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레벨4 법제화에도 자율주행 공백
함부르크서 승부…‘로보셔틀’ ID.버즈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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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과 괴리는 크다. 아직까지도 독일엔 실질적으로 이용할 만한 자율주행 서비스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법제도를 갖추고도 자율주행의 시동조차 켜지 못한 셈인데, 이런 간극을 메울 무대가 함부르크다.
◆법은 완성됐다
독일의 자율주행 법체계는 세 단계에 걸쳐 완성됐다. 2017년 ‘개정 도로교통법’으로 레벨3의 법적 토대를 놓았고, 2021년 ‘자율주행법’으로 특정 승인 구역 내 무인 자율주행을 허용했다. 2022년에는 시행령인 ‘자율주행차량 승인 및 운영 규정’을 통해 차량 승인, 운행 구역, 데이터 처리, 사고 시 책임 소재까지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운영 주체ㆍ제조사ㆍ소프트웨어 공급업체 간 책임 분담을 명확히 해 법적 불확실성을 제거한 게 핵심이다.
특히 ‘기술 감독(Technische Aufsicht)’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법제화했다. 차량 안에 안전 요원을 태우는 대신 제어센터의 기술 감독자가 원격 모니터링하는 방식으로, 기존 운전자의 법적 의무를 기술 감독자와 운영 인력에게 이양하는 구조다. 이 체계가 무인 자율주행의 공공도로 운행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 토대가 됐다.
2024년 12월에는 이 법체계 위에 ‘자율주행 국가전략’이 발표됐다. 독일을 자율주행 기술의 글로벌 혁신ㆍ생산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담았다. 공공교통과 화물운송이 핵심이다. 2027년까지 공공교통에 통합된 자립형 서비스 모델을 개발하고, 물류센터 간 자율주행 트럭을 도입해 운전 인력 부족을 해결한다는 목표다. 2028년까지 독일 고속도로망과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율주행 연결 운행 구역 구축도 계획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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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율주행 이미지./사진: 이미지투데이 |
◆1만대 청사진
국가전략의 첫 번째 실증 무대는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다. 인구 약 178만명의 이 도시는 2024년 4월 ‘디지털 모빌리티 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최대 1만대의 자율주행 라이드풀링(여러 승객이 비슷한 방향의 차량을 공유하는 서비스) 차량을 시 전역에 배치한다고 선언했다. 단일 도시 기준 세계 최대 규모다.
함부르크의 전략은 ‘함부르크 탁트(Hamburg-Takt)’라는 프로그램으로 압축된다. 시민 누구나 5분 안에 대중교통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다. 자율주행 셔틀이 핵심 수단이 된다. 신호등, 도로 표지판, 통신 인프라를 V2X와 5G로 통합해 자율주행차가 도시 전체와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환경도 함께 구축된다.
얼라이크(ALIKE, Autonomous Ride-pooling for Hamburg) 프로젝트가 이 전략의 첫 실증이다. 전체 예산 5200만유로(약 767억원) 가운데 정부가 절반인 2600만유로(약 384억원)를 지원한다. 2024년부터 3년간 진행되는 함부르크 자율주행 사업 중 최대 규모다. 폭스바겐 그룹 계열 라이드풀링 운영사 MOIA가 서비스 운영과 고객 관리를, 폭스바겐이 ID. 버즈(Buzz) 차량과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함부르크 시가 인프라와 규제 지원을 각각 담당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MOIA는 2018년부터 함부르크에서 전기 라이드풀링 서비스를 운영하며 수백만건의 승차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이 데이터가 자율주행 서비스 설계에 직접 활용된다.
다만 일정은 순탄치 않다. 당초 2025년 말 자율주행차 20대로 일반 승객 운행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차량 공급 이슈로 2026년으로 연기됐다. 초기에는 안전 요원이 탑승한 상태에서 승객 없이 테스트를 진행한다. 운행 구역도 함부르크 남부 제한 지역으로 한정된다. 2027년까지 공공교통에 통합된 경제적 자립 모델 개발이 목표다.
◆ID. 버즈 AD
함부르크의 청사진을 현실로 만들 차량은 폭스바겐의 ID. 버즈 AD다. 2025년 6월 레벨4 양산 가능 단계를 선언한 데 이어, 2026년 3월 하노버 공장에서 사전 양산을 공식 개시했다. 모빌아이(Mobileye) 기술을 탑재한 로보셔틀이 산업 규모로 생산되는 건 유럽에서 처음이다.
