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술익는 마을 5곳
몽트비어 비어바 |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술을 만드는 도시의 양조장은 관광코스에서 빠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맥주라면 네덜란드에서는 하이네켄, 일본에서는 사포로, 중국에서는 칭타오 공장을 둘러보고 술을 맛본다. 왜 막 만든 맥주가 더 맛있을까. 한국의 음악, 영화, 음식, 문학이 이미 세계 주류에 이름을 올렸지만, 아직 술은 그 정도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시대에 술 담그는 것을 규제하면서 많은 전통주가 명맥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맥주나 막걸리 등을 직접 만드는 브루어리, 양조장 창업이 늘면서 술의 종류와 맛이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고양시에서 열린 막걸리 축제에 다녀왔는데, K-막걸리 시대도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축제에는 전국 70여개 양조장이 참여했다. 지방 곳곳에는 유명한 양조장들이 관광지로 손님을 모으고 있다.
[속초 몽트비어] 수제 맥주의 매력에 빠지다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하고 청량한 라거(Lager ; 하면발효맥주) 맥주가 여름에 제격이라면 가을엔 농익은 에일(Ale ; 상면발효백주) 맥주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라거맥주 위주였던 우리나라에 탄산이 적고 색이 진하며 풍부한 향이 특징인 에일(Ale) 맥주가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기호도 다양해졌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맥주를 찾아 마시는 것은 물론 집에서 직접 맥주를 만드는 홈브루잉을 즐기는 사람도 생겨났다.
수제 맥주의 매력에 빠져 맥주 만들기 동호회에서 홈브루잉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이 몽트비어다. 홈브루잉을 즐기던 동호회원들이 양조장을 설립한 것은 술을 만들어 외부유통이 가능하도록 개정된 주세법이 계기가 됐다.
붉은색 벽돌과 파란색 간판이 어우러진 건물은 양조장이라기보다 카페의 느낌에 가깝다. 비어 바(Beer Bar)가 있는 2층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울산바위를 중심으로 설악산과 북한에서부터 이어진 금강산의 봉우리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프랑스어의 산을 뜻하는 단어에서 착안한 ‘몽트(Mont)’라는 이름과 울산바위를 형상화한 로고가 만들어진 이유다.
갓 나온 신선한 맥주를 종류별로 맛볼 수 있다. 몽트비어가 선보인 맥주 종류는 10가지가 넘는다. 그중에는 스트로베리 에일과 피치 화이트 사우어처럼 독특한 재료를 사용한 맥주도 눈에 띈다. 맥주에 들어가는 재료는 한국관광공사 관광두레에서 만난 업체의 농산물을 사용한다.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로컬맥주라는 생각에서다.
처음엔 속초 응골딸기마을에서 생산된 딸기로 과즙을 내서 스트로베리 에일을 만들었다. 생딸기를 아낌없이 넣어 은은한 딸기향을 느낄 수 있는 봄철 한정판 맥주다. 뒤이어 양양의 곰마을에서 재배한 복숭아를 이용해 피치 화이트 사우어 맥주도 만들었다. 유산균 발효 공정을 거쳐 복숭아의 향미와 더불어 새콤한 맛이 조화를 이루는 맥주다. 2023년 대한민국 국제 맥주 대회에서 피치 화이트 사우어는 금상을, 스트로베리 에일은 동상을 받아 품질도 인정받았다.
몇 년 전 강원도에서 감자 파동이 있었을 때는 감자로 맥주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리고 춘천에 있는 강원농식품연구소와 협업해 2년간 개발 기간을 거쳐 만든 것이 강원감자 맥주 쟈니다. 국내산 효모와 감자 전분을 사용했다. ‘쟈니’라는 이름은 ‘야, 이거 XX 쟈니?’라는 식의 강원도 사투리 말투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맥주의 주재료 중 하나인 홉도 국내산을 사용하기 위해 밭에서 직접 재배한다. 홉은 맥주 특유의 쌉싸름한 맛을 내는 재료로 품종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낸다. 홉의 향과 풍미를 더하기 위해 더블 드라이 호핑(Double Dry Hopping) 공정을 거친 하와이안 IPA(India Pale Ale)도 인기다. 미국식 IPA로 홉에서 나오는 열대과일향과 쌉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IPA 맥주는 홉을 많이 넣어 쓴맛이 강한 것이 특징인데 쓴맛을 선호하지 않는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쓴맛을 최소로 줄였다.
