 않다. 강원도에 왔으니 일단 감자전은 기본으로 시키고 메뉴 중에 눈에 들어온 미나리전도 하나 더 주문했다. 전에 앞서 나오는 반찬들이 입맛을 돋운다. 감자전과 미나리전 모두 ‘탁월한 선택’이라고 일행들이 입을 모은다. ‘강원도 음식이 이렇게 맛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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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외관의 북평주막 |
주막을 나와 문화광장 무대를 보니 1796이라고 쓰여있다. 한 달에 여섯 번 장이 열렸고, 삼척부사 유한준이 세금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1796년을 시장의 역사로 적은 것이다.
문헌에 남아있는 가장 오랜 기록이 이때이고 장은 이전부터 열렸을 것이다. 200여년 넘게 사람들은 이곳에서 사고팔고 먹고 마시며 보고 즐기며 삶을 이어왔다.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모이는 시장이야말로 가장 활기찬 삶의 모습이 아닐까.
두시간여의 ‘장보기’와 ‘시식’을 끝내고 장을 떠났다. 손에 들려진 달래와 냉이, 버섯의 향과 함께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나물과 된장찌개 요리법을 검색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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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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