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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원의 모빌리티 오디세이]⑨ 유럽연합: 기술없이 판을 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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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3-25 10:00:24   폰트크기 변경      

4.5억명 시장 단일 승인이라는 제도적 우위
오픈소스ㆍ엔비디아ㆍ산업가속화법 삼중주


유럽연합(EU)에는 웨이모나 바이두처럼 자율주행 시장 헤게모니를 쥘 기업이 없고, 실증 규모도 미국이나 중국에 현저히 뒤처졌다. 이런 유럽이 가진 무기는 한 회원국에서 승인받은 자율주행차가 회원 27개국 전체에서 유효한 단일 승인 원칙이다. 미국이 50개 주의 패치워크 규제(분산 규제 체계)와 씨름하고, 중국이 도시별로 다른 인증 체계를 운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확실한 제도적 우위다.

기업이나 기술이 아닌, 제도와 표준으로 자율주행 시대 주도권을 잡겠다는 게 유럽의 전략이다. 여기에 오픈소스(소스코드를 공개해 누구나 활용ㆍ개선할 수 있는 방식) 소프트웨어 전략, 엔비디아와의 전략적 공생, 중국을 겨냥한 산업가속화법까지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한 번 승인으로 4.5억 시장에


유럽연합의 제도적 우위는 2022년 8월 발효된 ‘EU 시행규정 2022/1426’에서 출발한다. 레벨4(정해진 영역 안에서 완전 자율주행) 이상 자율주행차에 대한 세계 최초의 타입 승인(차량 모델 단위로 설계ㆍ안전 기준 적합 여부를 일괄 인증하는 제도) 규정이다. 자율주행차 제조사는 단 한 번의 절차로 4억5000만명 인구의 단일 시장에 즉시 진입할 수 있다.

상용화를 위한 단계적 로드맵도 명확하다. 2025년 자동 주차시스템 승인을 시작으로, 2026년에는 허브 간 화물 운송 승인이 확대된다. 같은 해 초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과 자율주행시스템(ADS)의 공공도로 테스트를 위한 EU 전역 조화 승인 절차가 제안될 예정이다.

이 제도가 글로벌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포니AI와 스텔란티스는 2025년 10월 룩셈부르크에서 공동 실증을 시작하고 2026년 유럽 전역 확대에 합의했으며, 바이두는 리프트와 협력해 2026년부터 독일과 영국에서 로보택시 배치를 예고했다. 진입 장벽 없는 단일 시장이 미국과 중국 기업 모두에게 매력적인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오픈소스로 디지털 주권을

제도만으론 부족하다. 유럽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반도체에서 미국ㆍ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게 목표다. 이런 의지를 반영한 기구가 2025년 9월 출범한 유럽 커넥티드ㆍ자율주행차 연합(ECAVA)이다.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직접 발표한 이 연합은 SDV(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자동차 하드웨어, AIㆍ데이터, 배치ㆍ테스트 4개 워킹그룹으로 운영된다.

효율과 자립을 동시에 추구하는 게 전략의 본질이다. 개별 제조사가 각자 플랫폼을 개발하는 비효율을 없애고, 공통 기반을 협력으로 만들어 비용을 줄이면서 표준화를 앞당긴다. 그 위에서 제조사는 차별화된 상위 기능을 독자 개발한다.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구조다.

소프트웨어의 핵심은 이클립스 S-CORE(Eclipse S-CORE)다. 자동차 산업 최초의 오픈소스 안전 미들웨어 플랫폼으로, 차량 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을 연결하는 공통 소프트웨어 스택(운영체제부터 응용프로그램까지 계층별로 쌓아 올린 소프트웨어 구조)을 공동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기능 안전(ISO 26262)과 사이버보안(ISO/SAE 21434) 표준을 준수하며, 2025년 11월 첫 공개 릴리스인 버전 0.5를 출시했다.


