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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마음의창
[마음의 창] 그녀의 안식년
“잘 있나? 나 따로 나와서 혼자 살고 있어. 한 번 와.”전화기 너머로 오랜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많이 들떠 있었다. 할 일은 많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게 서성거리던 나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 가르쳐 주는 대로 길을 나섰다. 조용하지만 없는 ...
2022-11-04
[마음의 창] 슬픔의 얼굴
여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공장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으라는 말을 듣고서다. 누가 직장번호로 전화한 경우가 없었으니까. 휴대전화는 무음 상태였는데 알고 보니 남편의 전화였다. 남편의 다급한 몇 마디에 여인은 하늘이 노래졌다. 몸을 추슬러 뛰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
2022-11-03
[마음의 창] 글자로 국화꽃을 엮어
얼마 전 사촌 언니가 죽었다는 비보를 들었다. 사촌 동생이 결혼한다는 소식도 함께 들었다. 두 사람의 모친은 내 엄마의 언니들이다. 자매지간에 한 사람은 딸을 하늘로 보내야 하고 한 사람은 딸을 결혼시키게 되었다. 서로 애도를 전하기에도 축하를 건네기에도 마음이 녹록지 ...
2022-11-02
[마음의 창] 가을 책 30쪽을 읽다
가을이 되자 나무들이 바빠졌다. 한 해의 삶이 막바지에 달한 나무는 잎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나무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준비하는 게 단풍이다. 낙엽이 흩날리는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거기에는 나무의 치열한 삶이 숨어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터를 잡은 집들도 새 ...
2022-11-01
[마음의 창] 타산지석(他山之石)
내려야 할 역 안내방송에 맞춰 어깨에 멘 가방을 추스르는데 고함이 터져 나왔다. “새파랗게 젊은 것이 경로석에 딱 앉아 가지고.” 고개를 돌려보니, 경로석에서 일어서는 아주머니 뒤통수에 대고 할아버지가 다짜고짜 큰소리로 나무라는 중이었다. 아주머니는 그 소리가 자기 ...
2022-10-31
[마음의 창] 우정의 작대기
언제 어느 곳에 누구와 합류해도 그 결에 잘 스며드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된 관계처럼 금방 편안하고 익숙하여 쉽게 경계를 무너뜨린다. 사실 나도 사람들을 참 좋아한다. 생각보다 소심하여 일부러 찾아다니거나 무조건 엎어지진 않지만 마음이 맞거나 뜻이 같은 이들을 만나면 ...
2022-10-28
[마음의 창] 먼 곳에의 그리움
궁리 끝에 내쳐 바라보기로 했다. 봄에 지인이 집으로 보내온 호접란(蘭)이다. 거실 탁자에 올려놓고 우정에 보답도 할 겸 틈나는 대로 바라보며 눈정을 나누곤 한다. 꽃차례가 가지런하고 꽃숭어리가 수련하여 완상하는 눈맛이 소쇄하기 그지없다. 다가오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
2022-10-27
[마음의 창] 모르고 싶은 마음
아버지는 큰 덩치만큼 목소리가 낮고 굵었다. 마치 동굴 속에서 울리는 말소리처럼 들렸다. 최근에는 말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허스키해졌다. 말소리가 동굴에 갇혀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도 힘들고 전화통화도 어렵게 된 아버지는 의사를 찾아갔다. 몇 가지 ...
2022-10-26
[마음의 창] 노래하는 여인
또 그 노랫소리다. 소리는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들려온다.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수 없다. 가곡 같기도, 찬송가 같기도 하다. 고음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걸 보니 어설픈 솜씨 같지는 않다. 궁금하다. 대체 어떤 사람이 무슨 이유로 저렇게 산에서 노래를 부를까. 그것도 이 ...
2022-10-25
[마음의 창] 할아버지, 공부는 왜 해요?
조그만 책상 위에 빈칸을 메우지 않은 학습지가 여러 장이다. 숙제를 다 하면 스마트폰을 보게 해 주겠다고 꼬드겼다. 쌍둥이는 할아버지가 추어주는 맛에 까르르 웃어가며 밀린 학습지 일고여덟 장을 금방 메꾸었다. 약속대로 스마트폰을 건네주고 책상을 정리하고 있으려니까 ...
2022-10-24
[마음의 창]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통행인구가 많은 사거리 큰 건물 옆으로 긴 화단이 있다. 화단에는 등이 휜 커다란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고 그 사이로 작고 흰 꽃을 피우는 들풀들이 가을빛으로 바래지고 있다. ‘경기용 급매 4만원 010-’이라고 적힌 종이를 단 자전거 한 대가 화단 철책과 소나무에 ...
2022-10-21
[마음의 창] 꽃집 남자
일상에서 스치는 사람들을 대하며 여러 상념에 젖곤 한다. 앞모습에서 그 사람의 이미지가 잡히지 않으면 뒷모습을 보고 짐작한다. 저 사내는 차돌같이 단단하나 막상 망치를 들이대면 쉬 깨지겠군, 이 여인은 겉은 화사하지만 속은 얼룩이 져 있네, 저 노인네는 겉은 곤핍해 보 ...
2022-10-20
[마음의 창] 애주가의 변명
도서관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선물을 받았다. 나를 섭외하신 사서 선생님께서 준비해 오신 와인이었다. 내가 애주가라는 것이 동네방네 소문 난 탓에 술 선물을 가끔 받는다. 애주가답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귀하신 몸 차에 실어왔다. 보름 만에 뚜껑을 열었다. ...
2022-10-19
[마음의 창] 첫사랑의 향기
그 나무를 발견한 건 여름 끝자락의 어느 날이었다. 비가 가늘게 내리고 있어 가볍게 산책이나 할까 싶어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공원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걷는데 물기를 머금고 반짝이는 열매가 있었다. 진초록의 이파리 속에서 매끈하게 빛나는 열매는 바로 모과였다. 거기 ...
2022-10-18
[마음의 창] 본드와 포스트잇
접착제는 한번 붙으면 떨어지지 않아야 성능이 좋다는 평판을 얻는다. 5초 본드 같은 순간접착제가 있는가 하면, 돌이나 쇠까지 붙이는 강력본드도 나왔다. 이러한 접착제의 속성을 뿌리치고 히트한 상품이 있다. 포스트잇은 붙기도 잘하지만, 언제든지 아무런 손상 없이 분리된다 ...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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