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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의 구매전쟁] ⑥ 바이오 공장의 숨은 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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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5-15 06:00:15   폰트크기 변경      
잘 보이지 않는 원료가 공급망을 멈춘다

소비자는 제품의 성분표를 읽지만, 그 성분을 만드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는 묻지 않는다. 음료에 들어간 구연산, 사료에 섞인 라이신, 의약품의 전구체. 이것들이 발효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발효 공정이 돌아가려면 미생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 적다.

발효조를 세척하는 가성소다, pH를 조절하는 염산, 미생물에게 질소를 공급하는 암모니아, 촉매 공정에 쓰이는 황산. 이 네 가지 화학물질이 없으면 세계 최대 발효 공장도 멈춘다. 가장 중요한 원료는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연산품의 역설 — 염산과 가성소다는 함께 태어난다
화학 원료 구매에서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구조가 있다. 염산(HCl)과 가성소다(NaOH)는 함께 만들어진다. 소금물(NaCl)을 전기분해하면 염소(Cl₂)와 수산화나트륨(NaOH)이 동시에 생산되고, 염소를 수소와 결합시키면 염산이 된다. 한 공정에서 두 제품이 나오는 연산품(聯産品) 구조다.

이 구조가 구매를 복잡하게 만드는 이유가 있다. 염산 수요가 늘어도 가성소다 생산을 줄일 수 없고, 가성소다 수요가 급증하면 염산 공급도 자동으로 과잉이 된다. 두 제품의 수요가 항상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쪽이 과잉 공급되면 가격이 폭락하고 다른 쪽은 수급이 타이트해진다. 시장을 시소(Seesaw)처럼 읽어야 하는 이유다.

발효 산업에서 염산은 발효조·배관·열교환기의 세척과 살균에 필수적이다. 발효 후 생성물을 분리·정제하는 이온교환 공정에도 대량으로 소비된다. 가성소다는 pH 조절과 중화 공정에 쓰인다. 바이오 공장이 커질수록 염산과 가성소다의 소비량도 함께 커진다. 그런데 이 두 원료의 글로벌 공급 구조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중국발 공급 충격 — 환경 규제가 화학 지도를 바꾼다
글로벌 염산·가성소다 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세계 염소-알칼리(Chlor-Alkali) 생산능력의 45~50%가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 2015년 이후 중국 정부가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이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의 소규모 화학 공장들이 환경 기준 미달로 줄줄이 폐쇄됐다. 2021년 중국의 전력 부족 사태는 전력 집약적인 전기분해 공정에 직격탄이 됐다. 일부 지역에서 가성소다 생산이 20~30% 급감했고, 가격은 수주 만에 급등했다. 한국의 바이오·화학 기업들이 체감한 충격은 상당했다. 원료가 없어서 공장 가동률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 현실이 됐다.

암모니아(NH₃)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안고 있다. 암모니아는 하버-보슈 공정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공정의 원료가 천연가스다. 2022년 러우전쟁으로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유럽의 암모니아 공장 상당수가 가동을 멈췄다. 암모니아를 원료로 하는 질소비료 생산도 급감했고, 그 충격이 농업→식량→바이오 원료 전체로 파급됐다. 에너지 위기가 화학 원료 위기로, 화학 원료 위기가 식량 위기로 연결되는 구조다. 공급망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경로로 무너진다.

황산(H₂SO₄)은 바이오 발효보다 배터리·반도체 산업에서 더 주목받고 있지만, 발효 공정의 전처리와 정제 단계에서도 빠뜨릴 수 없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 급증으로 황산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면서, 바이오 산업과 배터리 산업이 같은 원료를 놓고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황산 원료인 황(Sulfur)의 공급이 타이트해지면 발효 산업의 원가 구조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아래 차트는 2019~2025년 4대 화학 원료의 국제 가격 추이를 보여준다. 2021년 중국 전력 부족과 2022년 러우전쟁이라는 두 번의 충격이 전 원료 가격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선물시장이 없는 화학 원료에서 이런 충격은 정교한 헤징(hedging)이 불가능하다. 가격 급등의 파고를 회피할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다.


▲보이지 않는 원료를 관리하는 법

화학 원료 구매는 곡물이나 유지와 다른 특성을 가진다. 선물시장이 없다. 헤징 수단이 제한적이다. 공급사가 소수의 대형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집중되어 있다. 글로벌 메이저와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 같은 국내 대형사가 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구조에서 구매의 핵심은 가격 협상보다 관계 관리다. 공급 부족 시 누가 먼저 물량을 배정받느냐는 평소에 쌓아온 파트너십이 결정한다. 장기 계약이 단기 스팟 구매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다. 필자가 현직에서 경험한 것 중 하나도 이것이다. 공급 대란 상황에서 장기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온 공급사는 끝까지 물량을 지켜줬다. 반면 가격만 보고 공급사를 바꿔온 기업들은 위기 시 가장 먼저 배정에서 밀렸다.


첫째. 대체 원료와 공정 유연성을 사전에 확보해야 한다.

염산 공급이 타이트할 때 일부 공정에서 황산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가성소다 대신 탄산소다(Na₂CO₃)를 일부 적용할 수 있는지를 사전에 연구개발 부서와 함께 검토해두는 것이 위기 대응의 속도를 결정한다. 구매는 원료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공정의 유연성을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둘째. 암모니아는 천연가스 시장을 함께 읽어야 한다.

암모니아 가격은 천연가스 가격과 직결된다. 유럽·중동의 천연가스 동향이 암모니아 공급과 가격을 좌우한다. 선물시장은 없지만, 천연가스 가격 지표(TTF, Henry Hub)를 구매 의사결정의 선행 지표로 활용하거나 미국 같은 경우는 각 지역별 basis 가격과 연계해서 스왑(swap) 거래로 헤징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지정학 리스크가 에너지 가격에 반영되는 속도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핵심이다.

셋째. 단위 기준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미국 국내 화학 원료 시세는 short ton(2,000 lbs) 기준으로 발표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글로벌 기준인 metric ton(2,204.6 lbs)과 무려 10.2% 차이가 난다. 계약서에는 반드시 ‘USD per metric ton’또는 ‘USD per short ton’을 명시해야 한다. 단위 혼용은 실제 구매 현장에서 상당한 규모의 가격 착오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원료는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중국 환경 규제, 에너지 전환, 지정학 리스크가 동시에 화학 원료 공급망을 흔드는 지금, 그 보이지 않는 곳을 들여다보는 것이 구매의 일이다. 보이지 않는 원료가 멈추면 공장이 멈추고, 공장이 멈추면 제품이 사라진다. 구매의 시야는 성분표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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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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