자동차용 오픈소스 안전 미들웨어가 실제 코드베이스(소프트웨어의 전체 소스코드 묶음)로 외부에 공개된 건 세계 최초다. 2026년 말 버전 1.0 완성, 2030년까지 생산 가능한 SDV 플랫폼 구축이 최종 목표다.

하드웨어에서는 RISC-V가 축이다. 라이선스 비용이 없는 오픈소스 프로세서 명령어 구조로, 기존 ARM 기반 대비 30~50%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자동차 특화 맞춤 설계가 가능하다. 유럽 반도체 자립도 향상의 핵심이다.



[ 유럽연합의 SDV 및 자율주행 주요 마일스톤 ]

일정 주요 마일스톤
2024~2025년 (기반 구축)
  • RISC-V 하드웨어 로드맵 발표(2024.2.16)
  • 산업 행동 계획 발표(2025.3.5)
  • FEDERATE SDV 로드맵 발표(2025.9.8)
  • 유럽 커넥티드 및 자율주행차 연합 출범(2025.9.12)
  • 자율주행 선도도시 발표(2026년 1분기 예상), 유럽 커넥티드 및 자율주행차 연합 첫 운영위원회 개최(2025.11.10)
  • Eclipse S-CORE MVP 출시(2025년 말)
2026~2027년 (실증 및 확장)
  • ADAS/ADS 공공도로 테스트 조화 승인 절차 제안(2026년 초)
  • 자동 주차 시스템 무제한 승인 및 허브 간 화물 운송 승인 확대(2026년)
  • Autonomous Drive Ambition Cities 출범(2026년 4분기)
  • 최소 3개 국경 간 테스트베드 운영 시작 및 유럽 커넥티드 및 자율주행차 연합 파일럿 시설 구축(2026~2027년)
  • Eclipse S-CORE v1.0 출시(2026년 말)
2030년 (완성 단계)
  • 생산 준비 완료된 SDV 플랫폼 구축
  • 유럽 차세대 모빌리티 분야 글로벌 선도자 자리매김
  • 레벨4/5 자율주행 상용 서비스 유럽연합 전역으로 확대


◆엔비디아 패러독스

유럽이 오픈소스 자립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긴밀하게 협력하는 상대가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2026년 초 영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웨이브와 옥사(Oxa)에 잇따라 투자했고, 2025년 한 해에만 유럽 14개 AI 기업에 55억달러(약 7조70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자사의 차량 탑재 AI 플랫폼(DRIVE), GPU 개발환경(CUDA), 시뮬레이션 플랫폼(Omniverse)이 해당 기업의 기술 기반으로 자리 잡는다. 상용화 단계에 이르면 엔비디아 칩의 고정 수요가 형성되는 구조다.

유럽의 공공 예산도 유인이다. EU는 ‘AI 대륙 행동계획’을 통해 5년간 2000억유로(약 321조원)를 투자하기로 했고, 미국의 대중국 AI 칩 수출 규제로 연간 500억달러(약 70조원) 규모의 중국 시장을 사실상 잃은 엔비디아에게 유럽은 확실한 대체 시장이다.

완성차ㆍ부품사와의 협력도 깊다.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하이페리온(자율주행 차량용 AI 컴퓨팅ㆍ센서 통합 플랫폼)에는 보쉬, ZF, 마그나, 콘티넨탈, 스텔란티스 등 유럽 주요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CES 2026에서 공개된 신형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는 드라이브 하이페리온에 레벨4 풀스택(인지ㆍ판단ㆍ제어 전 과정을 하나로 묶은 소프트웨어 패키지)을 탑재한 로보택시로 우버 네트워크와 연동된다.


‘엔비디아 GTC 2026’에서 기조연설하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사진: 엔비디아 제공

이 같은 엔비디아의 사업 확대 과정에서 유럽은 실리를 챙긴다. 단기적으로 엔비디아의 기술과 자본으로 격차를 메우되, 이클립스 S-CORE와 RISC-V로 소프트웨어ㆍ반도체 자립을 병행하고, 궁극적으로는 데이터 주권까지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이 전략의 법적 장치가 2026년 3월 유럽위원회가 유럽의회에 제안한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이다.