생산 공정은 일반 ID. 버즈와 동일한 라인을 거친 뒤, 카메라ㆍ레이더ㆍ라이다를 통합한 루프 모듈과 고성능 컴퓨터를 설치하고 센서 교정을 거쳐 완성된다. 올해 사전 양산 규모는 500대로, 유럽과 미국의 복수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2027년 양산 승인이 완료되면 본격적인 대량 생산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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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전 중인 ID. 버즈./사진: 한국타이어 제공 |
모이아(MOIA)는 ID. 버즈 AD를 단순 차량이 아닌 턴키 설루션(차량, 자율주행 시스템, 소프트웨어 플릿 관제, 운영 서비스를 하나로 묶은 패키지)으로 제공한다. 배치 거점은 독일을 넘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함부르크에서는 얼라이크 외에도 모빌리티 플랫폼 프리나우(FREE NOW)가 2026년 1월 함부르크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해 3개 지역에서 독립적인 레벨4 로보택시 파일럿을 추진 중이다. 베를린에서는 베를린 교통공사(BVG)와 모이아가 노벨포(NoWeL4) 프로젝트를 통해 2025년 10월 시험 운행에 돌입했다. ID. 버즈 AD 5대가 북서부 지역 약 80개 정류장을 커버하며, 2026년 상반기 유상 승객 운행이 목표다.
스칸디나비아로도 진출한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는 광역교통공사 루터(Ruter)와 자율주행 운영사 홀로가 MOIA와 파트너십을 맺고 2026년 봄부터 ID. 버즈 AD를 투입한다. 스칸디나비아에 모이아 턴키 설루션이 적용되는 첫 사례다. 북미에서는 우버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에 따라 2026년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수천대 배치가 계획됐다.
폭스바겐은 함부르크 전역을 센티미터 단위로 복제한 디지털 트윈 환경에서 수억킬로미터에 달하는 가상 실증도 병행하고 있다. 실제 차량 투입 전 도심의 복잡한 시나리오를 무한 반복 테스트해 안전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부족한 데이터
독일의 딜레마는 명확하다. 법제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도로 위 데이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2025년 하반기 웨이모가 누적 1억2700만마일의 무인 주행 데이터를 발표했을 때, 독일 내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와 핸델스블라트 등 현지 주요 매체들은 “미국의 웨이모가 연간 수백만마일의 데이터를 쌓는 동안 독일은 함부르크 시내 제한 구역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하며 데이터 격차가 자율주행 패권 경쟁에서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VDA는 해법으로 ‘모빌리티 데이터 공간(Mobility Data Space)’ 활용을 제안했다. 공공도로 실증 데이터를 기업 간 공유하는 표준 체계를 마련하고, 정부가 V2X 인프라 데이터를 민간에 전면 개방해 차량 단독 자율주행의 한계를 인프라로 보완하자는 것이다. 2026년 9월 시행되는 EU 데이터법과 맞물려, 그동안 완성차 제조사만 보유하던 주행 데이터가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흐르면 독일 자율주행 기술의 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다.
독일의 전략은 전국에 차량을 분산하는 대신, 함부르크에 자원을 집중해 완벽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운행 지역 모델(Blaupause)’로 표준화해 다른 도시에 복제하는 방식이다. 함부르크가 성공하면 베를린ㆍ뮌헨ㆍ쾰른으로 확산하고, 2035년까지 독일 전역에 자율주행 대중교통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얼라이크가 2026년 본격 실증에 들어가고, ID. 버즈 AD의 양산이 궤도에 오르면 독일은 유럽 자율주행 대중교통의 벤치마크가 될 수 있다. 법제화와 안전 검증에서는 이미 세계를 앞섰다. 남은 과제는 도로 위의 데이터다. 그 균형을 찾을 때 독일은 내연기관 시대 자동차 강국의 지위를 자율주행에서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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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세데스-벤츠 올-뉴 일렉트릭 CLA./사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제공 |
■ 모빌리티 오디세이
세계는 그야말로 로보택시 전쟁터다. 〈대한경제〉가 창간 62주년을 맞아 국내 대표 자율주행 전문가인 차두원 퓨처링크 대표이사와 함께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 독일, 영국, 두바이, 그리고 한국까지 — 7개국의 전략을 심층 해부하고, 한국이 ‘글로벌 자율주행 3대 강국’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모색한다.
차두원 퓨처링크 대표는 현대모비스, 현대차, 포티투닷,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에서 자율주행 R&D와 정책 수립을 경험했다. 저서로 《잡킬러》, 《이동의 미래》, 《포스트 모빌리티》 등이 있다.
※본 기고는 퓨처링크의 공식 입장이 아닌 필자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원화는 관련 정책 발표 시점 환율로 환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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