몽트비어 양조장 |
필 바이젠은 외부유통을 하지 않아 몽트비어에서만 마시거나 구입할 수 있는 맥주다. 독일어로 밀을 뜻하는 바이젠(Weizen) 이름대로 온도에 민감한 밀맥주이기 때문이다. 필 바이젠은 맥주에 효모가 살아 있는 독일식 헤페 바이젠(Hefe Weizen)으로 바나나 향을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바이젠 맥주의 맛은 효모가 발효되면서 정해지는데 온도와 습도 등 환경을 유지해주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지만 맛있게 익는 것은 자연의 영역이어서 상업용 맥주를 만들 때 효모를 발효해 향 내는 과정이 너무나 어려웠다고 한다.
라운드 미드나잇이라는 이름의 한정판 임페리얼 스타우트(Imperial Stout) 맥주도 빼놓을 수 없다. 싱글몰트위스키에서 제조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고품질의 맥주다. 참나무 향을 입히기 위해 오크통에서 6개월 이상 1차 발효를 한 후 병에 넣어 2차 발효해 완성한다. 알코올 도수는 12도에 이르며 향과 풍미가 좋아 이 맥주만 찾는 마니아가 있을 정도다.
몽트비어 맥주는 모두 병에 담겨 시중에 유통된다. 맥주는 양조한 뒤 탱크 안에 들어있을 때가 가장 맛이 좋다. 두 번째는 생맥주를 담는 20ℓ짜리 스테인리스 통이고 세 번째가 유리병이다. 유리병은 맥주의 맛을 유지하면서 소비자를 만나기에 가장 좋은 형태이기 때문이다. 병은 와인병 크기인 750㎖를 고집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금형을 만들어 OEM 방식으로 유리병을 생산해 사용하는 업체이기도 하다.
몽트비어는 맥주를 만드는 양조 시설을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개인 방문자의 경우 관람 가능한 동선 내에서 자유롭게 양조장 시설을 둘러볼 수 있다. 건물 입구와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맥주를 만드는 양조 탱크 시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창이 나 있다.
글ㆍ사진=오원호 여행작가
[서천 한산소곡주갤러리] 70여 양조장의 술을 한곳에
한산소곡주 술빚기 체험 |
집에서 담그는 술을 가양주라 부른다.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까지 ‘가양주 문화’가 존재했다. 문헌에 기록된 술 종류만 600종이 넘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주세 정책으로 가양주 면허제를 시행하고, 쌀로 주류 양조를 금하면서 전통주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런데 서천 지역은 다르다. 예나 지금이나 이름난 술 마을이다. 마을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려도 됫병에 소곡주를 구하는 게 쉬운 일이었다. 집의 대소사에 술을 빚으며 한산소곡주의 명맥을 유지했고, 술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팔아서 생계를 이어갔다.
사실 전통방식으로 빚는 술은 노동집약이란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사람의 품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산 지역에서 술을 빚는 것은 밥 짓고, 장 담그는 것처럼 몸에 밴 삶 그 자체였다.
한산소곡주는 기록이 남아 있는 우리 술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술로 전한다.
역사적으로 1500년 전 백제 궁중 술로 백제가 망한 뒤 유민들이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빚어 마셨다고 한다. 한산소곡주는 옛 한산 지역인 지금의 충남 서천군 한산ㆍ화양ㆍ기산ㆍ마산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곡주를 뜻한다. 농산물 지리적 표시 제110호로 고창 복분자주, 진도 홍주에 이어 세 번째로 등록된 전통주다.
‘한산소곡주’의 이름을 내걸려면 오직 이 지역 내에서 지역 재료만을 사용해야 한다. 현재는 70여 가구가 양조장 시설을 갖추고 주류제조 면허를 취득해, 이 지역은 전국에서 지역 단위에 가장 많은 양조장을 가진 ‘술 익는 마을’이 되었다.
