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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강남의 심장을 되찾다] ① ‘아파트=고급주거지’ 인식 전환… ‘프리미엄 단지’ 신기원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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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8-24 05:00:11   폰트크기 변경      

[글 싣는 순서]

① 압구정 현대, 부촌의 출발점이 되다

② ‘힐스테이트’거쳐 ‘디에이치’로 재도약 하다

③ 한강변 디에이치 벨트를 완성하다

④ 디에이치, 상품으로 가치를 증명하다

⑤ 다시 압구정으로 화려하게 귀환하다


그래픽 : 대한경제, 압구정3구역. / 사진 : 현대건설 제공 



산업화·도시화에 주택난 심화

정부, 주택공급·도시 확장 나서

영동지구 개발로 강남지역 부상


1975년 압구정 현대 건설 착수

6000여가구 주거브랜드 완성

최고 15층·녹지 공간 등 ‘눈길’


고층화 속 개방감·일조·조망 확보

단지 내 학교·상가·공원 등 배치

하나의 작은 도시처럼 설계해


강남 개발 선도… 급성장 이뤄

주거문화의 새로운 기준 제시

‘압구정 현대’의 상징성 구축


[대한경제=한형용 기자] 아파트는 원래 ‘서민형 공동주택’이었다. 그 통념을 깬 첫 단지가,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이름이 됐다. 압구정 현대는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결정적 전환점이다. 아파트도 고급 주거가 될 수 있고, 자산가치와 생활양식을 동시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증명한 단지였다. 그 중심에 현대건설이 있었다.


1970~1990년대만 해도 ‘건설은 현대’라는 말이 자연스러웠다. 도로와 항만, 교량과 댐, 산업시설과 초고층 건축물까지 대한민국 산업화의 현장마다 현대건설의 이름이 있었다. 아파트 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시절 ‘현대아파트’라는 이름은 단순한 시공사 표기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집, 앞선 집, 누구나 선망하는 집이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 상징의 정점에는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있었다.


미개발지에서 태어난 신화


오늘날 압구정은 대한민국 최고 부촌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압구정 일대는 지금과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한강 이남은 아직 개발의 초입에 있었고, 압구정동 역시 도시의 중심이라기보다 서울 확장의 가능성을 품은 미개발지에 가까웠다. 전후 서울의 중심은 여전히 강북이었고, 행정과 상업, 교육과 문화도 강북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서울은 심각한 주택난에 직면했다. 인구는 급격히 늘었고 핵가족화는 주택 수요를 더욱 키웠다. 정부는 대규모 주택 공급과 도시 확장을 동시에 추진했고, 여의도와 영동, 잠실 등 한강변 일대가 새로운 주거지로 떠올랐다. 특히 영동지구 개발은 강남을 서울의 새로운 중심으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압구정 현대는 바로 그 전환의 한복판에서 태어났다. 현대건설은 1975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건설에 착수해 1987년까지 단계적으로 단지를 조성했고, 6000여 가구에 이르는 거대한 주거 브랜드를 완성했다. 최고 15층 규모의 고층 아파트, 넓은 동간 거리와 녹지공간, 학교와 상가를 품은 독립 생활권은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웠다.


주거문화의 新 트렌드를 구축하다


압구정 현대가 특별했던 이유는 규모만이 아니다. 당시 많은 사람에게 아파트는 아직 ‘서민형 공동주택’ 또는 ‘고밀도 주거’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압구정 현대는 처음부터 고급 주거지를 지향했다. 대규모 공급이면서도 쾌적성을 포기하지 않았고, 고층화하면서도 개방감과 일조, 조망을 고려했다. 단지 안에 학교와 상가, 공원, 생활편의시설을 배치해 하나의 작은 도시처럼 작동하도록 설계했다. 이후 대형 아파트 단지의 기본 요소가 된 커뮤니티, 조경, 보행 중심 동선, 단지 내 생활 편의시설의 원형이 이미 압구정 현대 안에 담겨 있다.


특히 현대건설의 기술력과 설계 역량은 압구정 현대의 위상을 끌어올린 핵심 요소였다. 전 가구를 중대형 중심으로 구성하고 초대형 면적을 선보인 점, 넓은 실내 공간과 발코니, 황토색 계열의 외벽, 단순하지만 쉽게 질리지 않는 외관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낡지 않는 미감을 만들었다. 동간 거리를 넉넉히 두고 녹지를 확보한 배치는 지금 봐도 ‘쾌적한 대단지’의 기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차량과 보행 동선을 분리하고, 중앙 녹지축과 공원, 산책로를 배치한 단지 설계 역시 당시 국내 아파트에서는 보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단지 안에서 아이가 학교에 가고, 주민이 상가를 이용하고, 이웃이 녹지공간에서 만나는 구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생활권이었다. 압구정 현대는 주택을 넘어 생활권을 설계한 단지였다.


고급 주거의 상징, 찾아온 변곡점


압구정 현대의 등장은 강남 개발의 흐름도 바꿨다.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개통, 강남 개발 정책, 명문고 이전 등이 맞물리며 강남은 빠르게 성장했다. 여기에 압구정 현대라는 최고급 대단지가 들어서면서 강남은 단순한 ‘신흥 주거지’가 아니라 ‘선망의 거주지’로 부상했다. 압구정 현대를 중심으로 전문직과 기업인, 고소득층이 모여들었고, 이후 압구정 로데오거리와 갤러리아백화점, 청담동 명품거리로 이어지는 소비문화도 이 지역의 이미지를 강화했다. 압구정은 어느새 주소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그곳에 산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적 지위와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에 현대건설이 있었다. 현대건설은 압구정 현대를 통해 단순한 시공사를 넘어 주거문화의 설계자, 도시의 방향과 생활의 기준을 제시하는 회사로 자리 잡았다. 압구정 현대가 ‘현대아파트’라는 이름을 프리미엄의 기준으로 끌어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압구정 현대의 역사가 밝은 빛으로만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분양가 논란과 특혜분양 파문 등 사회적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논란마저 압구정 현대가 얼마나 강력한 사회적 상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압구정 현대는 단순한 주택 상품이 아니라 부와 권력, 교육과 문화, 욕망과 계층 이동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시장의 기준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건설산업 전반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아파트 시장 역시 건설사 이름만으로 평가받던 시대를 지나 개별 브랜드와 상품 경쟁력이 중시되는 시대로 넘어갔다. 압구정 현대가 만들어낸 ‘현대아파트’의 영광은 여전히 강력했지만, 그 유산만으로 다음 세대의 강남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과연 현대건설은 ‘압구정 현대’가 세운 고급 주거의 기준을 새로운 시대의 언어로 이어갈 수 있을까. ‘압구정 현대’의 영광은 그렇게 현대건설에 가장 빛나는 유산이자, 언젠가 다시 넘어야 할 가장 높은 기준으로 남게 됐다. 현대건설은 그 질문 앞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한형용 기자 je8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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