전략 분야에서 글로벌 생산 점유율 40% 이상을 보유한 국가의 기업에 엄격한 투자 조건을 부과해 사실상 중국 기업의 유럽 진입을 제한하는 한편, 유럽 도로에서 수집된 센서 데이터와 정밀 지도 데이터의 역외 전송도 제한한다.


다만 모든 외국 기업을 막는 건 아니다.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 당사국이어서 유럽 공공조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유지된다. 중국에는 빗장을 걸되 미국에는 문을 열어두는 구조다.

업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는 잘못 설계되면 차량 가격 상승과 시장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는 현지화 요건이 생산 비용을 높이고 무역 보복을 유발한다며 명확히 반대했다. 1~2년의 입법 과정을 거쳐 2027년 말에서 2028년 초 발효가 예상되는 이 법안이 유럽 자율주행 산업의 보호막이 될지, 또 다른 족쇄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장과 현실

제도와 전략이 갖춰졌다면 남은 것은 현장이다.

2026년부터 유럽연합은 최소 3개의 대규모 국경 간 자율주행 테스트베드를 구축한다. ‘유럽자율주행회랑’으로 명명된 이 테스트베드는 여러 회원국을 연결하는 실제 도로에서 규제 샌드박스(기존 규제를 일시 면제해 신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특례 공간)를 운영하며, 레벨4 화물 운송과 셔틀 서비스를 집중 실증한다.


선행 모델로 베넬룩스 3국이 2025년부터 국경 초월 자율주행 화물 운송 파일럿을 추진 중이다. 2026년 4분기에는 자율주행 선도도시(Autonomous Drive Ambition Cities) 이니셔티브도 공식 출범해 유럽 전역의 서비스 배치를 가속할 예정이다.

예산도 뒷받침된다. 호라이즌 유럽(EU의 연구ㆍ혁신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2025~2027년 자동차 부문에 10억유로(약 1조5000억원)가 배정됐으며, 커넥티드ㆍ자율주행차 연합 운영과 인력 양성에도 별도 예산이 투입된다.

이처럼 자율주행 전략을 빈틈없이 설계한 유럽이지만, 가야 할 길은 멀다. 웨이모가 주간 45만건의 유상 운송을 처리하고 중국에서 3100대 넘는 로보택시가 돌아가는 동안, 유럽의 실증은 아직 파일럿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시장을 주도하는 독보적 기업도 없다. 단일 승인이라는 제도적 우위가 글로벌 기업에도 동등한 진입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유럽 기업만의 이점이 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2035년까지 4000억유로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에서 유럽연합은 완전 차단도, 무조건 개방도 아닌 제3의 길을 걷고 있다. 규제 리더십을 규모의 리더십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가 유럽 자율주행 산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 유럽연합 프레임워크 안에서 독자적 자율주행 국가전략을 추진하는 독일을 살펴본다. 세계 최초 레벨4 법제화부터 함부르크의 1만대 블루프린트까지 — 유럽 자율주행의 최전선이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시내에서 자율주행 로봇택시 ‘조옥스(Zoox)’가 이동하고 있다./사진: 연합



■ 모빌리티 오디세이

세계는 그야말로 로보택시 전쟁터다. 〈대한경제〉가 창간 62주년을 맞아 국내 대표 자율주행 전문가인 차두원 퓨처링크 대표이사와 함께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 독일, 영국, 두바이, 그리고 한국까지 — 7개국의 전략을 심층 해부하고, 한국이 ‘글로벌 자율주행 3대 강국’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모색한다.

차두원 퓨처링크 대표는 현대모비스, 현대차, 포티투닷,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에서 자율주행 R&D와 정책 수립을 경험했다. 저서로 《잡킬러》, 《이동의 미래》, 《포스트 모빌리티》 등이 있다.

※본 기고는 퓨처링크의 공식 입장이 아닌 필자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원화는 관련 정책 발표 시점 환율로 환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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