술 빚기에 필요한 기본 재료는 쌀, 물, 누룩이다. 한산소곡주 생산의 모든 공정은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적당함’의 영역에 있다. 술 빚는 쌀은 찹쌀이다. 멥쌀보다 탄수화물 성분이 많아서 알코올의 원료가 되는 당분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시루에 밥을 안쳐 꼬들꼬들한 고두밥을 하는 것으로 술 빚기는 시작된다. 고두밥을 평상에 널어놓고 뒤집어가며 식히고 덩어리지지 않게 말린다. 이때 집어먹는 고두밥 맛이 꿀맛이다.
술맛은 70여 양조장 모두가 같은 듯 다르다. 가양주의 특색이다. 쌀에 누룩을 더해서 밑술을 만들고 다시 고두밥으로 덧술 후 용수로 걸러내는 이양주 방식은 비슷하지만, 양조장마다 첨가하는 재료가 다르고 몇 대에 걸쳐 내려온 비법을 더하니 김치나 장맛처럼 술맛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한산소곡주는 골라 마시는 재미와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를 골라 듣는 재미도 있다. 시집온 며느리가 고작 몇 해 술빚은 솜씨로는 시어머니의 손맛을 알 수가 없었다. 작은 종지 하나에 젓가락으로 술을 맛을 보고 또 보다 결국 실실 웃음이 나며 다리가 풀려 종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또 있다. 조선시대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주막거리를 지나다, 시를 읊고 달을 보며 일어나지 않을 핑계를 하나둘씩 보탰다. 결국 소곡주의 매력에 빠져 과거시험을 보러 가지 못했단다.
한산소곡주 시음 체험 |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한산소곡주를 어디에서 모두 맛볼 수 있을까? 정답은 바로 한산소곡주갤러리다. 이곳은 한산면 소재 70여 양조장에서 생산한 한산소곡주를 전시ㆍ판매한다. 시음도 가능한데 매주 5개의 양조장에서 만든 술을 돌아가며 선보인다. 한산소곡주는 서천군에서 제작한 같은 모양의 갈색 술병을 사용한다. 포장박스와 병에 붙은 라벨을 통해 양조장을 구분할 수 있다. 선비복을 입고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 3종의 소곡주를 맛보는 향음체험(1인 1만5000원ㆍ10인 이상)도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도자기 잔에 받아든 한산소곡주의 술 빛은 엷은 담황색을 띤다. 마셔보니 은은한 향과 혀끝에 감도는 맛이 뛰어나다. 갤러리 내부는 소곡주 양조장 저마다의 역사가 잘 담겨있다. 정중앙에는 발효와 증류 과정에서 모티브를 딴 ‘누룩’과 ‘화비’가 지키고 섰다. 매년 10월경 한산소곡주갤러리 앞에서 열리는 한산소곡주 축제의 마스코트다. 10월10일은 한산소곡주의 날이다. 정성을 다해 빚어지는 한산 소곡주의 숙성기간 100일과 우리 조상이 결혼 100일을 맞아 합환주로 소곡주를 나누었던 의미를 담았다.
직접 술을 만들어보는 체험도 가능하다. 갤러리 인근 삼화양조장은 한산면에 소재한 양조장 가운데 가장 먼저 한산소곡주 체험을 시작한 곳이니만큼 소곡주 주례체험(1시간, 2만5000원), 소곡주 빚기(2시간, 7만원ㆍ10인 이상)체험 등 내용도 다양하다.
글ㆍ사진=길지혜 여행작가
[문경 오미나라] 세계가 감동한 오미자 와인의 탄생지
오미나라 와인 |
문경 오미나라는 백두대간의 허리인 문경새재 초입에 위치한다. 예로부터 문경새재는 한양과 영남지방을 이어주는 영남대로 가운데 가장 높고 험한 고갯길로 통했으며, 해발 1000m 고지에 달하는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에 자리해 사시사철 쾌적하고 서늘한 기온을 자랑한다.
문경의 이러한 지리적 환경은 오미자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오미자는 일교차가 큰 해발 300∼500m 정도의 준고랭지 가운데 바람의 피해를 받지 않으면서 일조량이 풍부한 산간분지에서 잘 자란다. 문경은 우리나라 오미자의 생산량 중 무려 절반에 해당하는 45%를 차지한다. 강원도, 제주도 등지에서도 오미자를 재배하지만, 오미자 주산지인 문경의 오미자 재배면적에는 미치지 못한다.
