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과 소나무 어우러진 인왕산
노을과 야경 보는 저녁산행 ‘인기’
이제는 모두 열린 북악산 등산로
폭설로 소나무ㆍ폭우로 성곽 ‘몸살’
축제가 계엄을 이긴 여의도 집회
웃음이 분노를, 농담이 비장함을 이긴 ‘역사적 순간’
인왕산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시작은 독립문역이었다. 아침 8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난 또 늦어서 “추운 날씨에 기다리게 하면 어쩌느냐”고 후배에게 타박을 들었다. 벌칙으로 점심을 사기로 하고 길을 나서는데 후배의 차림새가 눈에 들어왔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에게 겨울 산행은 장비빨”이란다. 게다가 그가 멘 배낭에는 ‘서울 둘레길 완주’를 기념하는 파란색 리본까지 달려있었다.
1년 반 정도 전 그는 회사를 그만뒀다며 등산 모임에 나오겠다고 했다. 제대로 등산을 해 본 적이 없다며 무난한 코스를 주문했던 그가 이제는 둘레길을 완주한 ‘프로 등산러’라니…. “형. 1년 반 지난 백수자나.” 함박웃음이 부러웠다.
“청와대 한번 가보자”
이날의 코스는 독립문역-인왕산-창의문-청운대-숙정문-백악정-춘추관으로 잡혔다. 이런 코스가 정해진 건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사실 이 모임에 자주 오는 사람도 아니고 등산을 많이 좋아하지도 않고 겨울 산행은 부담스럽기도 해서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생각이 달라진 것은 ‘비상계엄’ 때문이었다. 정권이 바뀐다면 청와대 관광 기회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산 코스 마지막에 청와대를 넣자’고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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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인왕산 기차바위 |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때야 춘추관에만 갔고 영빈관 오찬행사에 한번 가본 게 전부였다. 못 먹어본 음식은 생각나지 않지만, 시간이 없었다든가 해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지나친 음식은 계속 생각이 나는 법이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가고 청와대가 개방된 이후 제대로 한번 둘러보려고 마음먹었지만, 볼 사람 다 보고 조금 한적해진 후로 미뤄둔 것이 아직까지다.
등산코스를 잘 모르고 지리 감각도 모자란 나는 모임에서 제안된 코스들에 대해 ‘청와대 뒷길로 내려가야 해’, ‘마지막에 버스 타고 가는 건 의미가 없어’ 등등의 참견을 했다. 착한 후배들이 적당한 시간과 강도, 청와대로 끝나야 한다는 조건을 맞추다 보니 인왕산과 북악산을 잇고 청와대로 마무리하는 코스가 그려졌다는 설명을 등산길에서야 듣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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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
폭설에 꺾인 소나무 천지
독립문역에서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산으로 가는 길. 초입부터 가파른 계단이 이어져 산에 다다르기도 전에 두꺼운 패딩을 입고 온 걸 후회했다.
1년 반 전 후배가 등산을 시작한 곳도 인왕산이었다. 그 당시 인왕산에 큰불이 난 직후라 곳곳에서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번에는 꺾이거나 뿌리째 뽑혀 쓰러진 소나무들이 많았다. 등산로 곳곳을 막아서거나 부러져 걸려 있는 나뭇가지가 언제 떨어질지 몰라 위험해보였다. 등산로에도 이런 나무들이 수도 없으니 전체 숲에는 얼마나 많을까.
