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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유의 지배 — 경작지 10%로 생산량 40%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ㆍ거래ㆍ소비되는 식물성 유지는 팜유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식물성 기름 총 생산량 중 팜유는 약 7900만 톤으로 압도적 1위다. 대두유(약 5800만 톤)가 그 뒤를 잇는다. 팜유가 이런 지위를 갖는 비결은 단위면적당 생산성에 있다. 1헥타르에서 연간 4톤 이상의 기름이 생산되는데, 이는 대두유(0.39톤)의 10배가 넘는다. 전체 식물성 기름 경작지의 10%로 생산량의 40%를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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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유는 상온에서 반고체 형태를 유지한다. 라면 면발을 굳히고, 과자의 바삭한 식감을 만들어내며, 화장품의 질감을 조절하는 것이 팜유다. 라면 한 봉지, 비스킷 한 조각 안에 이미 팜유가 들어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약 83%를 차지한다. 그 중 인도네시아가 2010년대를 기점으로 말레이시아를 앞질러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식용유 시장에서 팜유의 영향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이벤트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서 명확히 드러났다. 말레이시아 팜 농장 노동력의 80% 이상이 외국인 노동자인데, 국경 봉쇄로 이들이 입국하지 못하자 수확량이 급감했다. 인도네시아는 2022년 4월 팜유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약 4주였지만 그 충격은 전 유종으로 번졌다. 팜유가 흔들리자 대두유ㆍ채종유ㆍ해바라기유가 연쇄 폭등했다. 팜유는 가격의 바닥이자 시장의 기준점이다. 팜유 시세를 모르고는 어떤 식용유도 제대로 살 수 없다.
▲EUDR의 충격 … 규제가 공급망을 다시 짠다
두 번째 변수는 규제다. 2023년 EU가 제정한 산림벌채규정(EUDR, EU Deforestation Regulation)은 △팜유 △대두 △소고기 △목재 △코코아 △커피 등 7개 품목의 EU 수출입에 대해 산림 파괴 연루 여부를 추적·증명하도록 의무화했다. 시행 시점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면서 두 차례 연기 끝에 대기업ㆍ중기업 기준 2026년 12월 30일 시행으로 확정됐다.
이 규정의 파급력은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선다. 팜유 한 통을 EU에 수출하려면 그 팜유가 어느 농장, 어느 위치의 토지에서 생산됐는지를 GPS 좌표 단위로 소명해야 한다. 수십만 소농이 공급망에 얽혀 있는 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로서는 사실상 무역장벽이다. 브라질 세하도(Cerrado) 지역에서 생산한 대두는 아마존 산림 파괴와 무관하더라도 추적이 어렵다는 이유로 수출이 제한될 수 있다.
한국 기업은 EU 수출 기업이 아니더라도 이 규제를 피해갈 수 없다. 글로벌 공급망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EU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팜유는 유럽 시장에서 밀려나 아시아 시장으로 몰린다.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내려갈 수 있지만, 동시에 ‘지속가능 인증(RSPO)’ 팜유와 비인증 팜유 간의 가격 양극화도 심해진다. ESG 경영을 선언한 한국 대기업들은 RSPO 인증 팜유를 써야 한다는 내부 압박을 받고 있다. 같은 팜유인데 인증 여부에 따라 단가가 달라지는 시대가 됐다. 구매 기준 자체를 다시 써야 한다.
▲4파전의 재편 …대두유ㆍ채종유ㆍ올리브유의 현주소
팜유의 지배와 규제의 역습 사이에서 나머지 유종들도 자기 자리를 찾고 있다.
대두유는 팜유에 이은 세계 2위 식물성 유지이지만, 미중 무역전쟁과 브라질 바이오디젤 정책으로 수급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가 SAF(지속가능 항공유) 생산에 대두유를 활용하는 HEFA 경로에 세액공제를 제공하면서, 대두유의 일부가 식품용에서 에너지용으로 이동하고 있다. 식품용 대두유 공급이 구조적으로 줄어드는 방향이다.
채종유(카놀라유)는 세계 3위 식용유로 자리를 굳혔다. 캐나다가 1978년 에루크산 문제를 해결한 신품종으로 개발한 이 기름은 중립적인 향, 높은 발연점, 우호적인 지방산 구성으로 범용 식용유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바이오디젤 원료로도 핵심 위상을 차지하고 있어, 식품용과 에너지용 수요가 충돌하는 구조다.
올리브는 기본적으로 가뭄에 잘 버티는 식물이지만 2022~2024년 스페인·이탈리아의 극심한 가뭄을 버티지 못하고 생산량이 반 토막 났다. 5000년 역사의 이 기름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아 엑스트라 버진(Extra Virgin) 가격이 두 배 이상 급등하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중해 기후의 변화가 올리브유 공급 구조를 영구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한국의 올리브유 수입 구조도 스페인 편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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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종류의 기름이 각기 다른 지정학ㆍ기후ㆍ규제 변수를 안고 동시에 움직인다. 어느 한 유종의 공급이 끊기면 다른 유종으로 수요가 쏠리고, 그 연쇄가 전체 유지 시장을 흔든다. 유지 구매는 이제 단일 품목 관리가 아니라 포트폴리오 전략이다.
한국 기업의 유지 조달 전략은 지금 세 가지 압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 팜유의 공급 불안, EU발 지속가능성 기준의 국내 전이,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산지별 생산 변동성 확대. 가장 싼 기름을 사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지속가능하고 추적 가능한 기름을 적정 가격에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유지 구매의 새로운 정의다.
▶다음 회 예고 : ⑤ 한국 식용유 시장의 미래
‘식용유=대두유’ 일변도에서 어떻게 바뀌었고, 건강유 트렌드ㆍ바이오디젤 수요ㆍ프리미엄화가 만드는 새로운 수급 방정식을 짚는다.
본 기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기업의 공식 입장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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