오미나라는 2008년 9월 세계 최초의 오미자 와이너리로 설립됐다. 2010년 12월 오미자 와인을 특허 등록했으며, 2011년 11월 정통 발효 공법과 오크통 숙성으로 제조한 오미자 스틸 와인 <오미로제>와 정통 샴페인 공법으로 제조한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 결>을 선보였다. 이후 2016년 5월 사과 증류주 <문경바람>, 6월 오미자 증류주 <고운달>을 내놓았고, 2020년 6월 샤마트 공법(보급형 스파클링 와인 대량 생산 방법으로, 압력탱크에서 2차 발효시킨 뒤 압력이 손실되지 않도록 여과해 병입한다)으로 제조한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 연>을 출시했다.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은 국내외 통틀어 유일하게 오미나라에서만 생산한다. 오미나라를 만든 이종기 대표는 지난 44년 동안 세계 명주를 공부하고 우리 술을 연구한 양조 및 증류 명인이다. 1980년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뒤 OB맥주에 입사, 씨그램코리아 공장장과 디아지오코리아 부사장으로 25년을 근무했다.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브루잉 앤 디스틸링(Brewing&Distilling, 양조 및 증류)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대한민국 최초로 위스키 마스터 블렌더 자격을 취득했다.
이종기 대표가 오미자 와인을 개발한 이유는 분명했다. 바로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대한민국 최고급 명주를 만들겠다는 일념이었다. 우리나라의 주류 시장에는 우리나라와 무관한 온갖 술이 전 세계로부터 들어와 있었다. 이종기 대표는 우리 농산물을 원료로 국산 세계 명주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오미자였다. 황홀하고 신비로운 색과 맛을 자랑하는 오미자를 최신 양조기술로 재해석했다.
오미나라에서 생산하는 각종 와인과 증류주. |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오미자 와인은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만찬주와 건배주로 쓰였다.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2013년 세계조정선수권대회, 2014년 ITU 전권회의, 2015년 세계군인체육대회, 2015년 세계물포럼,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2022년 5월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정상회의, 2023년 1월 다보스포럼 한국인의 밤 등 오미자 와인의 행보는 화려했다.
지름 약 1㎝의 작은 열매 오미자(五味子)는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하여 이름 붙은 천혜의 과일이다. 소화 촉진과 피로 해소, 성 기능 개선에 좋을 뿐만 아니라 뇌졸중, 고혈압, 당뇨, 노화를 예방하는 데 뛰어나 선조 때부터 최상의 약재로 쓰였다. 오미나라는 오랜 노력으로 까다로운 오미자 발효에 성공해 대중이 오미자를 와인으로 즐길 수 있도록 주류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오미나라에 방문하면 와이너리 투어 및 테이스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와인 발효실, 증류실, 숙성실 등을 순차적으로 관람한 뒤 와인 시음으로 이어진다. 체험비는 인당 1만원이며 40∼50분 정도 소요된다. 나만의 기념주 만들기는 인당 3만원이다.
글ㆍ사진=장보영 여행작가
[진주진맥브루어리] 수제 맥주와 야시장의 낭만
진주진맥브루어리에서 LP 감상과 함깨 하는 맥주 한잔 |
진주진맥브루어리는 맥주 마니아들은 물론 여행객들에게 진주 명소로 떠올랐다. 진맥은 진주 한가운데를 흐르는 1급수 남강과 진주 땅에서 자라는 앉은키밀을 주원료로 만든 고급 수제 맥주다. 진주밀로 만든 맥주, 풍미가 진한 맥주, 진짜 맥주라는 이름처럼 맥주 마니아들의 취향을 단숨에 사로잡고 있다.
진주진맥브루어리는 올해 4월에 문을 열었지만, 4월이지만 본격적인 개발은 2021년부터 시작됐다. 진주시상권르네상스사업의 하나로 개발한 특화상품이다. 20여 곳 이상의 업체가 참여해 6000여 명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쳤다.
진맥의 주원료인 진주밀은 다른 밀보다 키가 작다. 그래서 ‘앉은키밀’이라 불린다. 웬만한 바람에도 잘 쓰러지지 않고, 병충해에 강하다. 그래서 수확률이 높은 것은 물론 일반 밀가루에 비해 부드럽고, 맛이 구수하다.