최근 내린 폭설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습기를 가득 머금은 무거운 폭설이 지구 온난화의 결과라고 하니 이 또한 인간들 때문이리라. 우리보다 훨씬 오래 산을 지켰을 소나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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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에 꺾인 소나무들을 등산로 곳곳에서 마주쳤다. |
서울의 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인왕산도 성곽과 소나무의 산이다. 멀리 보이는 성곽이 일품이고 오래된 멋들어진 소나무들을 걷는 내내 만날 수 있다. “소나무가 다 꺾였네”라며 혀를 차면서 걷는 나이 지긋한 등산객들과 지나쳤다. ‘소나무는 바람서리 불변하는 우리 기상 아니던가. 무슨 흉조인고.’ 나도 노인네처럼 독백을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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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은 성곽과 소나무의 산이다. |
인왕산은 그리 높지 않다. 등산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짧은 코스다. 물론 나 같은 초급자들에게는 이도 힘들다. 중간중간 가파른 구간도 있다. 그럼에도 등산 인구가 늘고 젊은이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로 확산되면서 자연스레 인왕산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저녁이나 밤 산행도 인기라고 한다. 저녁에 올라 지는 해와 노을을 보고 돌아서면 하나 둘 불이 켜지는 서울 야경을 감상한다니 나도 저녁에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수ㆍ무장공비에 닫혔던 숙정문
인왕산에 내려와 북악산으로 건너간다. 윤동주문학관 표지를 지나 창의문으로 가다 보면 커다란 동상을 만난다. 1968년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내려온 무장공비와 맞서다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이다. 옆에는 함께 산화한 정종수 경사 흉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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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식 경무관 동상 |
이후 청와대 주변은 몇 겹으로 꽁꽁 싸매졌다. 부대와 철조망, 초소가 늘어나면서 입산이 금지됐고, 신분증을 제시하거나 맡기고 걸어야 하는 길도 많았다. 나 역시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군인들을 만난 기억이 있다.
그러던 길들이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차례대로 풀렸다. 그런데 지금은 이 가운데 창의문에서 숙정문으로 가는 길이 다시 봉쇄됐다. 집중 호우로 성벽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길을 잘 아는 또 다른 후배 덕분에 우회해 청운대를 거쳐 숙정문으로 가는 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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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에서 정상부로 가는 길이 막혀 우회해야 한다. |
창의문은 조선 사대문 사이에 있는 사소문(四小門) 중 남아있는 유일한 문이라고 한다. 북문, 자하문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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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에서 정상부로 가는 길이 막혀 우회해야 한다. |
숙정문은 사대문이다.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맥을 헤친다고 통행을 금지하고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1968년 무장공비 도발 이후에는 청와대 경비를 이유로 폐쇄됐다. 다시 개방된 것은 2006년 이후다. 그러나 군사시설이라 출입을 금지한다는 푯말들을 여전히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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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금지 푯말. |
숙정문을 끝으로 하산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무릎과 허리에 신호가 와서 내리막이나 오르막길은 이제 그만 가는 게 나을 듯 싶었다. 추운 날씨이지만, 산행으로 열이 오르면서 겉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도 상당히 거추장스러웠다. 겨울 산행 옷차림은 그저 두껍게 입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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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북악산 성곽. |
축제 같은 집회
청와대 담장을 따라 내려왔다. 본래 하산 코스로 정한 춘추관이 아니라 영빈관 쪽을 택한 이유는 이쪽에 식당이 더 많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설명 때문이었다. 청와대에 갈지 안 갈지는 점심을 먹으며 결정하기로 했다.
효자동의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때부터 더 이상의 일정은 없으리라 짐작했다. 온 김에 혼자서라도 청와대를 둘러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대화는 자연스럽게 최근의 계엄과 탄핵으로 흘러갔다.
후배는 애초부터 여의도에 갈 계획이었다. 집에 들러 인터넷에서 산 응원봉을 챙겨야 한다고 했다. 술도 곁들이면서 가슴은 뜨거워지고 결국 여의도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순간’이라는 말에 넘어갔다. ‘청와대는 다음에 오면 되지 뭐.’ 다시 독백을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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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에서 내려와 만난 청와대 돌담길. |
광화문 집회까지 겹치면서 시내에서 여의도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더 가지 않는 버스에서 내리고 지하철이 여의도역에서 서지 않아 전역에서 내려야 했다. 여차여차하여 집회장소까지 가니 스마트폰 걷기 앱은 3만보를 가리키고 있었다.
집회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겠다. 듣던 대로 민중가요와 촛불은 K-Pop과 응원봉이 대신했다. 특히, 유머러스한 깃발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과거의 커다란 깃발 대신 ‘붕어빵 3개 삼천원 협회’, ‘오아시스 내한공연 티켓팅 성공자 연합’이라는 식으로 자신들을 소개하는 깃발들이 곳곳에 펄럭였다. 웃으라는 것이다.
축제 같은 집회에는 또다른 힘이 있다. ‘군인들이 총을 쏘거나 경찰들이 때리거나 잡아가는 시절은 지나갔다.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축제다’라고 말한다. ‘너희는 이길 수 없다’라는 강한 자신감. 웃음이 분노를, 축제가 계엄을, 농담이 비장함을 이기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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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집호에서 만난 깃발들 |
글ㆍ사진=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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