앉은키밀은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전세계가 기아에 헤매던 1945년, 미국 농학자인 노먼 볼로그 박사가 한국 토종 밀인 앉은키밀을 발견하고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지역에 전파해 세계 기아 해결에 이바지했다.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때 앉은키밀은 수입밀에 밀려 명맥이 사라질뻔했으나 진주 금곡정미소에서 3대를 이어 도정을 해 오고 있었고, 우리밀 살리기 운동과 함께 되살아났다. 지금은 금곡면을 비롯해 진주에서 드넓은 밀밭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진주논개시장 입구에 자리한 진주진맥브루어리는 건물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다. 오래된 폐가구점을 리모델링했다. 붉은빛에 가까운 외벽은 잘 익은 앉은키밀의 색깔이라고 한다. 1층은 수제 양조장과 맥주 펍 그리고 굿즈샵이 있고, 2층은 맥주 펍과 아카이브 공간, 3층은 진주시상권활성화재단과 교육장이다. 1층 양조장은 커다란 통창 안으로 맥주 만드는 장면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가구점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앉은키밀의 불그스름한 색은 내부 인테리어에도 이어진다. 주황과 붉은빛 그 사이 앉은키밀 색은 검은색 의자와 가구들과 어우러져 고급스럽고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2층은 LP와 턴테이블이 주르륵 놓여 있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 헤드폰과 멋진 조명까지 연출해 놓았다. 원하는 LP를 고른 다음 헤드폰을 끼고 맥주를 마시는 로망을 실현하게 해 준다.
맥주는 두 종류다. 밀의 고소함과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있는 에일과 시원함과 청량감을 자랑하는 라거다. 첫 모금에 밀의 구수함과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목 넘김은 부드럽고 뒷맛은 깔끔하다. 깊은 풍미와 바디감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청량함이 정말 매력적이다. 지금은 두 가지를 선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호핑에일, 페일에일, 스타우드 등 5종의 라인업으로 손님을 맞을 예정이다. 진주진맥브루어리 애호가들의 관심이 벌써 뜨겁다.
맥주와 어울리는 특별한 메뉴들도 준비되어 있다. 나초&살사소스, 트러플 프라이즈는 깔끔한 라거와 잘 어울리고, 진주 토마토 라구파스타와 진주 토마토 카프레제는 진한 에일과 찰떡궁합이다. 모양도 예뻐서 메뉴가 나오면 너도나도 휴대폰으로 사진 찍기 바쁘다.
진주진맥브루어리 수달이 그려진 맥주잔 |
집에서나 밖에서 진맥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캔맥주와 페트병 맥주를 판매한다. 캔에 그려진 수달은 진주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진주 남강에 사는 천연기념물 수달이 주인공이다.
진주진맥브루어리가 자리 잡은 논개시장에서는 토요일마다 올빰토요야시장이 열린다. 진주하면 생각나는 육전부터 삼겹말이, 납작만두, 해물부추전, 대왕고기완자, 스테이크새우꼬치까지 먹거리 천국이다. 야시장 입구 양쪽에 테이블이 놓여 있어서 구매한 음식을 식기 전에 맛볼 수 있다.
평소 진주진맥브루어리는 외부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지만, 토요일 야시장 음식은 대환영이다. 진주진맥브루어리에서 판매하는 캔맥주와 페트병 맥주를 사 들고 야시장에서 즐겨도 좋다. 진주의 토요일 밤이 낭만으로 익어가는 이유다.
글ㆍ사진=유은영 여행작가
[해남 해창주조장] 막걸리에 관한 명품적 사고
해창주조장에서 밪는 해창막걸리 18도ㆍ12도ㆍ9도 |
전통주 막걸리로 소문난 해창주조장은 해남의 가을 여행지 가운데 한곳으로 떠올랐다.이다. 막걸리에 제철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천고마비의 계절에는 왠지 모르게 그 달큰한 맛이 간절하다. 그러니 해창주조장의 고두밥 짓는 냄새는 가을이 익어가는 여정의 일부다.
해창주조장은 1927년 일본인 시바타 히코헤이가 문을 열었다. 미곡 창고를 짓고 주조장을 운영했다. 삼산천을 따라 바다 건너 일본까지 뱃길이 열리던 시절이다. 광복 후에는 삼호초등학교 설립자 장남문 씨가, 그 이후에는 다시 황의권 씨가 맡아 약 30년 가까이 운영했다. 현재는 오병인 씨가 주조장의 명맥을 잇고 있다. 여행을 좋아해 국내 곳곳을 다니다 해창주조장을 알았고 막걸리 맛에 반했다. 서울까지 배달해 먹을 만큼 골수 단골이었다. 2007년 이전 주인 황의권 씨의 제안으로 인수했다.
오병인 씨가 맡으면서 해창주조장은 변신했다. 그는 주조의 대가를 찾아다니며 막걸리 제조법을 배웠다. 지금은 고가의 명품 막걸리로 유명하다. 해창막걸리는 시중 막걸리와 달리 9도, 12도 등이 대표 상품이다. 발효시간이 길고 추가적인 공정이 들어가 가격 또한 각각 8000원, 1만2000원에 이른다. 얼마 전 추석 명절에는 18도 막걸리가 인기였다. 해창 18도는 설과 추석 그리고 가정의 달(5월 전후), 연말(12월)에만 한정 판매한다. 양조장 출하가격이 11만원(시중 약 13만5000원)이지만 선물용으로 인기다. 지난 2022년 출시했던 ‘해창아폴로’는 가격이 무려 110만원이었다. 도예가가 빚은 막걸리병에 24K 금 한 돈으로 ‘해창’ 글씨를 새긴 상품이었다. 발효만 90일이 걸렸다.
일년에 네 차례 한정 판매하는 해창 18도 |
전통주는 발효 단계는 한 번만 담가 완성하는 단양주, 첫 발효로 만든 밑술에 다음 단계로 덧술 과정을 추가하면서 그 횟수에 따라 이양주, 삼양주, 사양주 등으로 구분한다. 발효 단계가 많을수록 고급술로 평가하는데 해창 9도와 12도는 삼양주고 18도는 사양주다. 이에 관한 오 대표의 철학은 확고하다. 보통 와인은 1만∼2만원이면 저가인데 막걸리는 1만∼2만원이면 고가라 여긴다. 왜 우리 막걸리는 와인처럼 팔 수 없는 것일까? 그가 명품 막걸리를 세상에 내놓은 이유다. 우리 술에도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창주조장의 막걸리는 그 맛을 빚는 재료 또한 남다르다. 해남에서 재배한 유기농 찹쌀에 멥쌀을 일부 섞어 만든다. 찹쌀과 멥쌀의 비율은 8:2. 특히 찹쌀은 오 대표가 오랜 연구 끝에 찾은 답이다. 본연의 은은한 단맛이 있어 인공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감칠맛이 난다. 그 맛은 애주가들이 먼저 알아챘다. ‘식객’의 허영만 만화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등이 해창막걸리의 팬이다. 특히 정용진 회장은 자신의 SNS에 ‘인생막걸리’라고 해시태그(#)를 달기도 했다.
해창주조장의 매력은 또 있다. 공간의 요소들이 주조장의 역사를 대변한다. 주조장 내에는 일본식 가옥의 외형을 간직한 살림집과 정원이 반긴다. 살림집 뒤편 정원은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둘러 볼 수 있다.
40여 종의 수목이 약 2500여㎡의 정원을 가득 채우는데 작은 우주다. 가장 오랜 배롱나무는 수령이 무려 약 700년에 달한다. 만개하는 시절은 정원만으로도 일부러 찾을 이유가 된다. 여름 지나 가을에 다다라서는 단풍나무나 벚나무 등이 울긋불긋 가을빛을 내민다. 정원의 연못가에서 막걸릿잔을 기울이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다. 물론 운전대를 잡았다면 참았다가 집으로 돌아가 맛볼 일이다.
입구 마당의 롤스로이스 차량도 눈여겨볼 일이다. 오 대표의 자가용으로 서울 등을 오갈 때 종종 타는 차다. 명품 막걸리에 대한 오 대표의 고집과 집념을 드러내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데 그래서 해창 18도의 이름이 한때는 ‘해창 롤스로이스’였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지만, 라벨에는 허영만 만화가가 그린 롤스로이스 그림이 자부심처럼 남아 있다.
지난달에는 해창 10도 플러스를 새로이 출시했다. 막걸리를 잇는 증류주도 한창 연구 중이다. 해창막걸리는 일부 온라인몰이나 대형마트 외에 해창주조장 현장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글ㆍ사진=박상준 여행작가
정리=김정석 기자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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